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자살하고 싶은 아이

학교상담 전문가가 전하는 우리 아이 심리


글_ 김서규 경기대 교육상담학과 겸임교수(전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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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10대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 역시 자살이다. SNS에는 자해 인증 샷을 올리는 10대들의 게시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가정불화, 입시 스트레스 등으로 삶에 대한 냉소가 점점 강해지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 사라질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걸 깨달을 때,
그래서 이 무의미한 세상을
견딜힘이 생길 때가 아닐까?



문제

  민수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다. 일요일 새벽, 민수는 아파트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밑으로 뛰어내렸다. 지상에 가까웠을 때 나무에 걸려 두어 바퀴 회전하면서 화단에 ‘쿵!’ 하고 떨어졌다. 4층 이상에서 떨어지면 사망할 확률이 높지만, 다행히 민수는 죽지 않았다. 전날 1층 주민이 나무를 심으려고 구덩이를 팠다가 일단 부드러운 흙으로 메워놓은 곳으로 떨어져서 충격이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온몸이 으스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 후 수없이 많은 수술과 투병 생활이 길게 이어졌다. 부모님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살하려다 다치면 보험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가계도 기울었다. 민수네 가정은 민수의 자살 시도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모든 상황이 뚜렷이 바뀌었다.


진단

  민수에겐 무슨 힘든 일이 있었을까? 이미 대답을 할 수 없는 형편이기도 했지만, 본인도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이나 담임선생님도 더 심한 자극이 될까 봐 물어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상담 선생님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방문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느 날 민수가 “선생님, 양자역학에 대해서 아세요?” 하고 물었다.

  “나는 잘 몰라. 네가 설명 좀 해줘.”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분자들의 우연한 결합이에요. 사는 건 분자들의 결합이고, 죽는 건 분자들의 해체예요. 그래서 죽거나 살거나 하는 건 특별한 의미가 없어요. 전 지금도 죽음이 무섭지 않아요. 제가 죽었더라면 엄마, 아빠가 슬퍼하겠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에요. 이미 죽은 사람에겐 의미가 없잖아요.” 상담 선생님은 민수가 강의하는 양자역학에 대한 긴 강의를 들었다. 자세히 들어보면 양자역학을 빙자해서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말하는 셈인데, 끝까지 들어봐도 민수는 자신의 생활과 연결해서 말하진 않았다. 그래서 왜 죽으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민수는 친구가 없어요. 다른 아이들이 말을 걸면 조롱하는 말투로 이상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못 하면 비웃으면서 대화를 끊어요.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해서 다른 애들은 대꾸도 못 해요. 별명이 프랑켄슈타인인걸요.” 이어 민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민수가 어릴 때부터 제가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느라 어떻게 지내는지 거의 몰랐어요.” 그때 민수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이번 일이 있고 나서 시어머니 문제로 남편과 부부싸움을 했어요.”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였을까?

  민수 어머니가 설명한 내용은 이랬다. 민수 아버지는 외아들이어서 어머니를 집에 모셨는데, 그때부터 민수 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심하게 시키셨다. 뭐 하나 잘못한 일이 있으면 직장에까지 찾아와서 민수 어머니를 불러내서 혼을 내셨다. 민수 어머니가 되도록 집에 늦게 들어오면서 시어머니를 피하자, 이제는 민수를 심하게 구박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 중 하나는 ‘병신 같은 게, 나가서 죽어라.’였다. 민수는 창문에서 뛰어내리기 전날,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에게 예쁜 손편지와 선물을 하나씩 마련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는데, 할머니에게는 선물도 없이 ‘시골로 내려가서 사세요.’라는 말만 써놓았다는 것이다. 


지도

  학교에서는 위기관리위원회를 열어서 이 사건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민수는 친구가 없어서 정서적으로 고립되었다. 둘째, 할머니로부터 오랫동안 구박을 받아서 억울함이 쌓였다. 셋째, 엄마는 아들을 보호해주지 못했고, 아빠는 아들과 의사소통을 안 해서 의지할 곳이 없었다. 넷째, 슈뢰딩거의 양자역학과 니체의 허무주의를 익히면서 죽고 싶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민수 부모님이 이런 의견을 전해 들으시더니, 할머니를 시골로 내려가게 하고 저녁 시간에는 엄마가 일찍 들어와서 민수를 돌봤다. 반려동물을 분양받아 생명을 돌보는 일의 소중함도 경험하도록 했다. 주말이면 삼촌네 밭에 가서 토마토와 딸기도 수확했다. 민수로서는 15년 만에 처음 느끼는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여전히 골격이 여기저기 뒤틀리고 간신히 절뚝거리면서 걷지만, 민수의 얼굴에 자주 웃음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건 그 무렵이다.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 사라질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걸 깨달을 때, 그래서 이 무의미한 세상을 견딜힘이 생길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