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습관적으로 욕하는 명진

학교상담 전문가가 전하는 우리 아이 심리


글_ 김서규 경기대 교육상담학과 겸임교수(전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말끝마다 습관적으로 욕을 사용하는 아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친구 혹은 학급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고, 온라인에서 난무하는 나쁜 단어들 때문이기도 하다. 시도 때도 없이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아이들은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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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중학교 2학년 남학생 명진은 얼핏 보면 모범생같이 생겼지만, 욕을 너무 잘해서 학교에서 유명하다. 명진의 욕설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담임선생님마다 제발 욕하지 말라고 주의를 시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명진은 친구들과 다툼이 있을 때마다 별의별 욕을 동원해서 상대를 억누르는 방법을 체득한 후, 이 좋은(?) 방법을 버리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점점 숙달되었다.

  일이 터진 그 날은 모둠 수업을 하는 시간이었다. 같은 모둠이 된 여학생들이 “우리는 따로 할 거야.” 하면서 명진을 피해 새로운 조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명진은 “니네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선생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조를 만들면 안 될걸.” 했다. 그러나 여학생들은 “우리가 알아서 해. 신경 끄라고.” 하면서 나가더니 한참 후에 돌아와서 “포스트잇과 색종이, 전자석을 좀 나눠줘. 모둠 활동을 할 수 없단 말이야.” 했다. 명진이 “우리 조에서 쓸 것도 없어. 너희들이 나갔으면 알아서 구하든가.” 하자, 서로 분위기가 싸해졌다. 여학생들은 재료가 없어서 실험하지 못하게 되자 부득이 명진의 조로 돌아왔지만, 한숨을 쉬면서 조별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명진이 “왜 한숨을 쉬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하자 한 여학생이 “넌 전에도 나한테 함부로 말하지 않았어?” 했다. 그러자 명진은“이런 씨X, 존X 병X 같은 게, 웃기고 앉아 있네. 내가 언제?” 하고 욕설을 했다. 여학생이 움찔하자 그는 “내가 말을 함부로 한다고? 그래. 난 가정교육이 안 됐어. 니X 엄마는 된장찌개 장인이야. 됐어?” 했다. 여학생이 충격을 받고 울기 시작하자, 여학생들이 모여 들여서 “왜 그래?” 하고 걱정해주기 시작했고, 남학생들은 남학생들대로 모여 들여서 “뭐야, 뭐?” 하면서 대항하다 보니 교실엔 두 개의 둥근 원이 생겼고, 이렇게 되자 조별수업이고 뭐고 끝이 났다.


“욕을 심하게 하면 애들이 감당을 못해요. 그게 제가 이기는 방법이에요.”
이런 아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진단

  교과 선생님이 1차 현장을 수습하고, 담임선생님이 사건을 인계받은 후, 명진은 상담실로 위탁되었다. 상담 선생님이 명진에게 문제의 사건을 들은 후 물었다. “그 여학생이 제 마음대로 조를 만들어서 나갔다 들어왔다 하니까 억울했겠다. 그렇지만 왜 욕을 했니? 그렇게 되면 아무리 잘했어도 결국 네가 나쁜 사람이 되는데?” “제가 좀 욱하는 성질이 있어요. 그래서…” 하지만 화났다고 다 욕을 하진 않는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초중고생들의 욕설 사용실태와 태도에 관한 연구>(2010. 양명희. 강희숙)를 보더라도, 욕을 하는 이유는 습관이 돼서(초등 12.6%, 중등 29.4%, 고등 33.4%), 남들이 사용하니까(초등 29.6%, 중등 16.7%, 고등 9.8%) 남들이 나를 만만하게 볼까 봐(초등 18.6%, 중등 5.6%, 고등 1.6%)니까, 욱하는 성질보다는 습관인 탓이 더 크다.

  명진은 상담 선생님과 몇 차례 상담했는데, 그 결과 밝혀진 내용은 이랬다. “엄마도 선생님도 저보고 양보하면서 살라 하시지만 그러다간 다른 애들에게 무시당해요. 그럴 때 욕을 하면 남자애들은 갑자기 소심해지고, 여자애들은 울어요. 욕을 심하게 하면 애들이 감당을 못해요. 그게 제가 이기는 방법이에요. 그렇지만 제 잘못도 있다고 생각하면 먼저 가서 사과해요. 잘못한 게 없으면 끝까지 사과 안 해요.” 명진은 이미 욕의 효과에 대해서 논문을 써도 될 정도로 명인이 되었고, 사후처리 방식도 나름 숙련되어서 여태 그 많은 욕을 하고도 학교폭력위원회에 넘겨지지도 않았다. 이런 아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상담 선생님은 명진의 부모님을 학교에 모시고 명진의 욕 철학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긴 얘기 끝에 아빠가 말씀하셨다. “지금 보니 우리 아들이 저를 닮았네요. 저는 아들이 말을 안 듣거나 공부를 안 하면 욕을 하면서 혼을 냈지요. 선생님께서 명진의 말을 안 듣고 무조건 콱 눌러버리는 사람이 주변에 있었느냐고 물으시는데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제가 그 사람입니다.”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화 안 내시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진은 욕이 문제가 아니라 압도적으로 남을 눌러서 이기는 승패법을 익혔다는 게 더 큰 문제 같습니다. 너도 이기고 나도 이기는 윈윈법을 가르쳐 주시면 욕은 필요 없을 겁니다.”


지도

  그날 이후 아빠는 명진과 시간을 내서 놀아주면서 명진의 말을 귀담아듣고 부드럽게 반응해 주시기 시작했다. 명진도 항상 무섭도록 압도하시던 아빠가 편안하게 다가오자 밝아졌다. 시간이 지나자 명진 엄마가 “이제야 제가 바라던 가족생활을 하는 것 같아서 정말 더 바라는 게 없어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였다. 그 무렵 명진은 양보하면 무시당한다던 신념을 버리고 ‘친구 체면도 살려주면서 나도 밀리지 않는’ 새로운 방식에 익숙해졌다. 명진아, 욕을 써서 기어이 친구를 이기기보다 표준말로 서로 어울려 지내는 게 더 행복하지 않니? 어른들도 물론 욕을 안 써야 하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