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위안부’로 보는 작은따옴표의 역사학

글  강응천 도서출판 문사철 대표(역사저술가)



‘위안부’는 가해자였던 일본군의 입장을 두둔하듯 하는 말이지,
몹쓸 고난을 당한 피해자의 편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지난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양심과 정의의 문제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날 할머니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라는 단체의 역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며 자신은 ‘정신대’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일본군 성노예’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내비쳤다.

  1990년 11월 정대협이 발족할 무렵에는 정신대가 위안부라는 말 대신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근로정신대의 일부인 여자정신대는 일제에 의해 징용되고 일반적인 노동을 강요당한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위안부가 되기를 강요당한 사례도 적지 않아 양자를 혼동해 썼다고 한다. 물론 정신대의 ‘정신’은 ‘솔선하여 앞장선다’는 뜻으로, 이 역시 강제 징집당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위안부’는 어떨까?

  말 그대로 풀면 위안, 그것도 성적 위안을 주는 여성이란 뜻이다. 이는 가해자였던 일본군의 입장을 두둔하듯 하는 말이지 몹쓸 고난을 당한 피해자의 편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위안부’를 표기할 때 반드시 달도록 되어 있는 작은따옴표이다.

  ‘위안부’ 문제는 1990년 네덜란드의 얀 할머니가 일본군의 성폭력을 피해 달아났다가 다시 일본군에게 잡혀갔다는 증언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했다. 한국에서는 이듬해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자신이 ‘위안부’였다고 고백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1992년부터 서울 종로구에 있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매주 수요일 일본 정부의 사과와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는 수요 시위가 열렸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 연대도 꾸준히 모색되었다.

  ‘위안부’에 작은따옴표를 붙여 일본군 ‘위안부’라 부르기로 한 것은 1995년 제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시아 연대회의부터였다. 작은따옴표를 붙이는 것은 전쟁 당시 일본 측에서 실제로 사용하던 ‘역사적’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사태를 주도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 주고, 그 강제성과 부정적 의미를 환기시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국 정부가 제정한 관련법에도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라고 명시되어 있다.

  ‘성노예’는 영어 표기인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을 옮긴 것이다. ‘2015 한일 합의’ 무효화를 위해 2016년 새로 설립된 단체 이름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었다. 이 말은 분명 일본군의 반인륜적 범죄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말은 그 강한 어감이 할머니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피하자는 것이 처음부터 많은 사람의 생각이었다.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할 때 아무리 객관적으로 의미가 있다 해도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사용되어서는 안 될 용어다. 국제적 활동을 위해 필요하다면 영어로만 ‘성노예’로 표기해도 될 일이다.


정리하자면 ‘위안부’ 그 자체로는 가해자 시각에서 본 ‘나쁜’ 용어다.

  그 역사적 범죄성을 표현하기 위해 이 용어를 쓴다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표기하는 게 맞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사용하던 ‘종군 위안부’라는 말을 쓴 적도 있는데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말이다. ‘종군 기자’라는 말처럼 ‘종군’에는 자발적으로 군에 따라갔다는 뜻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부득이하게 ‘위안부’라고 쓰려면 ‘소위’라는 뜻에서 반드시 작은따옴표를 붙여야 할 것이다. 2013년에 발간된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은 법정 공방까지 치르며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하려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이 대일본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에 한국인 ‘위안부’는 제국, 즉 본국의 위안부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국가에 의한 강제력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연히 제목부터 위안부라는 말에 작은따옴표를 붙이지 않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된 인류의 양심과 국제사회의 정의가 회복될 때까지, 그 작은 부호 하나에 담긴 거대한 역사적 관점의 차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