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LTE 넘어 해방공간을 찾아

LTE 넘어 해방공간을 찾아

글_ 김수현 광휘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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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교내 휴대전화 반입·소지를 금지하는 규정 등 휴대전화 사용제한을 완화할 것을 각급 학교장에 권고했다. 인권위의 결정과 함께 ‘학교의 교육적 제재’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행복추구권’과 ‘통신의 자유 침해’라는 법리적 해석에 대해서는 한번 따지고 싶다. 행복추구권과 통신의 자유는 무엇인가? 수업 시간에 스마트 기기 사용을 선택하는 것은 학생의 자유라거나 그 행복을 수업 시간에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면 반대다.

 

게임 대신 친구와 소통하는 문화
  우선 학생들이 학교에서 스마트 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싶지 않다. 얼마나 수업시간이 재미없으면 그렇겠냐는 항변이 따라오겠지만 재미의 원천이 꼭 스마트 기기일 필요는 없다. 쉬는 시간에 게임이나 SNS 대신 교사와 친구들과 소통하면 안 될까? 스마트 기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이것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학교에서만이라도’ 확인했으면 좋겠다. 학부모들이 안전상의 이유로 자녀에게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굳이 스마트 기기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와 상관없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테크놀로지 중독 예방교육 차원에서도 스마트 기기 사용에 대한 자제력을 가르쳐야 한다. 자제가 안 된다면 어느 정도의 통제가 필요하다. 그 학생들이 자라서 기술 혁신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는 관계없다. 왜 그래야 하는가.

 

청소년의 SNS 이용 제한하는 국가들
  첫째, 스마트 기기는 지금 우리에게 중대하고 현실적인 위협이다. ‘2017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스마트 폰이 잠시라도 없으면 일상이 힘든 ‘과의존 위험군’이 10대는 10명 중 3명이었고, 이들의 70% 이상은 스마트 폰을 게임이나 SNS에 활용했다. SNS에서 타인의 반응을 예민하게 살피다 보니 집단 괴롭힘은 이미 SNS로 옮겨왔다. 지난해 청소년들의 폭행사건에서는 가해 학생들이 SNS에 범죄를 자랑하는 일도 있었다. 선정적인 유해물을 쉽게 스트리밍하고 결재 시스템의 발전으로 소비는 너무나 쉽다. 스마트 폰을 놓지 않고 SNS를 확인하다 눈 건강뿐 아니라 뿜어져 나오는 청색광(블루라이트)에 수면의 질도 떨어진다. 청소년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스마트 기기와 SNS는 장점보다 폐해가 커 보인다.
  최근 영국 정부는 연령에 따라 SNS 이용시간을 제한하기 위해 13세 이상만 SNS에 가입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도 지난해 말 16세 이하 청소년이 SNS에 가입할 때 부모 동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1) 기사의 내용 중 SNS가 청소년의 일상 활동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빨리 접할수록 중독되기 쉽다는 우려 때문에 법제화한다는 부분에서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소위 인권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이 나서서 청소년을 규제하는 형국이다.

 

고등 사고능력은 아날로그에서 출발
  둘째, 고등 사고능력은 아날로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IT 거인들은 자녀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 2011년 10월 미국 뉴욕타임스에 실리콘밸리 IT 업계 종사자들이 막상 자기 자녀들은 컴퓨터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기사가 실렸다. 또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컴퓨터는 물론 스크린 보드, 빔프로젝터 등의 멀티미디어 기기도 없으며 학교에 일절 스마트 기기도 가져올 수 없는 토의와 정서적 교감이 중심인 발도르프 학교에 보낸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아이들이 열네 살(우리 나이로 15~16세)이 될 때까지 ‘친구들은 다 있다’고 불평해도 휴대폰을 사주지 않았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집에서 PC사용은 하루 45분으로 제한했다.2) 대신 아이들이 책과 신문에 애착을 갖도록 교육해 왔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들은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않으며, 집에서 스마트 기기 사용하는 것을 어느 정도 제한한다3)고 밝혔다. 저녁이면 자녀들과 식탁에 앉아 책, 역사 그 외 여러 가지 화제를 놓고 이야기 했다. 아무도 아이패드나 컴퓨터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않았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그들이 의외로 구식 부모일까. 주목할 만한 것은 테크놀로지는 창의적 사고와 사람들 간의 교류에 방해가 되며, 스마트 기기 이용을 최대한 늦추고 적극 개입하는 것을 부모의 역할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나. 노동시간이 짧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 얘기로 들릴 것이다. 가정교육이 부족하다면 학교에서 채워주면 어떨까. 그러니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교육·훈련 통해 절제 배운다
  간혹 “학교 구성원들의 논의로 스마트 기기 사용에 대한 정도를 결정하거나 스스로의 각성으로 자제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난다. 나는 그때마다 그 분들의 자제력에 놀란다. 스마트 기기의 편리하고 재미난 기능을 잘 모르시는 것 같기도 하다. 쾌락에 대한 절제는 인간 본성과는 거리가 멀며, 오랜 기간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다. 교육을 할 때 무엇이든 아이들에게 물어야 하는가? 우리 자신과 아이들의 미래에 꼭 필요한 것이라서 가르치는 것 아니던가?


1) [사설] SNS에 빠진 청소년, 인증·셧다운제 검토할 때다 , 동아일보 2018.3.13
2) 빌게이츠, 더미러 2017.4.23.
3) 뉴욕타임스, 201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