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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떻게 ‘노벨상’ 강국이 되었나?

글_ 최아영 YTN 사회부 기자

 

일본이 노벨상 수상의 첫 걸음을 뗀 건 지난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간자 이론을 연구한 유카와 히데키가 일본에 첫 노벨 물리학상을 안기면서 부터이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과학을 받아들인 지 70여 년 만이기도 하다. 이후 일본은 지난해까지 모두 2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탄생시켰다. 특히 자연과학 분야에선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명실상부한 노벨상 강국이 되었다.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일까.

 

 

일본 노벨상의 주춧돌은 ‘번역’의 힘


“일본어를 통해 고도의 물리학을 공부하고 연구 층이 두터워진 점이 노벨상 수상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이 굉장히 중요한, 노벨상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노벨상 수상 비결을 묻는 질문에 시게모리 타미히로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그는 일본 교토에 있는 리츠메이칸대학에서 정책과학부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인문학과 번역 등에 저명한 학자로 꼽힌다.


시게모리 교수는 “일본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에도시대부터 유럽을 모태로 두고 과학이나 철학 등 다양한 서적을 번역해 왔다. 법률·문학·철학·역사·공학 등 유럽의 최첨단 학문을 흡수한다는 생각아래 번역에 중점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은 19세기 말 메이지유신 무렵 정부 차원에서 ‘번역국’을 두고 근대 기술 문명과 순수학문 분야까지 수만 권을 번역했다. 분야를 따지지 않고 유럽의 저명한 논문이나 연구를 번역한 결과, 서양 원서를 읽지 않고도 고도의 연구가 가능해졌다. 결국 높은 번역 수준이 일본을 노벨상 강대국으로 이끌어 냈다는 분석이다.


시게모리 교수를 이를 통해 “유럽 학문을 흉내 내던 시대에서 이제는 스스로의 연구를 개척하는 시대로 변화해왔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시대가 변하고 있는 만큼 원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시대에 따라 문맥에 따라 용어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고 번역이 잘못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잘못된 번역을 피하기 위해선 원서를 기초로 한 교육도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일본 번역서를 통해 수업하고 있지만 원서를 읽고 번역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노벨상의 산실 교토대학 : 인문학의 재도약을 꿈꾸다


지난 1897년 문을 연 교토대학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긴 역사를 가졌다.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실력도 일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대 중에 명문대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교토대학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10명,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일본 노벨상의 물꼬를 튼 유카와 히데키 역시 교토대 출신이다. 이러한 명성에 일본 과학계에선 한때 ‘교토대는 되는데 도쿄대는 왜 안 되는가’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교토대학도 유독 노벨상 수상에 애를 먹는 분야가 있었다. 바로 노벨문학상과 평화상이다. 일본의 노벨문학상과 평화상 수상자 3명 모두 도쿄대 출신으로 교토대는 유독 인문사회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이런 교토대학이 인문학 재도약을 위해 지난해 정부로부터 특별한 지위를 얻어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선정한 ‘지정국립대학법인’으로 선정된 것이다. ‘지정국립대학’은 국립대학의 교육연구 수준을 높이고 대학 구조개혁의 시범이 되는 학교이다. 한마디로 교토대학에서 시행된 개혁이 다른 대학에 롤 모델이 되는 것이다. 그 대가로 지정국립대학들에 다양한 특혜가 주어진다.

 


데구치 야수오 교토대학 문학연구과 교수는 “기대분야 5개 가운데 교토대는 유일하게 인문사회 분야가 인정됐다.”고 입을 뗐다. 정부로부터 인문사회 분야 발전이 기대되는 대학으로 꼽힌 것이다.


이어 “동시에 법적지위가 달라져 재정적인 자유를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일반 국립대학은 기부금을 받는 게 불가능하지만 지정국립대학이 됨으로써 기부금을 받아 재정을 확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또 “그동안 금지됐던 국립대학의 영리 사업도 이제는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국립대학과 비교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혜택이 생긴 것이다.


재정적 자유를 얻은 만큼 야수오 교수는 “아시아의 언어로 인문사회 분야를 연구해 세계로 넓혀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그 근간으로 ‘교토학파’를 강조했다. 그는 “‘교토학파’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건 1980년대로 연구물을 영어로 번역해 발간한 것이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서양 중심의 종교철학에 동양철학을 가미해 발전시킨 것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과거 번역을 통해 서양학문을 연구하던 일본은 단순한 배움의 시대를 뛰어넘어 자신들만의 학술연구 분야를 개척해 나아가고 있다. 일본이 노벨상 대국으로 떠오른 비결은 배움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연구를 해 나가려는 노력의 산물이 아닐까. 오는 10월이면 각 분야를 빛낸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된다. 노벨상 강국이라는 명성답게 일본이 5년 연속 상을 거머쥘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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