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말 속에 자살을 암시하는 영준이

글_ 김서규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부장교사

 

  영준은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다. 담임선생님은 촉이 있는 분인데, 어느 날 아침 영준이가 이상하다면서 상담실에 데리고 오셨다. 상담선생님이 ‘어쩐지 이상하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하니 ‘아……. 그냥 어쩐지’ 하셨다. 상담선생님이 만나보니 영준은 말투가 거칠고 무례했다. 꾹 참으면서 듣고 있으려니까 영준이가 ‘전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죽고 싶어요.’ 하기에 ‘영준아. 그런 생각 하지 마. 게다가 너는 천국과 지옥을 믿는 가톨릭 신자잖아.’ 하자 돌연 욱하면서 ‘선생님은 그런 걸 믿으세요? 전 안 믿어요. 슈뢰딩거가 모든 물건은 분자가 쌓여서 생긴 것일 뿐이라고 했어요. 죽으면 아무것도 없어요. 지옥 안 가요! 아니, 지옥 없어요!’ 하고 소리쳤다. 상담선생님은 영준이가 죽을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움찔했다.

 


영준진단
  상담선생님, 담임선생님, 그리고 영준 어머니가 급히 모였다. 엄마가 ‘별일은 없었어요. 3월에 본인이 원하던 동아리에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졌다면서 기분이 안 좋았던 것하고, 5월에 중간고사 보고 와서 시험을 망쳤다고 화낸 것 정도요. 그러고 보니 요즘 말끝마다 다 때려치운다는 말을 자주 하긴 했어요.’ 하셨다. 담임선생님이 ‘영준은 최근 2주 동안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짐) 해졌어요. 어둠의 냄새를 풍기고 다닌다고나 할까? 친구 대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데요.’ 하셨다. 상담선생님이 “별일 아닌데도 욱하니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아요. 해결이 어려우면 참기라도 하는데, 못 참으면 죽겠다 하죠. 그런다고 다 죽진 않고요. ‘살아도 의미 없고, 죽는대도 두렵지 않아.’ 하면서 자살에 대한 심정적인 빗장이 풀리면 드디어 구체적인 행동을 합니다. 얘는 세 번째 단계예요. 무슨 단서가 있나 확인해 봅시다.” 했다. 어머니가 집으로 가서 영준의 방을 살폈고, 담임선생님이 SNS, 글짓기 과제, 친구들과 나눴던 말을 확인했다. 영준의 SNS에는 ‘내 존재의 의미를 알 수 없다.’ 같은 글귀가 많았고, 서랍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어머니와 형에게 주기 위한 선물과 감사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영준지도
  그날 오후 상담선생님은 영준과 다시 마주 앉았다. 학교에 구성된 자살 방지 위원회에 보고했고, 그 결과 자체적으로 처리할지 상급 상담 기관이나 외부 정신과에 보낼 것인지 결정하는 순서를 밟자는 결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영준은 자기 얘기를 하는 대신 허무 철학에 대해서 얘기했다. 슈뢰딩거의 양자역학과 불교의 윤회론과 반기독교적 무신론을 나름대로 섞어서 사람의 목숨은 생각만큼 대단한 게 아니고 죽으면 분자상태로 돌아갈 뿐이라고 했다.
  오랜 생각 끝에 자살을 결정한 사람은 이직을 결정하고 퇴직 서류를 제출한 사람처럼 가야 할 다른 길(?)이 생긴데다 이미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문지방 이상의 자극(above threshold stimulus, 남들이 알아챌 정도의 자극)’ 단서를 노출하지 않는다. 설령 주변 사람이 눈치 채고 캐묻는다 해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자살이라는 큰 결정(?)을 한 사람의 마음의 문지방을 넘으려면 직접적으로 무례(?)하게 자살 얘기를 꺼내기보다 따듯한 마음으로 주제와 가까운 곳에서 따듯하게 다가서는 게 좋다. 그래서 상담선생님은 영준의 토론 신청(?)에 반응하는 대신, 온 마음을 다해 진지하게 듣다가 따듯하게 말했다.

“영준아, 정말 힘들고 화나는 일이 있었나 봐. 하나만 말해 줄래?”
  그 말에 영준은 3월부터 꼬이기 시작한 일들에 대해서 소리치고 욕하면서 쏟아놓기 시작했다. 3월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로봇 반에 지원했지만 자신만 떨어졌고, 중간고사를 쳤지만 엉망이었다고. 중학교에서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던 친구들은 고등학교에 와서 첫 시험에서 다들 전교 등수가 나왔는데 자신만 너무 낮아서 공개할 수도 없을 지경이라고. 이젠 존재감이 바닥인데 만회할 방법이 없다고.
  상담선생님은 위로하거나 충고하는 대신 두 번째 질문을 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해본 방법이 있니?” “네. 부모님께 전학 가겠다고 했어요. 00시에 대안학교가 있거든요. 제가 좀 알아봤어요. 거기 가면 기를 펴고 살 수 있어요. 내신도 올릴 수 있고요. 그런데 암만 말해도 아빠가 허락을 안 하세요. 나는 하루도 못 견디는데 아빠는 당장 이사를 어떻게 하냐고요. 그래서 형 책상과 엄마 화장대에 편지를 올려놓고 밤에 창문에서 뛰어내릴 거예요.”
  자살에는 보복성과 해결성이 있는데 이 경우 둘 다이며, 철학적으로 길을 열었고 행동으로도 구체화되었기 때문에 위험도가 높다. 하지만 원인이 밝혀졌으니 다행이다. 영준은 곧 전학을 갔고, 얼마 후 새 학교에서 행복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역시 자살은 예방이 최선이다. 자살을 결심한 청소년은 자기 마음속에서 주변 사람들을 다 불신임 겸 해고 처분을 내렸기 때문에 기대가 없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넘겨보기 때문에 사전에 단서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 경우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는 미세한 단서를 알아챈 담임선생님이 참 대단하고 고마운 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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