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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인문학의 물음
글_ 손화철 한동대 글로벌 리더십학부 교수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제5회 세계인문학포럼이 한국연구재단의 주관과 교육부, 유네스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부산광역시의 주최로 부산에서 열렸다. 40여 개국에서 모인 130여 명의 학자들이 “변화하는 세계 속의 인간상”이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분야의 발표와 토론을 이어갔다. 필자도 논문을 발표하고 사흘 동안의 토론에 참여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적절했다. 요즘처럼 빨리 변하는 시대에 인간의 모습은 무엇이고,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변화는 그 속도뿐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 그 중에서도 인간 자신과 직접 관련된 기술들이 많이 개발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유전자까지 치료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 기술, 인간의 몸을 향상시키는 기술,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거나 대체하는 인공지능 기술 등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기술들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제까지 인간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견해들에 대한 새로운 반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 것인지 부정적으로 볼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론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오늘날 인간의 삶과 본질에 가장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종교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고 기술이라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그러니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이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4차 산업혁명과 만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기술의 문제가 인문학의 핵심 주제로 부상한 것이다. 지금까지 인문학은 기술의 문제를 중요한 주제로 삼지 않았고, 공학은 인문학의 필요를 무시한 것을 생각하면 이것 또한 큰 변화다.

기술의 문제, 인문학의 핵심 주제가 되다
  인문학에 새롭게 주어진 과제는 단순히 개발되고 있는 기술들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구별하거나, 혹은 우리의 인간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이제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이나 지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포럼의 주제에 ‘인간상’이 들어간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제 인문학의 물음은 단지 중요해진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까지 동서고금의 인문학은 인간에 대해 어떤 정해진 이상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 여러 철학 이론
이나 서로 다른 종교들이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이러이러한 것”이라는 각자의 견해들을 피력해 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그 이상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서로 경쟁해 온 것이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해서 인간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가능성이 열리고 나니, 그 가능성 중 어떤 것을 왜 선택해야 할 것인지의 문제가 대두된다. 예를 들어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거의 불멸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혹은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가지게 할 수 있다면, 과연 그런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것이 이상적인지 실질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는 인문학이 오랫동안 물어왔던 삶과 죽음, 도덕, 법, 공동체, 좋은 사회, 예술에 대한 물음들이 전혀 새로운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등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보다 나은 인공지능 로봇의 실현, 이상적인가? 
  나아가 아무 부담 없이 사용하던 ‘우리’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다시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가 이러저러한 첨단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때의 그 ‘우리’는 민주사회의 시민인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소수의 공학자-자본가-정치가 집단인가? 여전히 인간 종으로 구성된 집단인가, 아니면 로봇과 증강된 몸을 가진 새로운 인류를 포함하는 집단인가? 이는 새로운 기술발달의 과정과 방향을 누가 결정할 것인지, 또 향후 우리가 함께 살아갈 인류 공동체의 구성원이 누구인지에 대한 중요한 물음이다. 
  이런 논의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라는 수동적인 물음과 다른 차원에서 제기된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것과 그로 인해 생길 변화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면 남는 것은 쓰나미나 태풍에 대비하는 것처럼 살아남기 위한 방도를 찾는 일 뿐이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기술과 그 결과에 스스로를 종속시키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보다는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인문학적 고찰의 필요와 가치가 드러난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요컨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여러 기술들은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오래된 궁극의 물음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 물음을 던지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더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 중요하다. 이번 세계인문학포럼을 통해 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하는 시대에 인문학의 역할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음이 부각된 만큼, 이러한 논의들이 건설적으로 지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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