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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된 아동·청소년 누군가의 ‘놀이’는 ‘범죄’가 된다

글 _ 이명화 서울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장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청소년들은 얼마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을까? 서울시에서 전국 첫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를 상담한 결과에 의하면, 중학생(14~16세)이 전체의 63%를 차지했으며, 4명 중 1명은 ‘재범’의 경험이 있었다. 문제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 아동·청소년 10명 중 9명은 본인의 행동에 대해 성폭력 가해 행위라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범죄’가 아닌 일상적인 ‘놀이문화’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살펴보고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방안을 논의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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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n번방, 이 시기에도 상담실은 붐빈다


  “김모(13)군은 반에서 좋아하는 여학생이 자신을 거부하자 여학생의 얼굴에 나체사진을 합성하여 단체 채팅방에 유포하였다. 김군은 인터넷에서는 ‘지인합성’이 흔한 일이라 장난삼아 한번 따라 해봤다고 했다.” 

  “이모(13)군은 오픈채팅방에 들어갔다가 음란물이라고 생각하여 다운받았으나 이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로, 수사를 진행하던 중 경찰에 의해 적발되어 상담을 의뢰하였다. 이군은 채팅방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다운받았고, 자신은 불법촬영물인 줄 몰랐다며 억울해하였다.”

  “강모(17)군은 SNS에서 ‘지인 합성’ 광고를 보고 여자친구 사진을 포르노와 합성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업체는 의뢰한 강군을 되려 협박하여 엽기 동영상을 찍게 하고 강군의 신상정보와 동영상을 유포하여 돈을 갈취하였다.”


  위와 같이 부모나 학교 선생님을 통해 상담실에 의뢰된 청소년 중에 디지털 매체를 기반으로 한 범죄행위에 연루된 청소년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수년 전이다. 성교육과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서울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는 2014~2016년에 또래 간 성폭력 사건에 주목하고 상담사례를 분석해 세미나를 여는 등 관심을 모았었다. 또래 간 성폭력의 내용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통신매체이용음란 및 카메라 등 이용촬영’이었다. 이에 2019~2020년에는 본격적으로 디지털 성폭력 가해상담을 보다 세분화하여 상담자를 훈련하고 이에 따른 상담을 진행하였다. 상담에 참여한 총 91명의 가해 청소년 상담분석결과1)를 보면 피해자와의 관계는 친구관계(44%), 그중에서도 이성관계(69%)가 가장 많았고 행위 특성에서 가·피해 행위는 주로 일대일(74%)의 관계에서 발생하였다. 


  가해유형 분류에 의하면 1순위는 통신매체 이용(43%), 2순위는 카메라 등 이용촬영(19%), 3순위는 불법촬영물 소지 등(11%), 4순위는 허위영상물 반포 등(5%), 5순위는 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강요(3%) 순으로 나타났다. 잠재적 가·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높은 사례는 지하철,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음란물이나 성표현물을 거리낌 없이 펼쳐보는 행동이나 온라인에서 자신의 자위행위 동영상을 공유하기 위해 게시하고 끊임없이 성적 대화를 할 상대를 찾는 경우, 온라인상에서 성적 대화를 주도하고 포르노 영상을 공유하는 경우 등이다. 


그렇다면 이런 행위를 하는 청소년들은 누구인가? 

  사례분석 결과 청소년 가해자의 주된 연령은 13~16세 중학생(57%)이며 주 양육자인 부모가 함께 동거하는 가정 내 청소년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전에 범죄 경력 등 기타 학교에서도 특별히 징계를 받은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이다. 표면적으로 대상에 따른 특이점이 없어 디지털 성범죄는 가해 사안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주변인들이 예측하고 파악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청소년 문화는 디지털 환경 내에서 많은 부분이 형성되고 소통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청소년들은 디지털 문화가 자신과 일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디지털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항시 접하고 있다. 때문에 범죄라는 경각심이 부족해질 수 있으며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한 사안이 크게는 범죄로 확장될 수 있다는 민감성이 떨어지고,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온라인상에서는 일방적 소통이 아닌 상호 소통 속에서 게임, SNS, 영상물 공유, 유포 등이 이뤄지고 있어서 죄의식이 매우 희박해질 수 있고, 다수 구성원으로 조성된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범죄로 드러나기 전 잠재된 청소년이 많을 수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가해 연루된 청소년들, 피해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디지털 성폭력 가해 청소년들을 상담하다 보면 일반 성폭력 가해 청소년에 비해 범죄 인식 정도가 낮다. 일반 성폭력 가해자들은 범죄행위를 숨기는 반면, 디지털 성폭력 가해 청소년들은 불법촬영물을 SNS 유포 등을 통해 공유 및 게시하는 등 또래 간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들은 오프라인에서 관계 맺기 어려움을 주로 호소하였으며 게임 등 온라인상에서 관계유지와 소속감을 갖기 위해 디지털 성폭력 방관자 혹은 행위자로 행동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온라인상에서는 타인을 주로 약자로 선택하여 가해행위를 하고, 오프라인에는 이와 같은 행동들이 드러나지 않아 매우 평범한 학생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청소년 가해자들이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과 새로운 관계 구축을 위해 가벼운 수준(게임상에서 성희롱이나 외모 비하 발언 등)에서 성범죄를 시작하여 사진 등을 공유하면서 관계 맺기 허용범위를 넓혀나간다. 앞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이들은 때로는 범죄대상자를 찾고 있는 가해자들에게 포착되어 피해자가 되기도 하면서 가·피해 행위가 혼재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디지털 성착취의 그늘, 디지털 시민성 시급! 

  작년 n번방에 이어 최근 검거된 남성 성착취물 유포 사건에서 보듯이 디지털 세계에서의 성착취 먹이사슬은 여성 청소년뿐 아니라 남성 청소년들에게도 미끼를 던지고 있다. 무엇이 디지털상에서의 범죄인지 그 유형과 처벌법을 알게 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공감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 구조를 고발할 수 있도록 디지털 시민성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1)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2020), 청소년디지털성폭력상담사례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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