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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밤의 백제 궁궐 나들이 - 부여 백제문화단지

글·사진 김혜영 여행작가

  678년 동안 찬란한 문화를 누린 백제는 660년 의자왕 때 신라·당나라 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만다. 웅진(공주),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겨가며 부흥을 꿈꿨던 백제였다. 122년의 사비 시대는 백제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부여에 전해오는 문화재를 통해 백제의 흥망성쇠를 되새겨 본다.

백제문화단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제 생활문화마을 전경백제문화단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제 생활문화마을 전경


백제로 떠나는 시간여행 - 백제문화단지

  백제 문화를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 일컫는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나오는 말로서 백제 궁궐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뜻이다. 백제 시대 궁궐이 전해오지 않지만, 백제문화단지에 가면 재현된 백제 궁궐을 볼 수 있다. 


  백제문화단지는 백제의 우수한 문화를 알리는 국내 최대 백제 역사 테마파크다. 완공하는 데 17년이나 걸린 대단지다. 단지 안에 백제 개국 초기 궁성인 위례성과 마지막 왕궁인 사비궁을 비롯해 백제 대표 사찰이었던 능사, 신분에 따른 주거 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백제 고분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한옥 명장들이 공사를 맡아, 건축물이 일반 드라마·영화 세트장보다 훨씬 정교하다. 1,400년 전 백제인들이 살았던 건물을 그대로 옮겨 온 것처럼 실감 난다.


  백제문화단지의 정양문을 들어서면 사비궁의 천정전이 나온다. 이곳은 신년 하례식이나 외국 사신 접견 등의 왕실 주요 행사가 치러졌던 곳으로, 매우 웅장하다. 천정전 바닥에 용을 새긴 검은 블록을 박아 화려함을 더했다. 


사비궁 옆 능산리사지 오층목탑은 뒤편 대웅전을 압도할 만큼 거대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우뚝 솟아있다. 뜯어볼수록 섬세한 모습에 감탄이 나온다. 중요무형문화재 장인들이 목탑 건립 공사에 참여해, 백제 시대 장인의 솜씨를 재현한 결과물이다.


  사비궁 너머로 노을이 지고, 사방에 어둠이 깔리면 낮과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야간 조명을 받은 건축물들이 더욱 화려해진다. 오후 6시에 관람 마감하는 백제역사문화관부터 들린 뒤, 백제문화단지에 입장하면 낮과 밤 풍경을 모두 볼 수 있다. 


 백제역사문화관은 백제문화단지 입구에 있는 국내에 하나뿐인 백제 역사 전문 박물관이다.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A부터 Z까지 상세하게 정리해 놓았다. 백제에 관한 공부를 이곳에서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전시물이 알차다. 꼼꼼히 둘러보려면 한 시간 이상 걸린다.

관광객들이 낙화암 전망대에서 백마강을 굽어보고 있다. 관광객들이 낙화암 전망대에서 백마강을 굽어보고 있다.


국보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백제금동대향로

  부여에서 꼭 봐야 할 백제 문화재가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9호)이다. 백제 시대에 탑이 많았다는데, 목조탑은 모두 소실되어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익산 미륵사지 오층석탑만 남았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가 공주에서 부여로 도읍을 옮긴 직후인 6세기경 도성 중심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됐으며, 1,400여 년 동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탑이 빈 절터에 홀로 서 있어도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백제 석탑의 완결을 보여주며 텅 빈 공간을 존재감으로 가득 채운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검이불루(儉而不陋)’를 보여준다면,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는 ‘화이불치(華而不侈)’의 대표작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진품 백제금동대향로를 만날 수 있다. 전시관의 한 공간에 단독으로 전시돼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백제금동대향로를 마주한 순간 숨이 멎는 것 같다. 


  1993년 능산리 절터 진흙 구덩이에서 출토된 이 향로는 키가 64cm나 되는 큰 향로이다. 조각이 매우 섬세해 눈을 떼기 어렵다. 몸체는 연꽃봉오리를, 뚜껑은 산봉우리가 겹겹이 쌓인 산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뚜껑 위에는 봉황을, 받침대에는 용을 조각했다. 볼수록 백제 장인의 솜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야간에 사비궁의 중심 건물인 천정전이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야간에 사비궁의 중심 건물인 천정전이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백제의 마지막 순간 - 부소산성과 낙화암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웅진성으로 피난 갔다. 남은 궁녀들은 치마를 뒤집어쓰고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다. 백제의 마지막 궁녀와 낙화암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실화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부소산성 서쪽 낭떠러지에 낙화암이 있다.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면서 지은 부소산성 안으로 들어가, 울창한 숲길을 걷는다. 강가에 다다르면 낙화암이 보인다. 사람들이 낙화암을 눈앞에 두고 낙화암을 찾는다. 궁녀들이 강물에 뛰어들기에는 낙화암의 경사가 치마폭을 펼친 듯 비스듬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목격담도, 기록도 정확히 전해오지 않는다. 삼국유사의 내용으로 백제 궁녀들의 마지막 순간을 짐작해 볼 뿐이다. 궁녀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낙화암 위에 세운 백화정에 올라 백마강을 굽어본다. 백마강은 궁녀들이 꽃처럼 지던 날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윤슬을 뿌리며 아름답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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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단지

주소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455

문의   0507-1369-7290

관람 시간 09:00~22:00(4~11월 야간개장, 월요일 휴관)

추천 관람 코스

정양문~사비궁~능사~백제 고분군 공원~제향루(전망대)~백제 생활문화마을~위례성~백제역사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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