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아시아의 시험문화(culture of testing) 추격 산업화 전략과 평가집착사회

글_ 정용주 교육부 대변인실 교육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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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익숙한 풍경
  한국에서는 매년 11월이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수험생들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 너무나 중요한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시험장으로 향하는데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것을 돕기 위해 관공서와 민간 회사들은 시험을 치르러 고사장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직원들이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출근하도록 출근 시간을 조정하고 비행기의 이착륙은 학생들이 듣기 평가를 하는 시간 동안 금지된다. 한국공항공사는 시험이 치러지는 날 국내선을 재조정하거나 취소했고 두 개의 국제선도 시간을 재조정할 것이 기대된다. 자동차들은 같은 시간 시험장 근처를 지나면서 경적을 울리는 것이 금지되고 지하철과 버스가 추가로 운행되며 주식 및 외환시장도 한 시간 늦게 개장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시험지를 무기 배급하듯이 철저한 보안 속에 공급하고, 시험 응시자는 실시간으로 상황실로 보고되며, 시험이 실시되면 출제위원장이 언론이 나와 출제 경향, 난이도 등을 국민들에게 설명한다. 그런데 외신에서는 이 익숙한 풍경을 매우 낯선 풍경으로 그렸다. AFP는 모든 관공서는 출근을 한 시간 늦추고, 듣기 평가가 실시되는 시간에 항공 스케줄도 재조정되는 풍경을 매우 낯설게 보도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이런 풍경이 펼쳐지는 이유를 단 한 번 치러지는 국가 차원의 종교의식으로 인생의 성공을 결정짓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시아적 현상으로서 ‘시험문화’
  한 방에 인생이 끝나는 종교적 제의로 인생의 성공이 결정되는 것은 한국의 교육에서 고질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교육학자들은 한국의 모든 교육 문제는 어떠한 교육철학과 목표도 녹여 버리며 입시 문제가 모든 교육 이슈를 삼켜버린다고 말하며, 이러한 상황을 평가 중독 사회, 또는 평가집착사회로 묘사했다.
  그런데 학생들을 과도한 경쟁 압력으로 내모는 평가집착 현상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럼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교육 현장에서 시험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시험이 교육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미 답이 정해져있는지도 모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유네스코 방콕사무소는 <시험문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배움의 사회문화적 영향에 관하여>
(The Culture of Testing: Sociocultural Impacts on Learning in Asia and the Pacific)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방글라데시, 피지, 인도, 일본, 카자흐스탄, 한국, 필리핀, 통가, 베트남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교육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형태의 설문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기존에 발간된 자료를 취합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보고서가 그려내는 이들 나라의 평가문화 특징은 우리가 이미 예상했던 대로다. 학생들은 경쟁이 치열(highly competitive)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고부담시험(high-stakes examination)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복잡한 세계를 탐색하는데 필요한 실제적이며, 종합적 역량을 계발하는 대신에,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라는 압력을 받는다. 왜냐하면 사회가 성공에 대한 척도로서 시험(tests as a measure of success)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이 이렇게 시험 권하는 사회를 만드는가? 지필평가가 전 세계 어느 교육과정에서나 존재하는 평가 방식이지만 이들 국가에서의 시험은 단순한 교육과정으로서 평가를 넘어서서 ‘시험문화’(culture of testing)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시험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시험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험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시험에 ‘목숨 걸고’ 뛰어들게 된다. 문제는 목숨 걸고 시험경쟁에 뛰어나는 것이 ‘사회적 계층 이동’과 ‘더 많은 경제적 기회’를 위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는 이유로 시험이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이나 부모들에게 미래에 더 좋은 삶의 기회를 보장하는 도구가 시험 점수이다. 특히 보고서에서는 다른 국가들과 구별하여 한국에는 독특한 ‘교육열(education fever)’이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교육열의 근원은 교육을 통해 좀 더 상위층으로 올라가려는 욕망, 즉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될 수 있다는 욕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녀에게 더 좋은 삶을 살도록 하고자 하는 욕망은 개인 단위의 경쟁으로 그치지 않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하며 올인하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된다. 그래서 보고서에 포함된 아시아 국가에서 자녀의 시험공부는 온 가족의 과업으로 확장된다. 문제는 이렇게 온 가족이 협력하는 과업이 되다보니 더 좋은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서 평가가 학생들에게 동기와 함께 과도한 부담을 안겨주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평가가 교육본연의 목적이 되도록 하려고 노력해왔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시험성적이 미래의 ‘기회’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활동에서 학습 과정보다 시험 결과에 집중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교육과정의 주요 관심이 시험 점수로 집중됨으로써 학습의 목적 또한 점수로 단순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시아 국가들에서 이러한 문화가 고착화되면서 더 높은 점수를 위해 무한 경쟁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학생들은 커다란 중압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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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개념의 왜곡과 평가집착 
  보울스와 진티스(Bowles and Gintis)는 민주주의가 정치적 차원을 넘어 경제문제까지 확장되었을 때 비로소 학교교육은 사회적 평등을 육성하고 청소년의 창조적 잠재력이 온전하게 발전하도록 촉진하며, 새로운 세대를 우리 사회의 질서 안으로 통합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보울스와 진티스의 시각은 교육을 교육의 논리로서만 바라볼 수 없고 정치논리와 모순적으로 결부된 양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아시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시험문화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 능력의 개념이다. 본래 능력은 근대의 세습제를 대체하는 개념이었다. 근대적 공교육제도로서 학교는 이러한 능력주의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개인이 속한 계급이나 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철저하게 개인의 지능과 시험결과, 능력만을 토대로 운영되는 사회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자신의 노력에 따라 성취한 결과에 따라 상위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교제도가 만들어져야 했다. 그래서 학교는 오로지 능력만을 기준으로 삼는 평가체계를 만들었다. 문제는 능력이 전 근대적 세습제도와 같이 직업의 위계를 만들어 내면서, 학교교육에서의 평가는 단순한 교육적 성취를 넘어서서 위계질서 속으로 편입하는 수단이 되었고, 보다 높은 곳에 올라간 사람이 자신보다 밑에 있는 사람을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임금 등에서 차별을 받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든 사회구성원은 무한경쟁을 해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교육 제도는 한편에서는 자유주의적 흐름을 형성하였고, 한편에서는 공정한 평가 제도를 통해, 누구든 능력이 있으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는 끊임없는 능력주의를 확산하는 방향에서 발명되고 재생산되었다. 
  여기에 더해 보고서에 포함된 나라들은 일본이 조금의 예외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서구에 의한 근대화라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자본주의 발전은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하는 전략을 통해 급속한 산업화를 이뤘다. 그런데 정부와 기업만 추격 전략을 꾀한 게 아니라 대중들 사이에도 추격의 심리가 뿌리 내렸다. 경제 성장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부와 권력을 늘려가는 부유층을 따라 잡으려는 전 사회적 추격전이 벌어졌다. 추격전의 주된 행위자는 처음에는 중산층이었다. 그리고 중산층이 추격 수단으로 요긴하게 써먹은 입시 교육 경쟁에 온 국민이 뛰어들기도 했다. 이것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의 시험문화가 매우 유사한 구조를 보이는 이유이다. 
이  러한 것들이 결합되면서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에 의한 시민혁명 없이 산업화와 평등주의를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평등은 전근대적 신분의 해체가 아니라 ‘나도 노력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평등’으로 변형되었다. 이것은 지위상승의 평등주의이고, 사회 진화론적 관점에서 개인적 적응과 지위 상승전략을 추구하는 연대 없는 평등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다. 특히 이들 나라에서 진행된 불균등한 산업화 과정은 국가에 의한 복지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복지가 발전하듯이, 교육을 통한 지위 경쟁의 행위주체가 개인이 아니고 가족이 되도록 했다. 그래서 물질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격렬한 경쟁에 돌입하여 승리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 수준의 자원 결속과 지원, 동원 체제를 만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가족동원 평가집착 문화가 사회적으로 연대를 해치는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시아의 시험문화를 특징짓는 가족 교육열이며, 지위상승을 향한 열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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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패러다임의 전환
  보고서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시험이 주는 부정적 효과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학생 중심의 종합 평가를 도입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학생 중심의 활동을 강화함으로써 학생들이 시험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팀워크나 협력 같은 역량을 더 잘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패러다임의 변화는 우리나라의 경우 지속적으로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반영되어 왔다. 특히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교수 학습활동과 평가 활동을 분리시키고 일련의 학습이 이루어지고 난 후 그 결과 또는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에서 평가가 실시되는 평가, 자주 반복해서 보는 평가에서 교수 학습의 한 과정으로 접근하는 평가로 전환하였다. 자연스럽게 평가의 내용 또한 학생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의 양과 종류를 평가하기보다는 필요한 정보들을 얼마나 신속하게 찾고 문제해결을 위해 얼마나 창의적으로 정보들을 활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나아가는지에 관심을 두는 평가로 전환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단순 지식 측정을 위한 지필평가 중심의 평가 방식을 지양하고 실제적, 다면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해결력, 창의성, 비판적 사고, 협력, 의사소통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정의적 특성 측정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교육과정에서 평가패러다임의 변화가 견고한 시험문화를 바꾸는 데 역할을 하기보다 견고한 평가문화 앞에서 평가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험이 사회적 이동성과 경제적 기회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압력과 가족 압력이 상당히 강하다. 따라서 교육과정에서 평가패러다임의 전환만으로 시험문화를 바꿀 수 없다. 따라서 평가를 교육과정에서 평가의 논리로서만 바라볼 수 없고 정치논리와 모순적으로 결부된 평가문화의 양상을 파악해야 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학업의 모든 단계뿐 아니라 지역 사회, 국가 기관에 이르기까지 ‘시험문화’가 깃들어 있는 상황에서 평가패러다임의 전환만으로 시험문화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도전이며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험의 변화는 사회 전체 시스템의 변화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학생들은 올해에도 11월이 되면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여, 더 좋은 삶의 기회를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며,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성공에 대한 척도로 시험에 의존하는 것이 지속되는 한 전인적 발달을 돕는 평가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보고서가 교육 당국과 학교, 그리고 정부가 더 넓은 시야와 장기적 계획을 갖고 학생들에게 긍정적 교육 환경을 구축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보고서의 배경이 되는 지속가능발전목표 4(SDGs Goal 4)과 연관된 ‘교육 2030의제’는 모두를 위한 포용적이고 공평한 양질의 교육을 보장하고 평생 교육의 기회를 증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포용적이고 공평한 양질의 교육은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가족단위의 시험 점수 올리기 무한 경쟁이 아니라 문제해결능력, 비판적 사고, 창의력, 팀워크 같은 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을 포함해 노동, 복지 등의 사회 분야에서 함께 힘을 모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시험문화의 부정적 측면을 해소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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