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탁 쌤과 산골 학교 아이들의 좌충우돌 한 해 살이


산개구리 호르르

글_ 탁동철 강원 조산초등학교 교사


  버드나무에 연둣빛 물오르고 산개구리 호르르, 새곰밭집 노인은 밭고랑을 캔다. 우리 아이들도 줄줄이 일어서는 봄을 맞이해야지. 우리 반 다섯 아이 중에 현재 유도 선수가 셋, 한때 유도부였던 아이가 둘인데 다들 체격 좋고 성격도 좋아서 내가 하자는 대로 잘 들어준다. 스마트폰 게임 적당히 하라 하면 적당히 하는 척해주고, 축구하자 하면 축구하고, 노래하자 하면 변성기 낮은음으로 느릿느릿 노래한다.


  교실 창턱에 손 짚고 서서 운동장에 파랗게 돋아나는 잔디와 소나무 숲 위를 날아가는 까마귀 두 마리를 바라보다가 고개 돌려 아이들한테 말했다.


  “오늘 봄을 써보세요. 여러분이 만난 봄. 그 자리 그 순간으로 가서.”


  다들 별 불만 없이 책상 서랍에서 <새롭게 하기> 공책을 꺼내 한두 줄 적는다. 한 자리에 머물러 살핀 것이 있는지, 더 다가가서 들여다본 것은 무엇인지. 지금 찾을게요, 하며 밖으로 후다닥 뛰어나갔다 들어오는 아이도 있고.


겨울을 지나 봄 춤을 추다


  아이들 발표 듣고, 나도 공책에 ‘개구리가 알 풀었다. 물도랑에 알 뭉텅이가 뭉텅뭉텅.’ 이렇게 쓴 것을 읽고, 다시 말을 이었다.


  “춤을 출 건데. 봄 춤.”


  마뜩잖은 얼굴로 “아흐으…… 에히이…….” 하면서도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나 빙 둘러선다.


  어제는 윤서가 만든 ‘목련꽃 털썩’ 춤을 췄으니까 오늘은 성원이 차례다. 성원이가 우물쭈물 부끄러워하면서도 두 팔 벌려 올리며


  “뒷산에.”


  나랑 아이들이 성원이 몸짓을 따라 했다. 동작을 크게, 아주 크게. 두 팔을 활짝 벌렸다가 산처럼 모으며 “뒷산에서 …….” 하나 둘 셋 둘둘 셋.


  “캭캭!”


  두 손을 헤엄치듯 휘저으며 앞으로 앞으로. 우리도 다 같이 캭캭, 하며 하나 둘 셋 둘둘 셋 팔을 저어 앞으로.


  “검은 새가 캭캭”


  허공을 헤엄치며 하늘 멀리 쭉쭉. 박자 넣어 발걸음 떼고, 움직임 작게 크게 빠르게 느리게 하며 오늘 아침 ‘캭캭춤’ 완성. 분위기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서 틀어놓고 리듬에 맞추어 하나 둘 셋 캭캭. 울어대는 새가 되었다가 산을 높게 세우고 날아가는 검은 새가 되어 교실을 걷고 휘저으며 한바탕 일어서는 봄이 되었다.


  ‘해가 쨍쨍’이나 ‘꽃이 활짝’ ‘바람 살랑살랑’ 따위처럼 굳어진 말로 채워진 봄은 우리 것 아니다. 내일도 모레도 오래 머무르고 한 발 더 다가가고 속으로 파고들며 하루하루 새롭게 만나는 봄만 우리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들어올 것이다. 아니, 더 나가야지. 귀로, 손으로, 냄새로, 맛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으로, 세상을 처음 만난 듯 만나야지.


귀로, 손으로, 발로 만나는 봄


  자리에 앉아 숨을 가라앉히며 아이들한테 물었다.


  “개구리 소리 들었어?”


  한 명은 들어봤다 하고, 다른 아이들은 못 들었다 한다. 바다가 가깝지만 마을에 논이 있고 농사짓는 이웃이 있으니 개구리가 안 울어줄 리 없다. 누군가 저게 개구리야, 하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겠지. 관심 없으면 목 위에 머리 있고 머리 위에 하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처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가 엊저녁에 알이 뭉텅뭉텅 뜬 도랑물 둑에 쭈그리고 앉아 녹음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호르르 호르르르…….”


  산개구리 울음이 교실에 퍼졌다. 아이들이 핸드폰 녹음기 쪽으로 귀를 바짝 세웠다.


 “어떻게 들려?”


  저마다 자기가 들은 대로 소리를 냈다.


  “꼬르륵꼬르륵요.” “꾸루룩꾸루룩” “깨꾸륵깨꾸륵”


  아이들 말을 칠판에 적었다. 개구리 개굴, 개는 멍멍, 문은 드르륵, 이 따위만 깨버려도 어디냐.


  “눈 감아. 아, 입 벌려.”


  벌린 입들에 오늘 아침 학교 오며 꺾은 나뭇가지를 똑똑 잘라서 넣어주었다.


  “무슨 맛이 나?” “매운맛이요.” “화장품 맛.”


  “이런 맛 나는 나무가 뒤뜰에 있거든. 가서 찾아.”

   아이들이 뒤뜰 노란 생강나무 꽃 아래로 모였다. 내가 먼저 양말을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들도 양말을 벗었다.


  “지금부터 봄을 만날 거야. 귀로 콧구멍으로 손바닥 발바닥으로.”


  수면 안대로 눈 가리고, 양말 벗고, 앞사람 어깨 꼭 잡고 칙칙폭폭 줄줄이 걸었다. 눈을 뜬 내가 앞장섰다.


  “천천히. 나무에 머리 박으면 나무가 아프잖아.”


  맨발로 디디니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럽다. 솔잎을 밟을 때는 따가워서 절절매고, 햇빛 닿는 모래밭을 지날 때는 “따뜻해.” 새로 돋아나는 풀 무더기를 지날 때는 “차가워.” 한다. 손 내밀어 나무 둥치 만지고, 멈춰 서서 소리가 오는 쪽으로 귀 기울였다. 이곳에서 저곳까지는 얼마나 놀랍고 신기한가, 아름다운가. 이곳이 신비하지 않으면 지구 끝 세상 어디도 신비한 곳은 없는 것. 오늘 만나는 봄이 두근거려야 내일 만나는 봄도 그 다음날 만나는 봄도 두근거리지. 직박구리 소리 킥키읏, 곤줄박이 찝찌루루, 차 소리, 가랑잎 바스락 소리, 수돗가에 수돗물 쫄쫄 쪼르륵. 코 벌름벌름 귀 쫑긋 세우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봄이다. 물오르는 버드나무도 봄, 노란 생강나무꽃도 봄. 새가 울고 바람 사르락 풀싹을 깨우고 우리는 걷는다. 봄이 걷는다.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