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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꽃, 국화 앞에서

글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시인


보는 사람이 없어도 그냥 말없이 홀로 자신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피었다 지는 국화를 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제 자리에서 향기롭다 떠나지만…
  어려운 시절 노동자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던 민중가요 <사계>는 슬픈 음색인 다단조(C Minor)이나, 빠르고 발랄하게 흘러 지나가는 탓에 슬픔을 놓치기 쉽다. 서리 내리는 차가운 계절에 국화는 홀로 피었다, 제 자리에서 가만히 향기롭다가 조용히 떠난다. 그래서 뭔지 모를 섬뜩한 슬픔과 아픔을 놓치기 쉽다. <사계>의 3절 ‘가을’에서는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간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 보내고/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며, 낙엽 지는 쓸쓸한 가을날 그런 정취마저도 느낄 틈 없이, 밤낮 재봉틀(일본어로 ‘미싱’)을 돌려대던 여공들의 아팠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국화에도 불편한 현실 속을 헤쳐나가는 선비들의 애환이 꽃잎 속에 향기 속에 배여 있는 듯하다.

국화의 알레고리를 읽으며 나를 보다
  과거 시인과 선비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국화’라는 시나 글, 그림을 통해서 암시적,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전통 문예 속에서 국화가 갖는, 그런 알레고리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이것은 아마도 현대인들이 거의 잃어버린, ‘휙 지나가 버리고 없는’ 국화 속에 투영된 애환의 심리를 발굴하는 일일 것이다. 과거 선비, 문인들의 자존심이거나 미학이자 도덕이었던 표현법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첫째, 오로지 자신을 위해 향기롭게 핀다. 국화는 아무도 보는 이가 없어도 아무 말도 없이 그냥 홀로서 정성을 다해서 핀다. 그것은 선도 악도 아닌 곳에서, 슬픔에서도 기쁨에서도 물러나 그냥 자신의 본성대로 피어 본래 지닌 향기를 마음껏 발산한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온몸을 다해서 향기롭게 피었다가 떠난다. 남들의 어떤 평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스스로의 만족 속에서, 은자처럼 살다가 간다.


  둘째, 둥글게 하늘을 닮아 하늘을 향한다. 전통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하여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했다. 하늘은 시간의 의미로 둥글게 순환·회전하기에 ‘원원’(圓圓)이라고도 한다. ‘모난 돌이 정 받는다’는 말처럼 성격이 모난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이 부딪힌다. 그러나 하늘의 모습은 둥글고 둥글어서 부딪힐 일이 없다. 둥근 꽃송이는 하늘 높이 달려서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든다. 그래서 국화는 하늘을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고개 숙이지 않고 높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은 세간의 바람·먼지[風塵] 속을 살아가지만 세간을 넘어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셋째, 뿌리를 땅에 박고 있어 누런색이다. 『천자문』에서는 “천지현황(天地玄黃)…”이라 하여, 하늘은 ‘거무스름’[玄] 하고 땅은 ‘누렇다’[黃]고 표현하였다. 땅[地] 즉 흙[土]의 색은 누런 것이기에 국화의 꽃 색깔도 황색이라고 본 것이다. 국화는 하늘을 향하지만 뿌리는 땅에다 박고 대지의 색깔인 황색을 얼굴에 드러낸다. 아울러 황색은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한 가운데의 바름 즉 ‘중정’(中正)을 상징한다. 세상이 다 삐뚤어져도 국화는 중정 속에서 피고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선비, 문인들이 자신들의 애환을 넘어서는 탁월한 해석이리라.


  넷째, 가을 늦게 찬바람 속에 피어 한 해를 마무리한다. 국화는 봄날 햇볕이 따사로울 때 피지 않는다. 으레 가을바람 싸늘히 불고 서리가 내려 한기가 돌 무렵 핀다. 추운 계절에 저 홀로 피어 있는 자태는 가만히 속으로 참고 견디며 스스로의 몸가짐을 조심하는[隱忍自重] 모습이다. 시끌벅적한 권력과 풍요의 세계로부터 멀어져 재야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은자의 풍모이기도 하다.

‘맑고 서늘한 행복’=‘청복’(淸福)을 생각한다 
  벼슬하며 명예를 갖고 화려하게 사는 것을 ‘뜨끈한 행복’이라는 의미로 ‘열복’(熱福)이라 한다. 은거하며 산천으로 걷고 돌아다니는 것을 ‘맑고 서늘한 행복’이라는 의미에서 ‘청복’(淸福)이라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표현했다. 말하자면 전자는 소유의 행복이고, 후자는 존재의 행복이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태도로 살아가는 모습이 국화에 있다. 무언가를 많이 가진 기쁨이 아니라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 하늘과 땅과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을 우리는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그냥 말없이 홀로 자신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피었다 지는 국화를 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그냥 막 살아 온 것 같아도, 잘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향기로운 집 한 채씩이 아니랴. 태연이 부른 <사계>를 듣는다. “사계절이 와, 그리고 또 떠나/내 겨울을 주고 또 여름도 주었던/온 세상이던 널 보낼래….” 또 한 계절이 간다. 모두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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