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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하고 싶은 매력적인 평가 - 책 읽고 구술평가 하기

글·사진 박유미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국어교사

  교사가 어떤 평가를 마치고 나서 다시 그 평가를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지식을 묻는 지필평가를 하고 나면 이 평가가 학생의 역량을 성장시켰는지 의심스럽다. 의미 있는 수행평가를 해 보기도 하지만 채점과 기록에 많은 시간이 든다. 교육적으로 의미가 풍부하면서도 교사가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는 평가 방법이 어디 없나 고민할 때 구술평가를 만났다. 

 

  구술평가는 말로 하는 수행평가이다. 널리 알려진 방식으로는 다수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발표나 평가자와 학생이 1:1로 하는 면접이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모둠 구술평가는 학생 사이의 소통성을 높일 수 있어 좋다. 지식을 묻는 평가를 구술평가로 할 수도 있지만 책을 읽고 하는 구술평가는 문해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함께 신장시킬 수 있어서 좋다. 


  구술평가의 대상 도서로 국어과에서는 소설, 시집, 사회문제를 다룬 책, 진로 관련 책, 인물 이야기를 담은 책, 그 외의 일반적인 인문·사회 분야의 책 등을 활용한다. 교과마다 자기 교과와 어울리는 책을 찾아 목록을 구성하면 좋다. 모든 교과에서 해당 교과의 특성을 살린 책을 선정하여 독서 구술평가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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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를 배우는 책 읽기와 독서 구술평가 


  학생들이 배울만한 인물 이야기를 담은 책 목록을 만들고 구술평가를 했다. 수업은 크게 네 단계로, 책 고르기와 책 읽기, 구술평가를 준비하고 실행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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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는 일련번호가 매겨진 열 개의 구술평가 문제를 제시하고, 학생들은 그중 두 개의 문제에 대해 답한다. 이때 학생은 아무런 원고나 메모를 보지 않는다. 원고가 있으면 내용을 보고 줄줄 읽게 되어 구술평가의 취지가 살지 않는다. 모둠원 네 명의 학생들이 서로를 보며 답변하고 교사를 바라보지 않도록 한다. 그래야 교사는 학생들끼리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소통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구술평가는 모둠별 평가 순서를 먼저 정해 두고, 학생이 각자 평가 문제를 고른 뒤 그 문제에 대해 답변하며 진행된다.


  구체적인 평가의 장면은 어떨까? 교실에 학생들이 네 명씩 모둠별로 앉아 있다. 평가 순서는 모둠 대표가 나와서 어느 모둠부터 할지 가위바위보로 정한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모둠부터 1순위로 평가한다. 가위바위보를 이겨서 첫 번째로 하는 것이 져서 첫 번째로 하는 것보다 모둠 대표가 느끼는 부담감이 적어서 좋다. 


  평가 순서를 정했으면 교사는 평가할 모둠 옆에 가서 선다. 평가 모둠의 책상 위에는 구술평가 문제가 적힌 종이만 한 장 놓여있다. 평가 차례가 아닌 학생들은 교사가 제시한 학습 활동을 수행한다. 교과서 학습활동 풀기나 간단한 글쓰기 등 필요에 따라 과제를 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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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술평가 문제는 미리 제시되므로 학생들은 1번부터 10번까지의 구술평가 열 문제에 대한 답변을 모두 준비해 둔다. 하지만 평가 현장에서는 열 개의 문제 중 두 문제를 무작위로 골라 답변한다. 답변할 두 문제는 스톱워치를 활용하여 뽑으면 간편하다. 교사가 스마트폰의 스톱워치를 켜서 구술평가를 할 모둠 학생들에게 각자 자기 문제를 뽑게 한다. 교사가 스톱워치를 실행하고 학생에게 넘겨주면, 학생이 스톱워치의 버튼을 눌러서 그때 나온 숫자로 답변할 문제를 정한다. 38이 나오면, 3번과 8번 문제에 대답하고, 10이 나오면, 1번과 10번 문제에 대답한다. 00이나 22와 같이 똑같은 숫자가 나오면 다시 뽑는다. 


  스톱워치로 고른 두 가지 문제로만 평가할 수도 있지만 학생의 소통 능력을 더 향상하고자 하면 3차 답변까지 들으면 좋다. 모둠에서 협력해서 질문을 만들게 하고, 그 질문에 대해 답변하게 하거나, 서로 즉석에서 책과 관련된 질문을 주고받도록 하여 학생끼리 상호 작용이 일어나게 할 수 있다.


인물 이야기가 담긴 책의 구술평가 질문


  ① 책에서 가장 배우고 싶은 삶의 태도를 말하고 그 이유를 말해보시오

  ② 책의 내용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말해보시오

  ③ 책 속에서 자기와 가장 닮은 인물을 찾고, 왜 자신과 비슷한지 설명하시오.

  ④ 책 속에서 자기와 가장 다른 인물을 찾고, 그 사람에게 배울 점이 무엇인지 말해보시오

  ⑤ 책의 한 인물을 골라 그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성취를 거둔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보시오

  ⑥ 책의 한 인물을 골라 그 인물에게 인생의 어려움은 무엇이었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말해보시오

  ⑦ 책의 한 인물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하고, 그 인물이 어떻게 답변할지 상상해서 대답하시오

  ⑧ 책에 나오는 인물 둘 이상을 언급하며 그들이 어떤 면에서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 다른지 설명하시오

  ⑨ 책을 읽기 전과 읽은 뒤에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거나 확고해졌는지 설명하시오

  ⑩ 책 제목의 의미를 추측해 설명하고, 자신이 새롭게 책 제목을 짓는다면 어떻게 지을지 말해보시오



독서 구술평가가 좋은 이유


  독서 구술평가는 평가 도구로써 여러 장점이 있다. 첫째, 학생이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고 기억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구술평가 문제의 답변을 구성하기 위해 책을 꼼꼼하게 읽는다. 또한 원고를 작성하면서 나름대로 지식을 구성하게 되고 그 지식을 말하기로 준비하면서 지식을 재구성하여 기억하는 방법을 익힌다. 


  둘째, 타인과 책의 의미를 나누며 소통하는 방법을 공부할 수 있다. 구술평가를 준비하는 시간에 질문에 대한 답변을 쓰면서 친구들, 교사와 소통한다. 혼자서는 의미를 구성하기가 어렵지만 함께 의견을 나누면 책의 의미가 풍성해진다. 또한 구술평가 연습을 모둠별로 하면서 서로의 말하기를 듣고 피드백하는 동안 어떻게 나의 말을 잘 전달할지 고민할 수 있다. 타인과 책의 의미를 이야기하면서 고급스러운 소통 방법을 배우기에 의미가 있다.


  셋째, 수업 이외 시간에 교사의 채점 부담이 적어 교사가 평가 이후 학생 기록에 더 시간을 낼 수 있다. 수행평가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교사들이 수행평가 채점에 진을 빼는 경우가 많다. 주로 분량이 많은 글쓰기 평가를 할 경우에 그렇다. 하지만 구술평가는 교사가 해당 수업 시간에 채점을 끝낼 수 있어 가뿐하다. 물론 구술평가를 하는 동안은 짧은 시간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교사의 채점 부담이 덜하면 교사가 평가 후 학생의 성취를 세부능력특기사항에 기록하는 데 더 정성을 쏟을 수 있다. 


  넷째, 성취 정도를 평가하기 쉬워 변별력이 높은 평가 도구이다. 수행평가는 적당히 참여만 하면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관습적인 인식이 있는 학교들이 있다. 그러나 수행평가를 성취에 따라 채점하지 않으면 결국 지필평가의 점수로 성적 변별이 되어 학생들이 수행평가에 소홀하게 되고 오히려 참여 동기가 떨어지기도 한다. 학습 태도를 평가의 주요 요소로 삼는 수행평가도 있지만, 학습 결과를 성취 정도에 따라 평가하는 수행평가도 필요하다. 구술평가는 학생의 성취 정도를 알기에 알맞다. 말하기는 글쓰기와 달리 빠른 시간 내에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기에 그렇다.


   더불어 구술평가는 참여율이 높고 평가를 포기하는 학생이 적다. 서로 얼굴을 보며 하는 평가이기에 학생은 교사와 또래 친구 등 타인을 의식하기도 하고, 모둠에서 서로 도우며 답변을 준비할 수 있기에 낙오되는 학생이 적어 교육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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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구술평가의 채점 요령


  글쓰기와 말하기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글쓰기에는 고쳐쓰기가 있지만 말하기에는 고쳐 말하기가 없다. 따라서 구술평가 전에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수업 때도 충분한 준비 시간을 준다. 준비 시간에 답변 내용을 모둠별로 연습하면서 상호 피드백을 주고받도록 하면 좋다. 서로 답변 시간을 점검해 주고, 말의 내용이나 전달력을 평가하도록 한다. 모둠에서 연습하다 보면 학생들이 잘하는 학생의 말하기 모습을 모방하며 배우게 된다. 친구의 말하기를 평가하고, 자신의 말하기에 대한 검토 의견을 받으면서 말을 구성하는 능력, 말의 전달력이 향상된다. 


  구술평가의 평가 기준은 간단하다. 말의 내용, 말의 전달력이다. 듣기 태도는 ‘다른 사람이 말할 때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말을 듣는 데 집중하는가’를 기준으로 통과/미통과로 한다. 시간은 평가 기준이 아니라 지켜야 할 원칙으로 넣는다. 평가 기준을 <표3>과 같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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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점 기준표(루브릭)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좋다. 채점 기준표가 있으면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여러 선생님이 함께 평가를 진행하는 경우 채점 기준을 공유하기도 좋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미리 채점 기준표를 제공하면 학생이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어 과제를 수행해야 할지 이해하고, 자기 점검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양한 루브릭과 책의 유형별 구술평가 문제 등 구술평가에 대한 다양한 정보는 <함께 여는 국어교육> 146(여름호)에 자세히 나와 있다. 


  평가 현장에 긴장이 넘치지만 학생들은 준비하며 함께 웃었고, 평가 결과는 변별력이 있지만 낙오되는 학생이 없었다. 다시 시도하고 싶은 평가라는 건 평가 도구가 누릴 수 있는 영예가 아닐까? 다음에도 구술평가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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