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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가 미래(美來)학교가 되려면

혁신학교가 미래(美來)학교가 되려면

글_ 오재길 경기도교육연구원 교육연구사

 

  혁신학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혁신학교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는 상황정의(Definition of situation)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의미 규정이 다르게 된다. 지금껏 혁신학교를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달랐다. 초기에는 혁신학교를 일종의 연구·시범학교, 또는 대안학교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만든 학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혁신학교 운동 자체를 열린교육의 부활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은 혁신학교에 대한 오해가 많이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혁신학교에 대한 관점은 다양하다. 여기에서는 혁신학교에 대한 프레임을 두 가지로 나누고자 한다. 혁신학교를 정적 개념이자 완료형인 ‘혁신된 학교’로 보는 경우와, 동적 개념이자 진행형인 ‘혁신하는 학교’로 보는 것이다.

 

‘혁신된 학교’ vs ‘혁신하는 학교’
  정적 개념인 ‘혁신된 학교’는 정형화된 구현체가 있는 일종의 ‘완전한 학교’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관점은 혁신학교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서 주로 발견된다. ‘완전’은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 작은 부족함이나 흠조차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완전을 추구하는 학교는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게다가 이런 관점의 사람들은 무엇을 혁신했는지에 대한 성과를 묻고, 방법까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러면 ‘혁신된 학교’에서는 일반 학교와 차별되는 혁신 프로그램을 내세운다. 대개 이런 학교에서는 ‘더하기 혁신’만 있지 ‘빼기 혁신’이 없다. 혁신이 유쾌할 리 없다. 교사들에겐 새로운 업무가 과중되고 헉! 헉! 댄다고 하여 ‘헉신학교’가 되고 만다. 이런 프레임에서는 혁신학교 프로그램을 다른 학교에 이식하고 또 다른 혁신학교를 복제할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짝퉁 혁신학교’, ‘무늬만 혁신학교’가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적 개념인 ‘혁신하는 학교’는 ‘온전한 학교’를 지향한다. 진정한 혁신학교에서 볼 수 있는 관점이다. ‘온전’은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히’라는 의미이다. 그야말로 학교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교육의 본질을 향해 끊임없이 혁신하는 것이다. 온전한 학교로서의 ‘혁신하는 학교’는 한계와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당연히 ‘빼기 혁신’이 가능하다. 우수 혁신학교의 사례는 모방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온전한 학교, ‘혁신하는 학교’는 단위학교 중심으로 그 의미를 밝히고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진행형인 ‘혁신하는 학교’에 성과를 요구하고, 획일적인 평가지표를 들이대는 일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혁신학교는 정책으로 만든 학교가 아니다. 온전한 학교에 대한 교사들의 갈망과 자발적인 실천으로 일궈온 학교에 대해 ‘정책적 옷’을 입힌 것이다. 특히 초기 혁신학교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혁신학교가 성정하기 위한 조건
  나는 혁신학교가 더욱 탄탄해지길 희망한다. 지면상 학교 교육의 요체인 ‘교육과정’으로 한정하여 혁신학교에 대한 지원책과 애정 어린 비판을 하고자 한다.
  먼저, 교사에게 교육과정 기획권을 부여해야 한다. 개별화 교육과정은 이미 주어진 교육과정을 학생에게 잘 맞춰준 것이지만, 개인화 교육과정은 학생이 교육과정 자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현행 교사의 교육과정 자율성은 ‘교육과정 재구성’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래도 지금껏 혁신학교에선 교육과정 재구성, 배움중심수업, 평가 혁신 등을 통해 교육과정 혁신을 선도해 왔다. 혁신학교를 통해서 교사의 직무가 ‘수업하는 사람’에서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학생중심 교육과정을 실현하려면 교육과정 재구성에서 그칠 것이 아니다. 교사에게 교육과정 기획권을 부여하여 학생주도형 교육과정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개인화 교육과정은 현행 국가교육과정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렵다. 그러나 국가교육과정의 대강화와 슬림화, 분권, 거버넌스 등의 의제가 점점 활성화되고 있어서 전혀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다.
  다음으로, 교육사조의 편향과 배제 없이 균형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혁신학교는 진보주의 교육을 하는 곳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혁신은 좋은 교육을 위한 수단적 의미가 강하다. 좋은 교육은 진보주의 교육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쪽의 배제 또는 편향적 추구는 혁신교육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혁신학교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흔히들 우리 교육은 두 가지 원죄를 갖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원죄는 보수주의 교육(지식중심교육)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교과서 지식에 대한 반복 학습을 시켜 머리만 커지고 공부라면 질색을 하게 만든 것이다. 또 하나의 원죄는 진보주의 교육(경험중심교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머리는 비고, 손과 몸만 바쁜 지적활동이 결여된 수업에 치중한 것이다. 두 가지 원죄는 보수주의 교육과 진보주의 교육의 몰이해에 따른 맹목적인 추구로 인한 것이다.
  해답은 분명하다. 보수주의 교육에서 추구하고 있는 교육적 목표를 분명히 하고 제대로 추구하는 것이다. 앎의 기쁨을 살리고 학생의 지적 안목을 키우는 것이다. 진보주의 교육 역시 ‘하는 지식’을 통해 ‘보는 지식’과 연결시키는, 삶과 앎의 통합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존 보수주의 교육의 반작용으로 인한 진보주의 교육의 치우침은 용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혁신학교의 브랜드가 되어 획일화되고 고착화되는 것은 곤란하다. 혁신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임을 인정한다면, 혁신교육은 끊임없이 혁신되어야 그 생명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혁신학교는 미지의 미래(未來)학교를 넘어 아름답게 다가오는 미래(美來)학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