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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교육

부모와 갈등을 겪는 선영이

글_ 김서규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부장교사

 

  선영이는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다. 학교에서는 성실하고 별로 말수가 없는 모범생이다. 그래서 담임선생님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선영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우리 애가 상당히 반항적이에요. 학교에서도 그래요?” 담임선생님이 놀라서 되물었다. “선영이가 반항적이라고요? 학교에선 전혀 그렇지 않은데요.” 어머니는 “학교에서 안 그런다면 제가 문제인가요? 도대체 이유가 뭐죠?”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어머니에게 시원한 답을 찾아 주기도 곤란하고, 대입 시험을 앞두고 예민한 선영이에게 준비 없이 접근하기도 난처해서 상담실에 지원을 부탁했다.

 

 

선영진단
  상담선생님, 어머니, 담임선생님 셋이서 마주 앉았다. “얘는 중학교 때까지 제가 시키는 대로 했죠.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말을 안 들었어요. 이번 달에 학원 빼먹고 오락실에 간 게 여덟 번이에요. 혼내도 소용없고, 이젠 대답도 안 해요. 제 약발은 다 떨어졌나보다 했죠. 그래서 아빠에게 맡겼는데 그것도 소용이 없었어요. 2박 3일 가족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좀 나아질까요?”
상담선생님이 말했다. “어머니 말을 안 듣는 것과 공부 안 하는 것, 둘 중에 어느 걸 주제로 삼을까요?” “공부가 더 문제죠. 그런데 얘가 이런 인성을 가지고 사회에 나가면 제대로 적응할까 그게 더 큰 문제일 것 같아요.” 자식의 반항이 더 괘씸하다는 뜻이다.

 

  “선영이가 왜 엄마에게 화내고 고함치고 학원에 안 가고 오락하러 가는지 이유를 아세요?” “모르겠어요.” “추측해 보시면요?” “글쎄요.” “그럼 그걸 모르신 채로 ‘얘야, 오락실에 가고 싶으면 주말에 한 번 정도 갈 수는 있겠지. 나도 그런 건 이해해. 하지만 습관적으로 빼먹는 건 뭐니? 이래서야 어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겠니?’ 하신 거예요?” “맞아요. 제가 했던 말하고 똑같이 말씀하시네요. 저도 그렇게 했고 남편도 그렇게 했어요.” 잠자코 듣던 담임선생님이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선영이가 좀 불안한 것 같았어요.” 엄마가 깜짝 놀랐다. “걔가 불안하다고요?” 상담선생님이 말했다. “이제 좀 가닥이 잡히네요. 아이가 반항한다는 것을 주제로 삼으면 부모님도 불쾌하셔서 기어이 버릇을 잡으려 들고, 겉으로는 잘 훈육하려 하신다지만 실제로는 서로 이기려 드는 감정다툼을 일으키죠. 그러느라 누구도 선영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알려 들지 않았네요. 어머니께서 선영이에게 지면서 이기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선영지도
  그날 저녁 어머니는 선영이 방에 찾아가서 무릎을 낮추고 아이보다 낮은 자세로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선영아, 엄마가 정말 묻고 싶은 게 있어. 네가 요즘 걱정하는 게 있니? 엄마한테 얘기해줘.” 선영이가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엄마, 나 피곤해, 그만 나가줘.” 엄마는 다시 상냥하고 간절하게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나한테 정말 중요한 문제야. 선영아. 엄마한테 걱정되는 문제가 있으면 말해줘.” 선영이는 한숨을 길게 내쉴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선영아. 엄마한테 정말 털어놓고 싶은 걱정거리가 없니? 도와주고 싶어서 하는 말이야.” 그러자 놀랍게도 선영이가 말을 받았다. “엄마, 나 요즘 입시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선영이는 뒤늦게 미술 공부를 시작해서 미대에 갈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실력이 쑥쑥 늘었지만 요즘은 전혀 늘지 않는 데다 학교 성적도 뜻대로 되지 않자 덜컥 불안에 빠졌다. 잠시 게임을 하면서 잊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불안은 더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자신에게 대든다고 혹은 학원을 빼먹는다고 날카롭게 혼만 내시니!


  모녀는 그날 밤 긴 얘기를 했다. “그림을 늦게 시작했으니 남들보다 조금 느린 것이 당연하다. 너무 조바심 내지 말자.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자. 내년에 또 하면 되지. 그냥 올해는 최선을 다하자. 그림 선생님도 그러시더라. 그림은 삼 개월 늘고 삼 개월 안 는다고. 괜찮아. 앞으로 늘 거야.” 어머니의 목소리에 선영이는 마음이 편해졌다. 주말이 지나자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전화가 오고, 선영이의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 그 후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모녀 간에는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