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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상담 전문가가 전하는 우리 아이 심리 잘 어울리지 못하는 영희

글_ 김서규 경기대 교육상담학과 겸임교수(전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새 학기의 교실은 친구를 만드느라 분주한 시공간이다. 여기서 뒤처지는 아이들이 있는데…. 만남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
  영희는 중학교 1학년인데, 새 교실에서 설렘 반 불안 반으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둥둥거리다가, 앞뒤에 앉은 4명이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같이 나가자 충격을 받았다. 종일 같이 있었는데 언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책 빌리러 갈 약속을 했을까? 점심 식탁에 같이 앉았지만, 그들은 이미 관계가 아주 깊어진 것 같았고, 자신만 아싸(아웃싸이더의 줄임말)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다 오가는 말 속에서 며칠 전 자기들끼리 저녁을 먹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소름이 돋고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는 말)해졌다. 아, 언제 얘네들끼리? 나를 왜 뺏을까?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이번에도 그렇게 되는 걸까? 손이 떨렸다. 그날 저녁 영희는 어머니께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겠다고 선언했다.

 

진단
  영희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상담 선생님께 와서 말했다. “다른 사람과 가까워진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저는 그게 안 돼요. 다른 애들은 활발하고 얘기도 잘하는데, 전 바보 같아요.” 상담 선생님이 영희에게 말했다.
  “최근에 친구 하려다 잘 안 된 친구가 누구니?”
  다소 엉뚱해 뵈는 이런 질문을 왜 하냐고? 사람은 힘들어도 두세 명의 친구가 있으면, 아니 한 명만 있어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보들레르의 시구처럼 ‘그 하나마저 빛을 잃으면’ 절망에 빠진다.
  그러니까 영희가 마지막으로 접근하다가 잘 안 된 친구를 묻는 게 맞다. 영희는 울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가 너랑 있는 게 부담이 되니 이젠 다른 친구와 다니겠다고 했고, 그래서 새 학급 친구들에게 애써 끼어들려 했는데 그게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자 무너졌다고.

 

지도
  상담 선생님이 선생님과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서 영희네 학급의 놀이 행동과 수업 행동을 관찰하고 녹화했다. 아이들은 아침에 교실에 들어올 때 5~6명의 아이와 인사한다. 교실 문에서 한 번, 자리에 앉으면서 서너 번 그리고 옛 단짝들과 한두 번, 그리곤 책을 편다. 그러나 영희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도 눈길을 교환하지 않았고, 자리에 앉아 책을 펼 때까지 짝꿍에게만 한 번 인사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서로 손짓, 눈짓, 목소리, 웃음, 부탁, 신체접촉을 많이 한 데 비해 영희는 공업용 안경과 방진 마스크를 낀 사람처럼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상담 선생님이 두 번째 상담할 때 녹화와 신체 행동 대조표로 영희의 행동을 보여주자 그는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심술궂게 자기만 빼고 몰래 무슨 일을 한 게 아니라 자기 주변에서 그토록 많은 의사소통이 일어나는 데도 자기 혼자 눈멀고 귀먼 아이처럼 책만 보느라 소홀히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영희는 아이들이 자신을 재미없는 아이라고 여기고 몰래 따돌렸을 거라는 추측을 강하게 하고 있다가, 자신이 아이들의 접근 행동을 안 보고 안 듣고 놓치는 습관이 있다는 걸,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면서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선생님, 아침에 등교하면 교실 문에서 주변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으면서 앞뒤 옆에 있는 여섯 명에게 인사할게요. 모두 7명에게 인사하면 7번 인사를 받겠죠. 그중에서 한두 명 정도는 더 얘기하고 싶어 해요. 그 애들하고 얘기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매일 7명에게 인사하고 한 두 명과 얘기를 이어가기. 이걸 목표로 하겠다는 거구나.” “네. 책상에 써서 붙여놓고 매일 실천할게요.” 얼마 지나자 영희는 친구가 꽤 많아졌다. 사람들은 종종 진정한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고 하지만 사실 자기도 모르게 남을 튕겨내는 행동을 하므로 외롭게 버려질 때가 많다. 어느 누가 자신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고 들어주고 살갑게 반응하는 사람을 싫어할 수 있겠니? 그렇지? 영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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