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자신감이 없는 지훈

학교상담 전문가가 전하는 우리 아이 심리

글_ 김서규 경기대 교육상담학과 겸임교수(전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아이들은 성적부담과 미래 걱정 속에서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그 결과 자신감이 낮아져 섭식장애, 틱장애, 대인 불안 같은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내적 상태를 남에게 말하지 않는 특징이 있어서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이렇게 자신감이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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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중학교 3학년 남학생 지훈은 공부가 엉망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 그냥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을 만큼 부담이 크다. 엄마가 영어·수학학원을 끊어주셨지만, 가고 싶지 않아서 다니다 말다 한다. 학교에 있으면 집에 가고만 싶은 생각에 오후가 되면 힘든 표정이 얼굴에 뚜렷하다. 집에 돌아오면 다음 날 아침까지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으며 미친 듯 게임에 빠져 산다. 이런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몸무게가 90kg이 되었고, 인상도 짜증 내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진단


  지훈이가 항상 책상에 널브러져 있으니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수업하러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이 야단치셨고, 매일 일곱 번씩 야단맞는 지훈을 본 담임선생님께서 상담을 권하셨다. 상담 선생님이 몇 가지 심리검사를 해보니 다면인성검사에서 우울증, 강박증, 편집증이 심했고, 기질 및 인성검사에서 위험 회피성과 의존성이 상위 2%였다.

  상담선생님이 상담 테이블에 앉으니 지훈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전 아무것도 안 돼요. 희망이 없어요.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어버렸어요. 어떤 일이든 끝을 못 맺겠어요. 답답하고 무서워요.” 상담선생님이 말했다. “자신감을 너무 잃으면 모든 게 안 될 것 같겠지. 이해해. 자, 지금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렴. 네 주변에 무엇이 보이니?” “손가락이 보여요. ‘아이고, 못난 새끼! 죽어라, 죽어!’ 하면서 계속 손가락질하면서 따라와요.” “그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누군지 보이니?” “아니요. 손가락만 보여요.” 

이쯤 되면 누군지 알 만하다. 지독하게 비난받지만 차마 그 얼굴을 밝힐 수 없는 사람은 부모님 중 한 명이다. 이분이 자신감을 다 깎아 없앴다.


지도


  상담선생님이 어머니를 학교에 모시고 말했다.

  “지훈이는 자신감이 없어서 공부도, 친구 사귀는 것도 다 엉망입니다. 못한다는 타박을 너무 많이 듣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은데요.” 지훈 엄마가 말했다. “제가 화를 덜 내야 하는데, 그만 화를 많이 냈나 봐요.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그만둬지질 않네요. 제가 심하게 나무라면 애도 못 견디겠는지 가출했다 들어온 적도 여러 번이거든요.” 상담선생님은 엄마가 솔직하게 말씀하시니 일이 잘 풀리겠다 싶어서 물었다. “죄송하지만 왜 그렇게 지훈이에게 화를 많이 냈어요? 거의 자제가 안 되시는 것 같거든요.”

  지훈 엄마가 말했다. “제 아버지가 화를 잘 내셨어요. 늘 저를 무시하고 막 대하셨어요. 지금도 기억이 나요. 제가 여공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어 아버지 생신 선물을 사서 방구석에 두었거든요. 아버지가 저녁 식사를 하다가 그걸 풀어보시더니 ‘이걸 네년이 샀다고? 네년이 무슨 돈으로 샀겠어? 동생이 샀겠지.’ 했어요. 저는 그 자리서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집을 뛰쳐나와서 자취방으로 가서 밤새 울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친정에 가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왜 그러셨던 건지….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도 좋았을 텐데.” 지훈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렸다가 상담선생님이 말했다. “그러셨군요. 정말 억울하셨겠어요. 그때 그렇게 억울해서 아직도 화내고 계신 걸 알겠어요. 하지만 그 화를 지훈이에게 퍼부으시면 지훈이가 다치잖아요. 아직 어린 지훈이도 억울하게 만드실 거예요? 엄마가 좋은 말씀을 해주시길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가 말했다. “제가 아버지에게 당했던 대로 지훈이를 혼내고 있었네요.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거예요.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어요.”

  몇 주 후 지훈이 찾아와서 말했다. “잘 생각해보니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 90점을 맞은 적이 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비록 모의고사였지만 반에서 7등 한 적도 있고요.” 엄마가 손가락질하는 대신 칭찬을 해주시니 자신감이 되돌아왔고, 그 때문에 잘했던 기억이 떠오른 덕이다. 그 후 지훈이가 다시 와서 말했다. “선생님,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누가 그러는데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래요.” 그래, 지훈아. 멋지구나. 어느 누구든 비난을 많이 받으면 있던 능력마저 잃어버리지만, 지지를 많이 받으면 없는 능력마저 생기는 거지. 이제 우울증이니 편집증이니 다 등 뒤로 던지고 앞으로 나아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