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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아이, 금성에서 온 부모

글_ 김서규 유신고등학교 진로상담부장교사

 

  십대 청소년들의 고민 중 하나는 가족과의 갈등이다. 청소년기 부모와의 갈등은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가족, 그리고 부모와의 갈등에 대한 허심탄회한 속내를 알아본다.

 

공부 갈등

  한국 아이들은 공부 때문에 부모와 진짜로(?) 만난다. 아빠가 의사고 엄마가 교수인 아이는 압박이 심하다. “할아버지도 의사고 아빠도 의사세요. 추석에 친척들이 모이면 종합병원을 차려도 될 정도로 의사들이 많아요. 전 공부를 꼭 잘해야 돼요.” 행복한 고민일까? 유학이든 고액과외든 원하는 대로 지원받을 수 있지만 부모의 기대치는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웁스!
  모든 것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는 부모도 있다. “우리 집은 저 때문에 서울로 이사왔어요. 아빠는 주말 부부되셨고요. 그런데 공부가 생각만큼 안 돼요. 6등급쯤 돼요. 스트레스 풀려고 주말에 농구를 2시간 하면 엄마가 인생 철학이랑 잔소리를 아동학대 수준으로 해요. 더 해낼 자신도 없는데 저 죽을까요?” 엄마도 아이도 비탈이라는 이 시대에 간신히 서 있는 나무들이다. 안 하자니 갈 대학이 없고, 하자니 너무 치열하다.
  공부하라는 얘기를 안 하는 부모도 있다. “나는 우리 애한테 공부하란 소리를 안 해요.
  본인이 좋아하는 걸 찾아서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 꼭 공부에 목을 맬 필요는 없잖아요.”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절 맨날 예뻐하시기는 하죠. 하지만 어떻게 공부해서 어디로가라 하고 챙겨주시지 않아서 꽝이에요. 저는 누구랑 얘기하죠?” 공부에서 자유로운 듯한 부모도 아이들 말로 하면 가짜 ‘현자 모드(賢者 mode)’다.

 

 

생활 갈등

  아이들은 생활 문제로도 부모와 진짜로(?) 만난다. “우리 애는 컴퓨터를 조금만 한다더니, 하루 종일 웹 소설이나 만화를 봐요. 말이 앞서는 데다 약속도 어겨요.” 부모는 야무진 아이를 원했지만, 아이가 허술해서 못마땅하신가 보다. 아이도 할 말이 있다. “엄마는 ‘네할 일 다 해놓고 놀아라.’ 하셨어요. 저는 그 말을 믿고 토요일 4시에 일어나서 10시까지 할 것 다 해놓고, 컴퓨터를 10시간쯤 했어요. 전 약속대로 한 건데, 왜 놀고 있냐는 말을 들어야 하죠?” 억울하겠구나. 엄마가 약속하긴 했지만 그래도 네가 공부를 더 많이 하기를 원하셨나 보다.
  어떤 부모는 ‘우리 애는 자기 수준을 파악하지 못하고 꿈만 크게 꾸는 것 같아요, 성적은 형편없는데 00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력은 절대 부족하면서 꿈에 부풀어 있으니 걱정되네요.’ 한다. 자녀의 꿈과 성적이 반비례할 때까지 부모가 몰랐다는 얘기 같은데, 저녁이면 매일 집에서 만나 서로 의논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어째서 화성에서 온 아이와 금성에서 온 부모처럼 서로 모를 수 있을까?
  어떤 아이는 ‘저는 왜 남들이 기본적으로 받는 기회를 박탈당하죠? 뭐 하나 제대로 뒷받침이 되는 게 없어요. 책임을 지지 못할 거면 왜 낳느냐고요. 아, 힘들어.’ 한다. 짝꿍이 방학에 해외여행 갔다 왔다거나 롱 패딩을 샀다는 얘기를 하면 들어주기도 힘들겠구나. 그런 것 없어도 된다고 하는 어머니의 철학도 네겐 억지 같겠지.
  그런가 하면 서로 화풀이하는 집도 있다. “오늘 아침에 학교 오려는데 엄마 아빠가 싸웠어요. 싸우는 게 일이에요. 그러고 나면 엄마는 나보고 화내고, 나는 애들한테 욱하죠. 첫 시간에 ‘아, 졸려.’ 했더니 반장이 ‘학급 분위기 깨지 마라.’ 해서 ‘네가 뭔데?’ 하면서 싸웠어요.” 학교폭력도 알고 보면 이처럼 원인이 단순할 때가 있다.

 

 

갈등 해결책

  아이들은 부모에게 뭘 원할까? 필자가 만난 어떤 아이는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아, 그거요. 책을 수백 권 읽어봐야 소용이 없어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애가 자기하고 다르다는 거요.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만들려고 주무르지만 않으면 돼요. 그거 하나만 알면 끝이에요.”
아하, 그렇구나. 칼릴 지브란이 말한 것처럼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는 말이지. 하지만 부모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침범하고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지. 태양에 볕과 빛이 함께 하듯, 부모의 사랑에도 지혜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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