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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위권 성적인 예은이의 진로 고민

글_ 김서규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성적이 아주 좋거나 나쁜 학생들은 진로가 뚜렷하다. 그러나 중위권 학생들은 성적도 잘 오르지 않지만 공부보다 진로 선택이 더 어렵다. 적성을 중시하지만 점수도 고려해야 하는 현실에다 복잡한 입시요강을 이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가장 평범한 성적을 가진 중위권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예은문제
  중학교 2학년 예은이 어머니가 진학실에 전화를 해오셨다. “우리 딸은 성적이 좋지 않아요. 30명 중에 20등 해요. 우리 딸 같은 애는 앞으로 어떻게 하죠?” 진학선생님이 물었다. “아직 2학년인데 좀 더 공부해보시죠. 달라질 수 있잖아요?” “그렇게 좋아질 것 같지 않고요. 얘 오빠도 고2인데 공부하는 게 예은이하고 비슷했어요. 탈출구를 찾는다면서 애니고에 들어갔는데, 적성에 안 맞는다고 다시 영문학과 갈 준비를 해요. 얘는 그런 고생을 안 시키고 싶어요.” “그럼 지금부터 고교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까지 예상하고 싶으신 거예요?” “네. 옆집 애는 3학년인데 가내신이 200점 만점에 197점이어서 과학고를 시험 삼아 치고, 실제로는 외고 간다고 해요. 이런 애들은 앞날이 환해서 좋겠지만 우리 집 애는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고교 입시는 4월에 원서를 쓰는 8개의 영재고부터 시작한다. 2차는 8월부터 원서를 받는 과학고들인데, 내신 197점 이상에 수학, 과학이 우수해야 한다. 3차는 10월부터 시작하는 48개 특성화고이고, 4차는 12월에 원서를 쓰는 전국의 일반고들이다. 4차에 자사고, 외고, 국제고도 동시에 지망할 수 있기 때문에 올해 중학생들은 고교입시를 5번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은이 같은 중위권 학생은 사실상 입시전략이 있을 수 없고 일반고에 한 번만 지원하면 되는데, 예은이 어머니는 무얼 걱정하시는 걸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중위권 학생의 입시가 가장 어렵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학생들의 수가 가장 많고, 전국적으로 이들의 진로가 가장 난해하기 때문이다.

 

예은지도
  진학선생님이 예은이를 상담해보니 대부분의 아이들, 즉 남보다 뛰어나지 않은, 어찌 보면 매우 정상적인 중위권 아이의 고민이었다. “예은아, 평범한 성적으로 평범한 일반고에 가서 평범한 대학교의 평범한 학과에 가면 앞날이 어렵게 될까 봐 걱정하는구나. 하지만 좀 더 낫게 만드는 방법이 있어.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목표를 세우고 공부 방향을 정하면 네가 원하는 미래에 좀 더 가까워질 거야.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사실 두 가지 생각이 있어요. 예고의 디자인과에 가서 대학도 그쪽으로 진학하는 거 하고요. 일반고에 가서 컴퓨터학과로 가서 나중에 파워 블로거가 되는 거 하고요.”
  진학선생님과 예은이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예은이는 중하위권 성적이긴 하지만 지금부터 노력해서 내신을 5등급 이내로 유지하고 2년 정도 입시 디자인을 공부하면 예고의 디자인학과에 갈 수 있다. 그 후 대학의 디자인학과에 가려면 내신 성적과 수능최저등급을 맞춰야 하니 앞으로도 공부는 조금 더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일반고 학생처럼 여러 과목을 많이 할 필요는 없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만약 파워 블로거를 하려면 일반고에 진학하는 게 맞지만 대학 갈 때는 굳이 컴퓨터학과까지 갈 필요가 없다. 컴퓨터에 대한 전문지식보다 상업에 대한 지식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은이는 일반고에 진학해서 블로거의 길을 걷기로 했다. 중학교 때부터 블로거로 활동할 수 있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하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훌륭한 블로거가 될 자신이 있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친척 언니가 아기용품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하는데 웬만한 직장인보다 3배가량 수입이 좋으니 거기 가서 도움을 받겠다고 했다.
  예은이는 자기 목표가 생기자 할 일이 생겼고, 전반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물건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 기술이 필요하고, 적극적으로 소개하려면 글 쓰는 솜씨가 필요하고, 블로그를 꾸미려면 그래픽을 배워야 하고, 시장을 조사하려면 외향적인 성격을 길러야 한다. 비록 성적이 중하위권이지만 그건 그거고, 앞으로 자신이 잘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은이는 학교 공부와 자신의 미래를 연결 지어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글짓기를 잘하려면 국어시간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 세상을 알려면 사회과목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컴퓨터를 잘하려면 학원과 학교 동아리에 가입해야 한다는 것, 사람들을 많이 모으려면 친구 관계를 좋게 해야 한다는 것……. 그래, 예은아, 성적도 중요하지만 네 생각이 중요해. 너처럼 평범한 아이들이 나름대로 꿈을 키울 수 있는 게 우리 모두의 꿈, 곧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겠니? 그 길로 잘 걸어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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