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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혁신을 위한 우리의 과제

글_ 박철희 경인교육대학교 교수

 

  이전부터 교육정책에서 혁신이라는 말이 사용되어 왔지만, 최근 학교 현장에서 통용되는 혁신은 혁신학교의 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혁신학교는 2009년 경기도교육청에서 처음 시작하였는데, 2014년 지방자치선거에서 진보교육감들이 다수 당선되면서 공교육의 혁신 모델로 확산되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혁신학교 정책을 가장 먼저 추진하였지만, 그 이전에 혁신학교의 모델이 되는 학교들이 이미 몇몇 교사들의 자발적 노력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었다. 혁신학교는 교육청이 먼저 개발하고 추진한 정책이라기보다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의 자발적 학교 혁신 운동이 교육청의 정책으로 채택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교육 개혁 또는 교육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이전의 학교 정책과는 다소 다른 점이다. 이전의 학교 개혁 정책은 학교 밖에서 정책이 만들어지고 추진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교사가 개혁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대상으로 되는 경향이 있어서 교사들이 학교 변화에 능동적으로 앞장서기 어려웠다. 반면 혁신학교는 교사들의 자발적 움직임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교육청에서 그것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후원하는 형태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교사의 자발성을 정책 추진의 기본 동력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사와 학생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
  현재 서울형혁신학교, 행복배움학교, 빛고을혁신학교, 무지개학교, 행복더하기학교 등 시·도교육청에 따라 사용하는 명칭도 다르고 다양한 변형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민주적인 학교 문화, 교육과정·수업·평가 혁신, 전문적 학습공동체 운영 등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혁신학교의 특징들은 기존의 학교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기존 학교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의 중심에는 소외라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교사가 교사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학생이 학생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교사와 학생이 직면하고 있는 학교 현실이다.
  교사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 본연의 일이고, 그것을 보람으로 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학교는 교사들이 이와 같은 삶을 펼칠 수 있는 터전이 되지 못하였다. 상당수의 교사들이 과중한 행정업무로 인해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을 빈번하게 경험하고 있다. 또한 교육 관료제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학교, 그 속에서도 끝단에 위치한 교사들은 스스로 어떤 일을 결정하기보다는 대리인의 위치에서 결정된 사항을 실행에 옮기는 역할을 주로 수행해 왔다. 이는 교사가 주체적, 능동적으로 일을 추진하지 못하고 소극적, 피동적으로 임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스스로 결정한 일을 추진할 때는 능동성을 발휘하지만, 다른 사람이 결정한 일을 단순히 집행하는 입장이 되면 수동적, 소극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관련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많은 혁신학교가 교사들에게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거나 의사결정권을 위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이를 통해 교사들이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태도와 행동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본질적으로 배움이 본연의 일이고, 배움을 기쁨과 보람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학교에서 학생들은 이와 같은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며 생활해 왔다. 오히려 지루함과 고통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 그 주요 이유는 학생들의 경험세계와 긴밀하게 관련을 맺지 못하는 교육과정,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학생들은 부동자세로 앉아서 장시간 집중해야 하는 수업방식에 있다. 자신의 생활세계와 의미 있는 연관을 갖지 못하는 내용에 관심과 흥미를 갖기 어렵고, 관심과 흥미가 없는 내용을 장시간 부동자세로 듣는 것은 학생들에게 신체적 구속감과 고통을 유발하기 쉽다.

 

 

진정한 ‘혁신’을 위한 과제
  혁신학교에서 교과중심의 일제식 수업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혁신학교에서 주로 행해지고 있는 배움중심 교육과정, 대화와 활동이 있는 수업 방식, 서술형 평가 등은 학생들이 배움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배움의 기쁨과 보람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하여 일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교 혁신의 움직임은 학생들이 배움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는 학교로 바꾸어보려는 노력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학교가 본연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학교 혁신의 흐름이 지속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있다. 첫째, 더 많은 교사들의 공감과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다. 초기 몇몇 학교들이 혁신학교로 운영될 때는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학교가 운영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혁신학교가 확산되면서 다양한 철학과 가치를 지닌 교사들이 혁신학교와 만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혁신학교를 지지하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혁신학교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혁신학교가 공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흐름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치와 성향을 지닌 교사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좀 더 개방적이고 유연하게 학교 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대학입시와 학력경쟁의 산을 넘어가야 한다. 혁신학교의 확산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비교적 용이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어려운 이유가 대학입시라는 큰 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혁신학교에서 추구하는 교육과정, 수업과 평가 방식이 현재 대입 경쟁에서 과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을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주지 못하기 때문에 혁신학교가 고등학교로 쉽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혁신고등학교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에 적합한 혁신학교 모델을 개발하려는 노력과 대입전형제도의 개선 노력이 함께 이루질 필요가 있다.    
  셋째, 새로운 혁신의 비전과 과제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현재 혁신학교들은 대체로 민주적 학교 운영, 교육과정의 혁신, 전문적 학습공동체 등의 과제를 공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들 과제들이 중요하지만 여기에 고착된다면 언젠가 혁신학교는 혁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학교 현장의 요구, 사회적 요구 등을 반영하여 새로운 혁신을 계속 추구해나갈 때 학교 혁신은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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