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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걷는 영동 쉼표 여행

글·사진 김혜영 여행작가

 충북 영동에서도 황간면은 고요한 시골 마을이다. 읍내에 오일장이 서도 붐비는 기색이 없을 정도다. 전국에 유명 관광지와 핫플레이스가 넘치는 요즘, 굳이 영동을 찾는 이유는 휴식 같은 여행을 하고 싶어서다. 반야사와 월류봉을 감싸고 흐르는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함께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문수전과 반야사를 잇는 전각 뒷편 숲길에서 본 풍경문수전과 반야사를 잇는 전각 뒷편 숲길에서 본 풍경

백화산 봉우리를 병풍 삼은 반야사

  영등포역에서 출발한 무궁화열차가 하루 다섯 번 황간역에 선다. 첫 열차를 타고 황간역에 도착하면 일단 역 근처 단골 식당에 들른다. 영동 향토 음식인 올뱅이국밥을 먹기 위해서다. 충청도 사람들은 다슬기를 올뱅이(올갱이)라 부른다. 된장 국물에 아욱과 부추와 다슬기를 넣고 푹 끓인 올뱅이국밥이 아침 빈속을 부드럽게 달래준다. 


  첫 목적지인 반야사는 군내버스로 가기 힘든 곳이어서 콜택시를 탄다. 읍내에서 반야사까지 차로 약 10분 거리이지만, 시골길이라 꽤 길게 느껴진다. 석천계곡의 반야호와 나란히 이어지는 반야사 진입로 숲길이 아름다워 일주문에 못 미쳐 내린다. 숲길과 호수 같은 계곡을 번갈아 감상하며 천천히 걷는다. 백화산자락은 호수에 잠기고, 봉우리는 운무에 가려 운치를 더한다. 숲에 둘러싸인 일주문을 통과해 5분 정도 더 걸어 들어가면 반야사 절 마당에 닿는다. 


  반야사는 신라 시대 사찰로 전해오며 규모는 아담하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보이는 백화산의 호랑이 형상이 여전하다. 산 중턱 돌무더기가 흘러내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형상인데, 곧추선 꼬리까지 선명하다. 반야사 호랑이가 유명해도 이맘때는 극락전 앞 삼층석탑과 500살 먹은 배롱나무 두 그루가 더 눈길을 끈다. 


  7월에 개화해 9월까지 약 100일 동안 피고 진다는 배롱나무꽃이 붉은 등을 켠듯 마당을 환하게 밝힌다. 여름 장마와 태풍과 무더위를 견딘 배롱나무꽃은 나풀나풀 꽃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삼층석탑과 극락전 주변 바닥이 불그스레하다. 배롱나무의 비호를 받는 고려 시대 삼층석탑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반야사의 이미지처럼 아담하고 소박하다. 

여섯 봉우리로 이루어진 월류봉. 월류봉 앞으로 초강천이 흐른다.여섯 봉우리로 이루어진 월류봉. 월류봉 앞으로 초강천이 흐른다.


첩첩산중 반야사의 숨은 절경

  탑돌이 하듯 삼층석탑을 살펴보고, 반야사의 진풍경이 펼쳐지는 문수전으로 향한다. 반야호 물길을 거슬러 조붓한 오솔길을 걷는다. 걷는 내내 물소리가 벗해준다. 150m쯤 걸었을까. 오솔길이 끝나는가 싶더니 시야가 탁 트이며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사방을 둘러보니 첩첩산중에 석천계곡이 흐르는 지형이다. 물살이 제법 세차다. 


  이 어디쯤이 피부병을 앓던 세조가 반야사에서 우연히 만난 문수동자의 말대로 계곡물에 목욕한 뒤 피부병이 나았다는 곳이다. 이 설화가 강원도 오대산 계곡에도 전해오는데, 세조가 말년에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여러 지역에 방문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중요한 건 반야사의 반야(般若)가 문수보살을 뜻하고, 절 주위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신앙에 기인해 절 이름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반야사 삼층석탑(보물)과 배롱나무반야사 삼층석탑(보물)과 배롱나무


백화산 전망대 아래 편백숲백화산 전망대 아래 편백숲

  문수전은 백화산 절벽 망경대 꼭대기에 지어졌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며 너덧 번 쉬어야 문수전에 닿는다. 문수전 앞에 서니 오메가 형태로 굽이치는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감탄사를 부르는 절경에 오르는 길이 힘들다고 투덜댔던 입이 쏙 들어간다. 내려올 때는 대웅전 뒤편 숲길을 이용한다. 계곡 쪽 길보다 경치는 덜하나 걷기가 수월하다. 


  반야사를 떠나는 게 아쉬워 맞은편 봉우리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기로 한다. 반야호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고, 대나무 터널을 통과하고, 관음보살상 앞을 지나 등산로로 20분 정도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백화산 봉우리와 석천계곡과 반야호, 반야사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전망대 바로 아래 편백숲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올라왔던 길로 하산한다. 


한천팔경 제1경 월류봉과 우암 송시열

  사실 영동에선 반야사보다 월류봉이 더 유명하다. ‘달이 머무르는 봉우리’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갖고 있다. 높이 약 400m의 산봉우리 여섯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서로 뻗은 능선이 물결치듯 연결돼 있다. 흔치 않은 풍경이라 첫인상이 강렬하게 남는다. 첫 번째 봉우리 중턱에는 ‘월류정’이라는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다. 마치 월류봉에 화룡점정을 찍은 듯 존재감이 대단하다. 

우암 송시열이 서재로 사용했던 한천정사우암 송시열이 서재로 사용했던 한천정사

  월류봉 아래로 금강 상류의 한 줄기인 초강천이 ‘콸콸’ 소리를 내며 휘돌아 흐른다. 초강천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있어 월류봉에 오를 수 있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보기로 한다. 봉우리에 오르면 월류봉을 볼 수 없으니. 


  월류봉 맞은편 언덕에는 조선 후기 학자 우암 송시열이 서재로 지은 한천정사가 자리했다. 한천정사 아래에는 후손들이 우암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시열 유허비’도 있다. 우암은 이곳에서 독서와 강학을 하며 지냈다. 한천정사 대청마루에 앉아 월류봉 달빛을 감상했을 우암을 상상해 본다. 월류봉 위로 초승달이 걸린 풍경을 보러 다시 올 날을 기약한다. 


반야사

위치   충북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로 652 반야사

문의   043-742-4199

관람 시간 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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