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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글_ 백병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주관하는 국제학력비교평가(PISA)에서 우리나라는 늘 최상위의 성적을 거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ECD에서는 한국을 따라 배우라고 권고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교육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학생들의 비율이 최하위에 속한다는 보고는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공부를 잘 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지만, 그 시간을 고통으로 느끼는 학생들,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과 소통보다는 경쟁에 익숙한 학생들이 많은 나라의 교육을 따라 배우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변화, 혁신학교
  2009년 9월 경기도의 13개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면서부터 시작된 혁신학교 정책은 이와 같은 과제를 제도교육의 틀 안에서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당시 경기도의 제1대 민선교육감으로 당선된 김상곤 교육감은 정부 주도의 하향식 교육개혁과 경쟁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혁신학교를 내세웠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에서 보았던 것처럼, 학생들의 삶을 중심에 놓고 새로운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들의 노력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면 학교의 변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혁신학교 관련 연구에서는 혁신학교가 다음과 같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고 있다. 먼저 혁신학교는 학교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것으로 변화시켰다. 혁신학교에 가보면 선생님들이 수시로 모여서 회의를 한다. 교장 선생님도 다른 선생님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다. 학생과 학부모도 학교 운영의 주체로서 교원들과 동등하게 회의에 참석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학교의 비전과 목표가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공유되어 있으며, 구성원들의 자발성과 협력적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교육과정과 수업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혁신학교의 교육과정은 여느 학교의 교육과정과 매우 다르다. 여느 학교의 교육과정이 국가에서 정해 준 것을 따라하는 데 그치고 있다면, 혁신학교의 교육과정은 선생님들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교육과정의 재구성을 위해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은 학생들의 협력적 배움과 성장이다. 교사가 알고 있는 것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동료들과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혁신학교 교육과정과 수업의 핵심이다.
  혁신학교가 학생들의 전통적 학력의 손실 없이 대안적 학력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는 점도 성과다. 필자가 경기도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혁신학교는 수능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학력의 손실 없이 학생들의 자아개념이나 효능감 같은 정의적 영역에서의 성취를 높이고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삶의 태도를 갖도록 했다. 또한 일반학교에 비해 혁신학교 재학생들의 내재적 학습동기, 교사나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뿐만 아니라 혁신학교는 교육격차를 줄이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었다. 일반학교에 비해 혁신학교에서는 가정배경에 따른 성적 차이가 작았으며, 가정배경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혁신학교에 다닐 경우 일반학교에 다닐 때보다 성적이 향상되는 정도가 더 높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일반학교에 비해 혁신학교에서 학생중심수업이 활성화되어 있고, 교사-학생 사이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혁신학교를 통한 학교 혁신의 가능성
  이와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혁신학교는 양적으로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2011년에는 서울, 광주, 전남, 전북, 강원에서, 2015년에는 충남, 충북, 경남, 부산, 세종, 인천, 제주에서 일부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이들 시·도교육청에서는 해가 거듭될수록 혁신학교의 수를 늘리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혁신학교를 통한 학교 혁신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혁신학교의 양적 확대가 그 자체로 학교 혁신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혁신학교는 교원을 비롯한 구성원들의 자발성과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핵심 동력으로 하는 데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지를 따져보지 않은 상태에서 혁신학교의 수를 늘리는 데 급급하다 보면 여러 문제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늬만 혁신학교’라는 말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학교나 교사의 준비 정도나 자발성을 고려하지 않고 혁신학교의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다 보니 간판만 혁신학교로 달아 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학교에서는 혁신학교가 지향하는 철학과 운영 원리에 기반하여 학교 전체를 혁신하기보다는 혁신학교의 일부 프로그램을 따라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혁신학교의 지속가능성과 관련해서도 여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때 학교 혁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혁신학교가 일부 구성원의 교체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학교 혁신에 헌신했던 교사들의 소진 현상이나 학교 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혁신학교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혁신은 제안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어렵고, 지속하기는 극도로 어렵다고 주장했던 하그리브스의 논의를 되새길 때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학교 혁신의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첫 번째 트랙은 기존의 혁신학교가 거둔 성과가 일반학교로 전이되도록 하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혁신학교가 거둔 성과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단기목표에 가까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혁신학교를 제외한 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혁신학교가 거둔 성과의 원인을 면밀히 검토하여 일반학교가 그 원리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트랙은 공교육 정상화의 수준을 뛰어넘는 미래 모델학교로서 혁신학교의 상을 설정하고, 그 실현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것이다. 현재 전국의 혁신학교는 지정 연차와 관계없이 비슷한 목표로 비슷한 일들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혁신학교는 수만 늘어날 뿐 한국 공교육의 지속적인 혁신 모델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 지속가능한 혁신은 혁신의 초기부터 처음에 설정한 단기 목표를 달성한 다음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이 목표는 미래사회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주도면밀하게, 그러나 대담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지금이 그 마지막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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