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마마걸’이 된 미연

학교상담 전문가가 전하는 우리 아이 심리

글_ 김서규 경기대 교육상담학과 겸임교수(전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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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고 하지만, 어른에게 심하게 의지하는 아이들도 문제다. 성인이 돼서도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 손에 맡기는 아이의 모습으로 굳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면 좋을까?


 문제

  고등학교 2학년생인 미연은 전공 선택 때문에 여러 가지 혼란을 겪고 있었다. 엄마는 교육학과나 심리학과를 가면 좋겠다고 하셨고, 미연은 문예창작과와 정치외교학과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교수인 엄마는 매사 현명하셨고, 이 문제에도 ‘미연아, 엄마가 말한 전공을 선택하면 힘껏 도와줄게. 하지만 다른 걸 선택해도 응원할 거야.’라고 하셨다. 엄마가 제안하는 코스는 엄마의 도움으로 순탄할 것 같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코스는 매력 있긴 하지만 어려워 보였다. 결정을 할 수 없어서 3만 원을 주고 점을 보고, 1만 원을 주고 타로 점도 보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연은 정체성 문제로도 혼란을 겪고 있었다. 사업가 아빠와 교수 엄마 사이에서 부러울 것 없이 자라서 구김살 없는 분위기를 풍겼지만, 걸핏하면 친구들에게 ‘그런 것도 안 해보고 어떻게 살았니?’ 혹은 ‘무식해!’라는 말을 해서 관계가 좋지 않았다. 하기야 친구가 왜 필요하랴? 어떤 문제든 엄마에게 물어보면 소크라테스와 공자님을 합한 것 같은 해결책이 자판기에서 나오듯 금방 얻을 수 있는데.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오자 어느 순간 친구들이 자기보다 훨씬 성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얘들은 나처럼 현명한 어머니도 멋진 아빠도 없는데, 언제 어떻게 나보다 더 어른스러워졌지? 나는 물어보고 아는데, 어떻게 얘들은 스스로 답을 내고 책임질까?” 낯설고 두려웠다. 한편 엄마를 보면 ‘정말 우수하신 분이야.’ 하고 감탄하다가 ‘엄마 딸이라는 것만 빼면 난 아무것도 아닌 거네. 나는 뭐지?’ 하는 열등감에 빠졌다.

  어느 때는 ‘나 정도면 최소한 장관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라는 희망도 솟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난 아무것도 모르는 둥지 속의 새끼 새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진단

  미연이 상담실에 도움을 청하러 오자, 상담 선생님은 심리검사를 했다. 정신병을 측정하는 다면인성검사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행동 경향성을 측정하는 성격 및 기질검사에서는 의존성이 백분위 99.2로 나타났다. 아이코! ‘마마걸’이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부모님과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자기 결정력과 자아정체성이 없어서 남의 지시를 기다리는 의존적인 사람이 될 줄이야!



지도

  미연 어머니께서 상담실에 오셨다. 심리검사며 상담방식에 대해서도 훤히 아는 분이었고, 미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도 경청하셨고, 의견을 말할 때도 매우 겸손하셨다. 상담 선생님도 어머니의 말씀에 주목하게 되었고, 어언간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이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어릴 적 엄마를 신처럼 믿고 따른다. 엄마에 대한 이상화 백 퍼센트고 의존성도 백 퍼센트다. 그러나 엄마의 못남과 실수를 통해서 이상화 비율을 낮추고 점차 자신을 믿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좌절과 소외가 있어야 자녀는 개성과 주체성을 발달시킬 기회를 얻는다. 정말 역설적인 일이 아닌가! 탈무드에 ‘자녀 교육의 마지막은 자녀를 담 위에 앉혀놓고 뛰어내리면 받아준다고 한 다음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자녀가 울면서 항의해도 설명 없이 집으로 돌아오라.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과 이 세상의 부조리에는 때로 논리적 설명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 부모가 완전하면 자녀는 부모를 이상화시키는 시기가 길어진다. 그 결과 자녀는 청년기가 되어도 유년기에 머문다.

  상담 선생님과 미연 어머니가 대화를 나눈 후, 미연의 집에는 변화가 생겼다. 언제나 현명한 대답을 하시던 어머니가 퉁명스럽게 ‘글쎄,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예쁜 우리 딸, 너무 서두르지 마. 내가 건물을 네 몫으로 줄 테니 그걸로 수입을 얻으면서 천천히 결정해.’라고 하시던 아빠가 ‘넌 네 힘으로 살 생각을 해야 해.’ 하며 엄해지셨다.

  얼마 뒤 미연이가 와서 말했다. “전 작가가 될래요. 제 글솜씨로는 밥벌이가 안 될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번 해볼게요.” 미연아 드디어 독립했구나. 무섭기도 할 텐데 잘 극복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