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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은 인류 사회를 어떻게 바꿔 놓았나

강응천 도서출판 문사철 대표(역사저술가)

  역사 속에서 코로나19와 비견할 만한 전염병은 14세기 흑사병과 20세기 초 스페인독감이 있었다. 1년 만에 200만 명 이상을 희생시키고도 물러갈 줄 모르는 코로나19는 인류 사회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600여 년 전 흑사병에 휩쓸렸던 이탈리아 피렌체의 경험을 통해 이 문제를 들여다보자.


  꽃의 도시 피렌체는 13세기 내내 귀족과 시민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겪었다. 여기서 시민 세력이 승리하면서 공화정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피렌체의 주역으로 올라선 상공인은 길드라는 동업조합을 꾸려 경제 활동을 했다. 13세기 말 피렌체의 주요 공직은 약 3,000개, 21개 주요 길드의 성인 남성 조합원은 약 8,000명이었다. 이들 길드 조합원에게는 공직 참여의 기회가 활짝 열려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상공업 엘리트 가문이 성장해 피렌체를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변모시켰다. 주변 도시에서 ‘피렌체 드림’을 이루기 위한 이주가 이어지면서 인구도 급증했다. 그러면서 하층민 사이에 소수 엘리트 가문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으나, 그 목소리는 피렌체의 번영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흑사병은 바로 그런 시기에 피렌체로 스며들었다.


  피렌체에 첫 흑사병 환자가 나온 것은 1348년 봄이었다. 시 당국은 즉각 방역 조치에 나섰다. 공기 오염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오염원 제거에 나섰다. 전문가들로 공중보건 문제를 담당할 8인 위원회를 꾸려 전권을 부여했다. 도시 출입은 통제되고 감염자는 격리되었다. 흑사병의 첫 번째 유행이 어느 정도 진정된 8월 말은 약 12만 명을 헤아리던 피렌체 인구의 60%가 희생된 뒤였다. 


  인구가 급감하자 시는 경제 회복을 위해 인구 유출을 막고 타지역에서 수공업자를 유치하는 데 힘을 썼다. 시를 이탈하는 자에게 500리라의 벌금을 부과하고 시민권을 박탈하자 많은 시민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피렌체에 남았다. 피렌체를 기회의 땅으로 생각해 들어오는 외부인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소수 엘리트 가문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곤 했다. 10년 주기로 흑사병의 유행이 반복되면서 이런 추세가 이어지자 피렌체의 사회 구조는 또다시 큰 변화를 겪었다.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발전한 산업은 모직물 가공업이었다. 모직물 업자들의 길드는 대단한 세력을 누렸다. 당연히 모직물 노동자의 수도 늘어났다. 그들을 일컫는 이탈리아어가 치옴피였다. 치옴피는 14세기 피렌체 노동력의 1/3을 차지하고 있었다. 흑사병이 피렌체를 몇 차례 휩쓸고 지나간 1378년, 치옴피는 엘리트 세력의 정치·경제적 독점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유럽 역사에서 유명한 치옴피의 난이다. 그들은 7월 말에 시 정부를 접수하고 일련의 개혁을 시도했다. 하층민을 대변하는 길드들을 조직하고, 그들에게 주요 관리를 선출하는 권리를 부여했다. 또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해 매달 2,000벌의 최소 생산 의무를 부과하고, 임금을 안정시키며, 세금 제도도 개혁했다. 


  그러나 엘리트 세력의 반격으로 치옴피의 난은 실패로 돌아갔다. 피렌체는 이전의 과두정 체제로 복귀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번 성장한 일반 시민의 권리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전보다 권력의 배분이 더 촉진되고 중요 관직에 진출하는 하층민이 늘어났다. 흑사병은 피렌체를 파괴하고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지만, 이처럼 피렌체가 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공화정으로 변화하는 걸 촉진하기도 했다.


  이 같은 피렌체 사회의 변화는 흑사병이 아니었더라도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흑사병이 그 변화를 앞당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흑사병 못지않게 광범위하고 파괴적인 재앙이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재앙 이후에도 사람들은 계속 살아갈 거라는 사실이다.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거라고들 한다. 피렌체에서 보았듯이 그러한 변화는 완전히 새로운 게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던 변화가 전염병으로 인해 훨씬 더 빨라지는 것일 뿐이다. 그게 무엇일까? 지금보다 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폐쇄적이고 통제된 사회로 후퇴하는 것일까? 눈을 크게 뜨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잘 살피면, 그중에 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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