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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지식, 그리고 인공지능

글_ 김석수 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오늘의 사회가 인공지능 사회로 이행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인식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인식 활동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려는 목표로 향해 있다. 그런데 이 자유 실현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타자의 영역이 남아 있는 한 가능하지가 않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모르는 타자의 영역을 제거할 때까지 부단히 인식 활동을 전개한다. 물론 인간은 이런 인식 활동만으로 자신의 자유를 온전히 실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인식 활동을 통해서 타자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 타자를 소유하지 못하면, 나는 나 자신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양식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무언가를 인식하려고 하는 것도 나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무언가를 얻고자 함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인간의 인식이라는 것도 소유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삶의 조건에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은 살기 위해서는 소유해야 하고, 소유하기 위해서는 인식해야만 한다.

 

 

인공지능의 그늘, 지식 전쟁의 출현
  그런데 인간은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며, 이로 인해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인식하려고 한다. 생존 경쟁은 소유 경쟁을 낳고, 소유 경쟁은 인식 경쟁을 낳는다. 이와 같은 상황은 사적 소유와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더욱더 심하기 마련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인식 경쟁도 소유 경쟁에 비례해서 심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소유를 향한 인식 경쟁은 한계를 지닌 육체보다는 한계를 모르는 기계를, 그것도 학습을 하는 기계를 발명하도록 만든다. 지능을 가진 기계의 탄생은 인간이 하는 물질노동과 지식노동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이 욕망하는 더 많은 소유와 편리함을, 그래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을 제공해준다. 무지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근대적 인간의 탄생 이후, 지금 우리는 신을 죽인 그 자리에 새로운 신을 탄생시키고 있다. 오늘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출현은 그 서막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획에는 이미 어둠이 자라고 있다. 서로 더 많이 인식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더 많은 자유를 누리려는 시도에는 계산적이고 도구적인 사유가 지배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서로를 소유하여 지배하고자 하는 지식 전쟁이 출현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지식은 서로에게 무기가 되어 서로를 위협하게 된다. 실제로 글로벌 자본과 인터넷이 결합하여 펼쳐지는 오늘의 지식정보화 사회에는 그 어느 시대보다 지식노동자들이 피로에 젖어 있으며, 지식 경쟁에서 밀려날까봐 불안해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경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지경이다. 인공지능이 출현한 지금 이미 몇몇 분야에서는 이런 일들이 전개되고 있다. 시애틀 아마존 본사 슈퍼마켓에는 계산대와 계산원도 없이 물건을 거래하는 ‘아마존 고(Amazon Go)’가 시험 운영되고 있으며, 일본 로봇제조업체인 ZMP에서는 자율주행택시를 운영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병원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서 수술하고, 상담하고, 간호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공생을 위한 길
  그런데 과연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해줄 수 있을까? 인간은 과거 중세에 신에 대한 잘못된 신앙으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었듯이, 오늘날 우리는 지식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스스로를 붕괴시킬 수 있다. 지식이 소유욕으로 향해 있는 전략적 사유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때, 전자(電子)지식을 전유하는 전자귀족이 출현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이 만든 전자두뇌가 자신을 지배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는 지식이 특정 존재의 전유물이 되는 것을 막을 때에만, 따라서 이 지식으로부터 발생한 인공지능을 공동 관리할 때에만 이런 불행한 결과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공동 관리는 우리 인간이 서로를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계산적이고 도구적인 사유를 넘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윤리적 사유로 나아갈 때, 또한 서로의 욕망을 인정하되 서로 사랑하는 미학적 사유로 나아갈 때 가능하다.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사유는 인공지능이 아직 간직하지 못한 사유로서 우리 스스로를 지켜내는 근원적 사유이다. 우리는 이런 사유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먼저 공생하는 삶의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가 전략적 사유에 빠져 욕망투쟁만 일삼는다면, 서로 인공지능을 선점하거나 독점하려는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으며, 이는 또 하나의 지배세력을 낳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들 자신을 인공지능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그 자체보다 인공지능으로 향해 있는 인간들 자신의 연대성 확보가 더 근원적인 문제이다. 이런 연대성에 바탕을 둔 삶의 조건을 마련할 때에 비로소 인공지능도 우리와 공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 시대가 초래할 불행을 막고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기술적 사유를 넘어서는 윤리적 사유와 미학적 사유를 길러내야 하며, 이에 기초하여 정서적 공감대를 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