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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며 걷는 문경새재 단풍 숲길

글·사진 김혜영 여행작가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길 잃을까, 돌부리에 넘어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숲길이면 좋겠다. 기왕이면 단풍빛도 고왔으면. 그래서 고른 곳이 문경새재 옛길이다. 새도 넘기 힘들었다던 그 험한 고갯길이 지금은 누구라도 걸을 수 있을 만큼 훤해졌다. 옛길에 전해오는 옛이야기는 감칠맛 나는 양념 역할을 한다.

10월 중하순경 문경새재에 단풍이 무르익는다.10월 중하순경 문경새재에 단풍이 무르익는다.

옛 선비들이 간절한 소망으로 걷던 길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때 조성한 영남대로(한양~부산 동래)의 고갯길이다. 영남에 사는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영남대로를 이용했는데 문경새재, 추풍령, 죽령 중 한 고개를 선택하여 넘어야 했다. 선비들은 가장 험한 문경새재를 선호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소문에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시험에 낙방하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죽죽 미끄러지고, 문경은 ‘좋은 소식을 듣는다’는 뜻을 지녀서라고. 황당한 소문에 기댈 정도로 과거급제가 간절했기 때문이리라.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는 옛 선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문경새재는 도립공원으로 조성되어 전 구간이 평지에 가깝다. 바닥을 고르게 잘 다져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구간도 있다. 울창한 숲은 어느 계절에 걸어도 좋지만, 가을을 최고로 꼽는다. 

문경새재 길가에 누군가의 소원을 담은 수많은 돌탑이 쌓여 있다.문경새재 길가에 누군가의 소원을 담은 수많은 돌탑이 쌓여 있다.


문경새재를 지키는 세 개의 관문

  문경새재 주차장에서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1.3km 정도 걸어 들어가면 제1관문인 ‘주흘관’이 보인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갈 때 맨 처음 통과하는 관문이다. 성벽에 주흘관을 지은 석공들의 이름과 개축 연도를 새긴 기록이 남아있다. 


  문경새재가 조성될 당시에는 관문이 없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문경새재를 수월하게 넘어 한양을 함락한 사건 이후 약 100년에 걸쳐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제1관문 조흘관을 차례로 지었다. 그런데 관문을 세운 뒤로는 문경새재를 넘는 외적이 없었으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되었다. 


  주흘관에서 조곡관으로 이어지는 약 3km 구간은 경사가 완만한 계곡 숲길이다. 계곡 양쪽에 늘어선 붉은 단풍나무와 계곡가 억새밭이 가을 정취를 더한다. 옛날 이 길에서 호랑이와 맞닥뜨리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길이 넓다. 



돌탑에 쌓은 염원

  숲이 깊어질수록 단풍빛도 짙어진다. 단풍 구경하느라 발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출장 온 관리들의 숙식을 제공했던 조령원터, 신임 감사의 인수인계 장소인 교귀정, 봉수터 등의 유적을 구경하며 조곡관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조곡관 근처에는 조곡 약수터가 있는데,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는 곳이다. 걷느라 목이 말랐던 터라 두 바가지를 연거푸 마신다. 몇 날 며칠 험한 산길을 걸었던 옛사람들에게는 생명수 같은 존재였을 것 같다. 길가에 쌓아 놓은 크고 작은 돌탑에는 장원급제를 꿈꾸던 선비들, 호랑이를 만나지 않길 기원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차곡차곡 쌓였다. 어른 키보다 큰 돌탑이 하나 있는데, 장원급제 소원을 들어준다는 책바위다. 집안에 수험생은 없으나 가족 건강을 기원하며 돌 하나를 살포시 올린다.  


  평지였던 길이 조곡관을 지나면서부터 문경새재 끝인 조령문까지 오르막길이다. 경사가 완만해 힘들진 않다. 문제는 조령관에서 조흘관으로 되돌아오는 차편이 없어 걸어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 왕복 4~5시간 걸리는 거리가 부담스럽다면 조곡관까지만 걸어도 단풍 구경하기에 충분하다. 단풍철에는 평일에도 걷는 사람이 많으니,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산책하는 게 여유롭다. 

문경새재 제2관문 조곡관 입구문경새재 제2관문 조곡관 입구

풍광 좋은 산성길, 고모산성과 토끼비리

  옛길을 좋아한다면 문경 고모산성길과 토끼비리길도 추천한다. 이 길 역시 영남대로의 한 구간이다. 문경새재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옛길 느낌이 많이 남아있다. 고모산성 주차장에서 서낭당과 과객이 하룻밤 묵어갔던 주막거리를 지나면 고모산성 진남문이 나온다. 


  고모산성은 5세기경 신라가 백제군을 막기 위해 오정산(810m)에 쌓은 산성인데, 꽤 가파르다. 돌계단이 진남문을 사이에 두고 양팔을 들어 만세하듯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오르다  뒤돌아 보면 오정산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잠깐 새 오르는 수고를 잊고 계속 오르게 된다. 


  고모산성을 한 바퀴 돌고, 진남문으로 되돌아와 토끼비리를 이어 걷는다. 토끼비리의 ‘비리’는 낭떠러지를 뜻하는 ‘벼루’의 사투리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할 때 토끼가 이 길을 알려줬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진남문에서 오정산으로 이어지는 벼랑의 경사면을 깎아 만든 돌벼랑길이라, 한 사람씩 걸어야 할 정도로 폭이 좁다. 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걸었던지 바닥이 대리석처럼 반질반질해졌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정보

주소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개방 시간 탐방로 상시 개방

입장료 무료

문의   0507-13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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