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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교육

학기 초 나홀로인 미영이

글_ 김서규 유신고등학교 진로상담부장교사

 

  미영이는 학교가 두렵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따돌림을 당했던 일을 계기로 해마다 친구들에게 버림받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키와 몸무게가 늘어난 데다 운동을 잘 해서 업신여김을 받진 않았지만 친구들에게 외면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걱정되어 놀이치료와 미술치료를 받게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도 일부러 집에서 좀 먼 곳을 지원했는데, 외톨이에 이상한 애라는 소문이 따라오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남녀 공학에 들어갔더니 15명의 여학생 중 10명은 이미 같은 중학교 출신이라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는 바람에 다시 소외될 위기에 놓였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는 척하지만 조만간 들킬 것 같아 불안하다. 담임선생님과 학기 초 상담을 하던 중 이런 사정이 드러났다.

 

 

  미영 진단 
  미영이는 여학생들이 화장에 신경을 쓰고 옷차림으로 수다를 떠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함께 어울려 다니고 소곤거리면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여학생 특유의 습성이 피곤하다고 했다. 어차피 자신은 체육학과로 진학하니 그런 건 몰라도 되고 운동과 공부가 제일 좋다고 했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선을 긋는 습관이 있었지만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면서 여자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친구가 없어 불편을 느끼는 상태에 있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없어도 돼요.’ 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담임 선생님은 상담 선생님께 개인 상담을 의뢰했다.


  상담 선생님이 심리검사를 했더니 정상이었다. 다만 내성적이어서 성격상 대인관계가 활발하지 못하고, 아빠를 모델로 성장했기 때문에 남성적인 면이 강했다. 나무 그림 검사에서 둥치를 지나치게 우람하게 그린 것을 보면 자존심이 무척 세고, 뒷산에 홀로 우뚝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형태는 남들과 쉽게 친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가지가 마을 쪽으로 기울어지게 그린 것을 보면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경우 미영이에게 ‘성격을 고쳐라.’, ‘네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라.’ 하는 말은 효과가 없다. 자존심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들이 알고 있는 친구 사귀는 법을 가르쳐 줘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옛날식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미영이가 친구 사귀는 방식을 자세히 알아보고, 어느 부분에서 힘들어하는지 발견해 그 부분에 용기를 내도록 감정적인 지지를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미영 지도  
  미영이는 친구가 없었지만 그중에서 그나마 혜숙이와 말을 섞고 있었다. 그러나 ‘혜숙이는 나보다 공부를 못해. 그리고 딱히 마음에 드는 친구가 아니야. 최악의 경우에는 친구가 없어도 난 잘 견딜 수 있어.’ 하는 마음과 ‘그래도 다행이야.’ 하는 마음이 겹쳐서 더 진전이 없었다. 이 대목에서 상담 선생님이 물었다. “혜숙이는 어떤 애니?” “저 같은 애랑 친구 하다니 인내심이 있고 대단한 애예요.” “혜숙이에게 너는 나 같은 애를 친구로 삼다니 참 인내심이 있고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니?” “아니요.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안 할 자유가 있잖아요. 꼭 그 말을 해야 해요?” “혜숙아, 넌 좋은 애지만 그 말을 하기가 어색해. 내가 오버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하고 말할 수 있니?” “선생님! 강요 마세요! 하지만 제가 기분이 내키면 한 번 생각해 볼게요.” 그리고 두 아이는 립글로스를 사러 화장품 가게에 함께 갔다. 미영이가 혜숙이 말을 듣고 립글로스를 사러 가다니 놀라운 일이었고, 혜숙이가 미영이를 도서관에서 벗어나게 하다니 역시 놀라운 일이었다.


  미영이는 혜숙이와 잘 어울렸다. 배려와 표현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짝꿍이 된 두 여학생과 어울려서 넷이 되었고, 외톨이로 놀던 여학생을 한 명 더 받아들여 다섯이 되었다. 왜 우리는 외톨이가 될까?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너보단 낫지!’ 혹은 ’네가 나보다 잘난 척하는 것 같아.’ 하는 서열의식이 강하거나, 성취에 심취하느라 친교를 잊어버렸을 때다. 그러니까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거는 기술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나보다 낫게 여기는 데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