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꿈이 없는 영길

학교상담 전문가가 전하는 우리 아이 심리

글_ 김서규 경기대 교육상담학과 겸임교수(전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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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종종 ‘장래 희망이 뭐니?’라고 물으며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분명 초등학교 때만 해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꿈을 잃고 의욕도 함께 잃은 아이들이 늘어난다. 아이들이 꿈을 되찾게 하려면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문제
  영길은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인데, 어느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날 담임선생님이 전화하자 엄마가 받아서 “아이가 아파요.”라고 했고, 다음날엔 “저하고 싸워서 안 가니 며칠 기다려 주세요.”라고 했고, 그 후엔 울먹이며
“아무리 빌어도 학교에 안 간다네요.”라고 했다. 급기야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러 갔지만 영길은 제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친구들이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았다. 중국에서 근무하던 아빠가 급히 귀국해서 설득한 끝에 거의 한 달 만에 학교에 왔지만, 공부를 접은 게 뚜렷해 보였다.


진단
  상담실에 온 영길은 화난 것도 우울한 것도 아닌, 무기력한 태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영길을 데리고 학교 뜰을 산책하면서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를 썼다. 시간이 꽤 지난 후 영길로부터 어렵게 알아낸 이야기는 이랬다.
영길은 중학교 때 공부도, 농구도 잘했고 아무 문제가 없이 지내던 아이였다. 문제는 특목고 입시에서 떨어지고 일반고로 진학했을 때부터였다. 패배자가 된 것 같고 초조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특목고에 간 친구들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다른 일반고에 다니는 친구도 훌륭하게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며 공부했지만, 성적은 변화가 없었다.
그 무렵 영길은 게임에 빠졌다. 여자 친구도 생겼다. 그러자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영길은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만회하려고 학원을 끊고 몇 달 동안 집에서 목숨 걸고 밀린 공부를 하자는 특별작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함정이 될 줄이야! 학원만 끊었을 뿐, 공부는 안하고 게임에 중독되었다. 여자 친구가 문자로 ‘나는 네가 너무 부담돼.’라며 끝내자던 날, 공부라도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인터넷 강의 버튼을 눌렀지만, 기간만료로 강의실에 입장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 내가 왜 이러지? 난 끝났어.’ 하면서 펑펑 울었다.

  영길은 우울증이라고 보기에는 활동이 많고, 소진(burn-out)이라고 보기에는 덜 지쳤기 때문에 무기력증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1970년대 마틴 셀리그만이라는 심리학자가 탈출구 없는 우리에 개를 넣고 전기 자극을 주었더니, 도망치려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자 체념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 탈출구를 열어둬도 우리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을 발견했다. 영길도 나름 노력했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자, 포기하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학습된 무기력에 걸린 것이다.



지도
  상담 선생님은 꿈을 버린 영길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맨 먼저 ‘꿈도 희망도 없다고 계속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거니? 아니면 내가 도와줄 테니 벗어날 거니?’ 하고 물어서 ‘나오는 방법이 있다면 한 번 해보겠어요.’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다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뭐니?’ 하고 물었더니 ‘여자 친구와 사귀면서 낯가림이 심한 게 문제였어요. 사람을 만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이걸 없애고 싶어요.’라는 다소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그러나 영길에겐 이게 탈출하는 첫걸음인가 보다. 인정해 주는 게 좋다. 그러자 엄마가 저녁 시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소개하셨다. 영길은 낮엔 학교, 저녁엔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더니 점차 또래 아르바이트생들과 친해졌고, 그 결과 무기력한 기분이 많이 사라졌다.

  상담 선생님은 이만하면 워밍업이 됐다고 생각하고 영길의 생각을 바꾸는 일을 했다. “영길아, 다른 사람들이 너를 다 앞질러 지나가고 너만 뒤처진다고 생각하는구나. 하지만 남들과 비교하며 패배감을 맛보면 시간만 낭비하는 게 아니겠니? 그 시간에 네게 맞는 꿈을 다시 찾아서 노력하는 게 좋을 거야. 작은 꿈도 괜찮아. 유명배우도 요리사가 되었고, 권투챔피언도 비둘기 조련사가 되었고, 그룹 부회장님도 웨이터가 되었대. 큰 것만 좋은 게 아니야. 이젠 좀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영길아. 큰 꿈은 이루기 어렵고, 작은 꿈은 꾸기 싫고, 적절한 꿈은 보이지 않아서 꿈을 잠시 잃었구나. 하지만 우리 어른들도 여러 번 꿈을 고쳐 쓰며 살 듯, 너도 너만의 꿈을 찾아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