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화장하는 아이


학교상담 전문가가 전하는 우리 아이 심리

글_ 김서규 경기대 교육상담학과 겸임교수(전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요즘 화장하지 않은 아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화장은 아이들 사이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화장을 안 하면 친구 사이에서 ‘왕따’가 된다는데…,
화장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문제

  다현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화장을 좋아해서 손에 핸드폰과 틴트를 쥐고 학교에 갈 정도였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비비크림으로 얼굴 톤을 희게 하고 아이 라이너, 블러셔까지 사용하더니 풀 메이크업으로 발전했다. 결국 담임선생님이 다현을 교무실로 불러서 한 말씀 하였다.

  “다현아, 우리 학교 교칙을 알고 있지? 색조 화장하면 안 돼.” “선생님, 몰랐어요. 하지만 우리 반 애들도 거의 다 하는데요.” “다른 애들도 하면 안 돼. 그 애들도 하긴 하지만 눈치 봐가며 하지, 너처럼 대놓고 하진 않잖아.” 한 차례 면담이 끝났지만 다현은 바뀌지 않았다. 교칙에 ‘유색 매니큐어, 액세서리, 문신, 피어싱, 귀걸이, 머리 장식품, 색조 화장을 금지한다.’ 라는 조항이 있지만,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조항도 있어서 단속 기준이 느슨하기도 하고, 학교마다 기준이 다르기도 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탓이다.

  다현은 자주 선생님께 불려갔다. 한 번은 귀걸이와 짧은 치마 때문에, 또 한 번은 한쪽 알이 선글라스로 된 안경을 끼고 갔기 때문에. 선생님은 ‘학생이 교칙을 지켜야지.’라는 입장이었고, 다현은 ‘선생님이 나를 찍었다.’라는 불만이 생겨서, 서로 갈등으로 번졌다. 게다가 다현의 부모님도 ‘화장은 취향이니까 선생님이 이해를 해주시면 안 될까?’라는 관점이어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진단

  다현이 화장 문제로 의무 상담을 받으러 왔을 때, 상담 선생님이 물었다. “다현아, 교칙 위반으로 벌을 받는 중인데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됐니?” “담임선생님이 너무 까다로워요. 요즘 화장 안 하는 애들이 어디 있다고요.” 다현은 뭐 그런 거로 벌을 주느냐면서 감정이 격앙되어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이참에 다른 아이들의 생각도 알아보기 위해서 몇몇 학생들을 불렀다. 

  “얘들아, 요즘 너희들은 화장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니?” 한 아이가 말했다. “다 해야 하는 것처럼 됐어요. 안 하면 왕따 되는 분위기예요.” 다른 아이가 말했다. “아이돌 때문인 것 같아요. 걔들이 우리하고 나이가 같거나 조금 많잖아요. TV에 나오는 걸 보고 ‘와~ 쟤들 왜 저렇게 예뻐!?’ 하면서 너도나도 따라해요. 시내 나가면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품이 정말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다들 민낯으로 다니는 걸 부끄러워하고요.” 또 다른 아이가 말했다.


  “미백이나 틴트는 기본이고요. 어른처럼 화장하고 다니는 애들도 있어요.”

  상담 선생님이 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 어디까지 하는 거니?” 반장이 말했다.

  “자기가 예쁘다고 느끼면 자신감도 생기니까 화장을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화장을 해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저희들도 너무 심한 건 싫고요.” 아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자신들도 이 시대가 만들어낸 유행을 따라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지도

  상담 선생님이 다현에게 말했다. “피부색을 밝게 하는 톤업 크림, 비비크림, 컨실러는 사용해도 되겠지. 하지만 진한 립스틱, 색조 화장이나 풀 메이크업은 안 될 것 같아. 우린 교칙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니?” 다현이 말했다. “선도 교육이 끝나면 전학 갈 것 같아요. 아빠가 가게를 옮기신대요.”

  다현이 전학 간 학교의 담임선생님은 느긋하신 중년여성이었다. 다현이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 유난히 티가 나는 옷차림새에 화장을 하고 나타났지만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짝눈 안경을 쓰고 갔을 때 딱 한 번 ‘그거 눈에 좋을까?’ 하였을 뿐이다.

  때로 어느 한 가지 문제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큰 문제로 여겨지거나, 혹은 문제 자체로 취급되지 않기도 한다. 10대들의 화장은 어느 쪽일까? 교정하려는 어른과 적절히 수용하는 어른들 사이에 많은 담론을 거쳐서 바람직한 기준을 만드는 게 급선무이지 않을까?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