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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한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과 명예교수 서양화를 통해 배우는 새로운 기계공학

글_ 김혜진 객원기자

 

과학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1인 융·복합 강의가 KAIST에서 처음 시도된다. 언뜻 보면 낯설기도 한 이 강의를 처음 설계하고 제안한, 기계공학과 김양한 명예교수를 지난 7월 14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국제 음향학계에서 명저로 손꼽히는 김양한 명예교수의 『Sound Visualization and Manipulation』

 

김양한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가을학기부터 ‘서양화를 통해 배우는 새로운 기계공학’을 주제로 기계공학과 학부생과 석·박사과정의 학생들에게 강의한다. 1인 융·복합 강의는 김양한 명예교수가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국제 음향학계에서 명저로 손꼽는 『Sound Visualization and Manipulation』(2013) 겉표지에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유독 눈에 띈다. 이뿐만이 아니다. 뒤표지에는 ‘모나리자’그림도 함께 실렸다. 국내에서보다, 미국 등 국제 음향학계에서 더 유명하다는 이 음향학 교재는 KAIST에서 정년퇴임한 기계공학과 김양한 명예교수가 저술한 책이다.
  기계공학, 혹은 음향학과 서양화. 언뜻 보면 썩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이 만남의 연원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김 명예교수는 학회 참석차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엘 들렀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김 교수는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그가 천부적인 소질의 화가인 줄로만 알았단다. 그런데 아니었다. 고흐가 화가로서 그의 명성을 쌓기까지에는 피나는 연습, 또 연습이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반 고흐 같은 천재 화가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걸작을 그리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초, 스케치가 무엇보다 중요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화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을 이미지로 ‘변환(conversion)’한 것이 그림이라면, 공학 역시 사람의 눈으로 관찰한 것을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변환한다’는 공통점을 그때 발견할 수 있었죠.”
  공학자로서 무엇보다 가치 있는 발견도 그림으로부터 있었다. 김 명예교수는 그림의 원근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소리의 시각화(Sound Visualization)’라는, 음향학자로서의 새로운 개념을 후에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서양화와 기계공학의 융·복합 강의
  ‘서양화를 통해 배우는 새로운 기계공학’, 가을학기부터 김 명예교수가 기계공학과 학부와 석·박사 수업으로 진행하게 될 강의 주제다. 이제까지 두 명의 교수가 자신의 분야를 담당하는 융·복합 강의는 시행됐었지만, 1인 융·복합 강의는 이번에 김 교수가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때마침 지난 2월 취임한 신성철 총장이 추구하는 KAIST의 미래 인재상과도 부합하는 강의이기도 하다. 신 총장은 취임하면서 “융합 인재 양성으로 KAIST를 세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밝힌 바 있다.
  “제 강의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피카소의 그림과 그의 열정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공학을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합니다. 피카소처럼 열심히 자신의 분야에서 기초를 닦다 보면, 세계를 놀라게 한 그의 그림처럼, 새로운 자동차도 만들고, 냉장고도 만드는, 그런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7월 중순 현재 강의에는 석사과정 10명, 학부생 20명 등 총 30명이 수강신청을 마쳤다. 김 교수는 “2명이 한 조로 조사 및 발표도 하고, 토론수업도 진행하려면 적정 인원을 20명 선으로 설계했지만, 이미 신청 학생이 그 수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이번 융·복합 강의 전반부(1∼9주차)에서는 이집트·바빌론시대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화의 시대별 변천과 화풍의 변화, 재료·표현방법의 진화 등에 관한 연구를 통해 기계공학적 접근방법과 비교, 분석 등이 다뤄진다. 또 10주차 강의 이후부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폴 세잔, 마네, 모네, 칸딘스키, 뭉크, 피카소 등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들을 ‘공학적 관점’으로 조명하게 된다. 강의가 시작되고 10월 초 연휴 기간 동안, 김 명예교수는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단다. 좀 더 현장감 있는 강의자료 취재를 위해서다.
  “9월 한 달 동안 강의를 진행해 보면,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의 니즈도 좀 더 명확해질 거라고 봐요. 학생들에게 좀 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흥미롭고 다양한 수업 관련 자료들을 확보해 나갈 계획입니다.”

 

“강의실에 들어설 때면 여전히 설레지요!”
  김 명예교수는 현재 K-MOOC와 코세라(Coursera)에서도 온라인 강의를 진행 중이다. 박영진 동역학 과목 조교는 “김 명예교수님의 동역학 강좌는 물체가 움직이는 방법과 이유, 그리고 이에 대한 수학적인 기술 방법까지, 예제를 바탕으로 원리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는 명강의”라고 자랑했다.
  “온라인 동역학 강의는 전공 대학생들은 물론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고등학생들도 수강을 해요. 그러나 아직은 코세라에서처럼, 학습자 간 활발한 포럼이 형성되어 있지는 못하고 있죠. K-MOOC, 코세라와 같은 온라인 강의는 수요자가 필요한 강좌를 그때그때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강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죠.”
  김 명예교수는 퇴임 전, KAIST도 MIT처럼 클라우드에 모든 강의를 실시간 스트리밍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었다고 들려줬다. 그런 만큼 현재 온라인 강의의 강자인 코세라에서처럼, K-MOOC도 강의를 듣는 학습자 간 셀프러닝이 좀 더 활발해지길 바라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K-MOOC 수강생들과 좀 더 활발한 의사소통에 참여해야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았다.
  명강의가 되려면 우선은 교수학습자 간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교수는 교수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김 교수는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일부러 틀린 내용을 들려줄 때도 있곤 한다. 학생들의 수업참여, 질문을 이끌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그 의도된 오류를 콕 집어, 찾아내는 학생들에게는 ‘포상’도 한다. 초콜릿, 과일, 음료 등등.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학생들도 강의실 안은 저절로 즐거워지곤 한단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지는 강의. 그런 강의가 학생들에게는 진짜 좋은 명강의죠. 그러한 강의를 통해 학문에 대한 진정성을 학생들이 배웠으면 하는 게 교수로서 바람이기도 하고요.”
김 명예교수는 또 명강의는 무엇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준비한 강의라고도 말한다. 그만큼 가르침에 대한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준비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강의실에 들어설 때면 여전히 그는 가슴이 뛰고, 설렌단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지는 강의. 학생들의 수업참여, 질문을 이끌어내기 위해 ‘의도된 오류’를 들려주기도 한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연구동

 

비영어권 최초로 ‘로싱상’ 수상
인터뷰 당일, 김 명예교수의 연구실에 반가운 손님이 방문했다. 박사후과정을 마치고 미국의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 취업이 확정됐다는 고영빈 박사다.
“교수님께서는 공학도는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어요. 세월이 지난 후에 전공지식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더라도, 어떻게 공부하고, 가르침에서는 또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연구자는 연구에 임할 때 어떤 자세여야 하는지 등등. 수업시간에 강조해 주신 말씀들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겁니다.”
정년퇴임 이후 김 명예교수의 강연은 대학 강의실에서 확장, 각종 연구소와 과학 관련 단체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역시 ‘피카소 공과대학’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서양의 그림과 공학이 접목된 융·복합 주제의 강연들이다.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 기계공학 이야기만 하면 재미없어 해요. 피카소가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가지고 어떻게 ‘컨버전했는지’, 그의 걸작 ‘아비뇽의 처녀들’에는 어떤 배경 스토리가 담겼는지, 또 입체파는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 등을 통해 그의 창조적이었던 작업과정을 들려주면, 참석자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곤 하죠.”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KAIST에 부임한 김양한 명예교수는 2008년 경주 에밀레종에 대한 울림의 비밀을 밝혀 화제를 낳았었다. 또 지난 2015년에는 ‘3차원 가상스피커’를 세계 최초로 개발, 비영어권 학자로는 최초로 미국음향학회(ASA)가 수여하는 ‘로싱상’을 수상했다.
김양한 명예교수는 이번 ‘서양화를 통해 배우는 새로운 기계공학’ 강의가 안착이 되면, 내년부터는 KAIST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융·복합 교양강의도 제안할 계획이다.

김양한 명예교수는 서양의 그림과 공학이 접목한 융·복합 주제로 강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양한 명예교수의 K-MOOC 동역학 강의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