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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어렵게 보내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일!

글_ 허승환 서울강일초등학교 교사




Q.  5학년 담임을 맡고 있어요.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하는데도 정말 힘이 드네요. 사소한 문제로 아이들 간의 다툼도 잦아지고 있습니다. 학년말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가며 슬기롭게 보낼 방법 없을까요?


  학년말이 되면서 선생님들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글입니다. 1학기 때엔 무슨 활동을 하더라도 적극적이고 열심히 하던 아이들이 헤어질 때가 다가와 정을 떼려 그러나 이젠 무슨 활동을 하더라도 불만부터 터져 나오고 열심히 준비한 활동도 시작도 하기 전에 “아, 그거 재미없는데···”, “안 하면 안 돼요?” 이런 말부터 합니다. 상처받은 선생님은 활동을 멈추고 또 하고 나선 늘 후회하는 잔소리를 한가득 퍼부어댑니다. 5, 6학년 고학년 학생들을 많이 가르치며 알게 된 것은 고학년은 1학기와 2학기가 다르고, 5학년과 6학년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5학년 2학기부터 사춘기를 맞는 아이들의 변화가 눈에 띄게 보여 교실의 분위기는 급격히 나빠집니다.

  ‘예방’을 할 수 있는 학기 초와 달리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즈음, 어떻게 하면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들과 좋은 관계로 잘 지내며 헤어질 수 있을까요?


01 훌륭한 교사는 자신을 따르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 집중한다.

  학년 말, 학급 운영을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까요?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의 저자 토트 휘태커는 그의 책에서 ‘훌륭한 교사들은 희망에 초점을 맞추고, 보통의 교사는 규칙에 초점을 맞추고, 가장 무능한 교사는 규칙을 어긴 결과, 즉 벌칙에 집착한다.’라고 했습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에 초점을 맞추면 결국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찾아옵니다. 서투른 교사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훌륭한 교사는 자신을 따르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 집중합니다. 종종 서투른 교사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한두 명의 아이에게 집중하며 모든 아이들을 날 선 칼 위에 있는 긴장 속에 살아가게 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이제 그동안의 잔소리나 훈육으로 크게 아이들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행동을 지적하느라 보내는 시간보다 따르는 아이들의 바람직한 변화에 기뻐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가르치는 한 교수님은 “난리를 치고 말을 안 듣는 아이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울고불고해도 내버려 두다 그 아이가 하루에 딱 한 번 의자에 바르게 앉아있으면 정말 폭풍 칭찬을 해준다.”라고 조언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한데 이런 마음을 보듬어줄 어른이 곁에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많은 부모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방과후에 소통할 대상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관심끌기’로 일관하며 왜곡된 방식으로 사랑을 갈구합니다. 남은 얼마 동안, 아이의 행동이 수업을 방해할 정도로 커다란 사안이 아니라면, 집중하지 않길 권합니다.



02 중성행동과 피해행동을 구별해 대응한다.

  교사가 학생들을 훈육할 때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 그리고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된다는 것, 두 가지입니다. 아들러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행동을 권장행동과 중성행동, 피해행동으로 나눕니다. 그중에서 ‘중성행동’은 학급 공동체에 폐를 끼치지는 않지만, 적절한 행위가 아닌 경우로 대개 ‘문제행동’으로 규정되곤 합니다. 예를 들면 학생이 공부하지 않는 경우, 물건을 잘 잃어버리거나 행동이 눈에 두드러지는 경우를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러는 그런 행동은 부적절한 행위가 아니라 적절하지 않을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교사는 학생의 의지를 존중해야 하며 개입할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아이의 행동 중에서 피해행동과 중성행동을 구분해야 합니다. 피해행동에 대해서는 아이를 따로 불러 대화를 나누는데, 고쳐지지 않을 경우 선생님과 아이만의 사인을 정합니다. 어깨에 손을 살짝 올려놓는다거나 그 아이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123 매직>에서 토마스 펠런 박사는 아이가 문제행동을 했을 때 화내거나 잔소리하지 않고 그냥 손가락으로 카운팅할 것을 제안합니다. “하나야!”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학생이 자기 행동에 책임지는 학급 문화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문제행동을 보인 학생에게는 자기 행동에 스스로 책임지고 생각할 시간을 주고 교사는 남은 시간을 다른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03 죄책감이 수치심으로 자라지 않도록 잘못된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오래전 가르치던 아이가 쌍욕을 하고 “이따위 학교 안 다니면 될 거 아냐?” 외치며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어머님과 통화 후 다음 날 아침, 학교에 나온 아이에게 아빠가 어떤 분이냐고 물으니,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이라며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그때 “엄마와 어제 통화하는데, 엄마가 네 모습이 아빠 모습과 똑같다며 우시더라.”라고 말하니 아이는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이를 안아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욱해도 참도록 노력해보자. 때론 잘 알 되도 괜찮아. 선생님이 네가 실수하고 실패할 때마다 다시 가르쳐주고 다시 말해줄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야.”

  죄책감과 수치심은 모두 도덕적, 사회적 기준의 위반과 관련된 정서지만 죄책감은 주로 행동에 초점이 있는 반면, 수치심은 사람 전체에 초점이 있습니다. 죄책감은 “나는 잘못된 행동을 했어”처럼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이지만 죄책감이 반복되면 수치심으로 자랍니다. 수치심은 “어차피 난 안 돼, 나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처럼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으로 자라기 쉽습니다.

  교실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가 배우는 건 선생님의 말씀이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존중은 존중으로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잘못을 대하되 아이들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고, 자칫 죄책감이 수치심으로 자라지 않도록 “괜찮아, 때론 안 될지도 몰라, 그건 아주 당연해!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줄게.”라는 자세를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아이들과 남겨진 짧은 시간, 더욱 행복하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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