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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작천중학교 -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공간혁신

글 _ 양지선 기자


  교실이 다정하다고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편하게 쉴 수 있는 소파, 쏙 들어가 숨으면 나만의 공간이 되는 텐트, 창가 가득 채운 초록빛 식물이 이질감 없이 교실을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조금은 어설프고 손때 묻은 작품과 운동장에서 주운 솔방울, 돌멩이, 들꽃 등 무엇이든 장식이 되는 복도까지. 마치 오래된 친구 집에 놀러 온 것만 같았다. 다정한 학교가 품을 내어주는 곳, 전남 강진작천중학교(교장 김우수)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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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오면 편안하고 포근해요. 식물이 많아서 왠지 공기가 깨끗한 느낌도 들고요. 이렇게 예쁜 학교는 우리 학교밖에 없을걸요?” 지난 11월 4일, 강진작천중에서 만난 3학년 보아는 학교 자랑을 해달란 말에 이렇게 답했다. 같은 반 친구인 은숙이와 윤희는 “친구들, 선생님과 같이 반 청소하면서 이곳저곳을 꾸민 게 제일 즐거웠던 기억”이라며 “졸업해도 마음은 학교에 남아있을 것 같다.”라고 거들었다. 


  전교생 20명의 작은 학교인 강진작천중은 겉보기엔 평범한 학교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애정 어린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는 따뜻한 공간이 반긴다. 3학년 세 학생이 쓰는 교실은 더욱 특별하다. 우선 교실 뒤편에 소파와 텐트가 자리 잡고 있는 건 사뭇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편하게 앉아 책을 보거나, 텐트 안에 들어가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한다.


  다양한 모양의 책상도 눈에 띈다. 수업 시간에 듣는 개인용 책상 세 개 이외에 모둠 책상, 원탁, 소파 앞의 좌탁, 시를 읽는 책상 등등. 덕분에 교실 그 어느 곳에나 자유롭게 앉아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사이좋게 둘러앉아 담소를 나눌 수도 있었다. 



공간이 바뀌니 아이들도 바뀌었다

  이렇게 학교를 집과 같은 편안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건 3학년 담임이자 국어를 가르치는 강정희 교사의 솜씨였다. 그가 공간을 꾸미게 된 계기는 “아이들은 못 바꿔도, 공간은 바꿀 수 있다.”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간이 바뀌니 아이들도 바뀌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학교에 가면 기본적으로 정리가 안 돼 있고, 삭막하다는 느낌을 주로 받아요. ‘학교에 주인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새 학교로 전근하면 우선 청소부터 시작했어요. 학생들과 함께 정리하고 꾸미는데, 신기한 건 공간이 바뀌니 아이들도 행동이 달라졌어요. 더러운 게 있으면 주워서 버리고, 스스로 사물함을 정리하고, 집에서는 냉장고를 정리했다며 시키지도 않았는데 전후 사진을 비교해 보여주더라고요.” 


  예쁜 공간에 가면 행동도 예뻐진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학교를 그런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강진작천중도 그렇게 공간이 다듬어졌다. 공간 혁신을 위한 예산은 따로 필요 없었다. 단지 애정 어린 손길이 필요했다. 


  학교에 오면 학생들이 가장 먼저 맞이하게 되는 곳, 중앙현관부터 달라졌다. 으레 보게 되는 초록색 게시판, 트로피, 역대 교장선생님들의 사진 대신 자리를 차지한 건 예쁜 식탁보가 깔린 원탁, 명화, 꽃과 나뭇가지(산에서 대충 주워온 듯한), 인형 같은 아기자기한 소품이다. 교실로 가는 계단과 복도도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작품, 혹은 달력에서 오려낸 예쁜 그림들로 꾸며져 허투루 지나치지 않게 된다. 그림엽서, 종이상자, 보자기, 심지어 달걀판까지 모두 값 안 드는 인테리어 도구다.


  미술 시간에는 특히 아이들이 더 정성껏 만들고 그리며 작품활동에 몰입하게 됐다. 수업이 끝나면 무심히 버려지던 작업물이 이제는 학교 어느 곳에 전시될지 모르는 귀한 작품이 된 것이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도, 산에서 주워온 나뭇잎도 좋은 소품이 된다는 것을 배운 아이들이다.



계단 한 편을 채운 화분들계단 한 편을 채운 화분들

중앙현관에는 예쁜 식탁보가 깔린 원탁, 명화, 꽃과 나뭇가지가  자리를 차지한다중앙현관에는 예쁜 식탁보가 깔린 원탁, 명화, 꽃과 나뭇가지가 자리를 차지한다



하루 세 번, 삼시세끼 독서 습관

  아이들이 매일 아침 책을 읽는 독서실도 예쁜 소품들로 가득하다. 빈백과 해먹에서 편안하게 누워 볼 수도 있다. ‘삼시세끼 독서’를 하는 강진작천중 학생들은 말 그대로 하루 세 번 책 읽는 시간을 정해놨다. 아침 8시부터 45분간, 점심 먹고 12시 50분부터 15분간, 저녁에는 8시부터 1시간 동안. 


  보아는 “처음에는 만화책이나 쉬운 책만 읽고 싶었는데, 습관이 되다 보니 읽는 책의 수준도 높아지고 재미를 붙이게 됐다. 요즘에는 고등학교 진학에 맞춰서 교과서 본문에 있는 작품 모음이나 고등학생 수준에 맞는 책을 선생님께 추천받아 읽고 있다.”라고 말했다. 윤희는 장편소설인 <내가 되는 꿈>을, 은숙이는 그 전날 목포의 독립서점에서 사온 에세이 <아무튼, 후드티>를 읽고 있었다.


  ‘삼시세끼 독서’ 덕분에 학생들의 책 읽는 습관은 빠르게 자리 잡았다. 체험학습을 나갈 때도 책을 항상 몸에 지니면서 조금의 틈만 나면 독서를 시작할 정도였다. 이렇게 독서가 생활화된 건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거두고 나서부터였다. 강진작천중 학생들은 월요일 아침에 선생님께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금요일 오후에 돌려받는다. 첫 시작은 학부모의 건의였으나, 스스로 문제를 깨달은 아이들도 강제성 없이 자발적으로 따랐다. 


  “아이들에게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시간을 직접 계산해보게 했어요. 일 년으로 따지면 무려 한 달에 달하더라고요. 한 달이라는 시간을 의미 없이 버렸다고 생각하니 아이들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했죠. 그래서 휴대전화는 끄고 책을 읽는, ‘오프폰, 온북(Off Phone, On Book)’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강 교사의 바람은 코로나19가 어서 끝나 아이들과 교실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밤샘독서를 즐기는 것이다.



소파와 텐트, 식물이 이질감 없이 교실을 채우며 따뜻한  느낌을 준다.소파와 텐트, 식물이 이질감 없이 교실을 채우며 따뜻한 느낌을 준다.

강정희 교사의 공간 꾸미기 TIP

  천(패브릭으로 된 모든 것), 명화 그림(주로 달력에서 오린 것), 식물(꽃, 강아지풀, 조화도 상관없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분위 기가 확 달라진다. 학교폭력 예방 포스터나 인성교육 플래카드 대신 책상에 천으로 된 매트를 깔고, 꽃병을 가져다 놓자. 지나 간 달력에서 오린 그림들로 작은 미술관이 된다. 음식을 줄 때도 그냥 주는 것보다 접시나 바구니에 담아주는 것만으로도 느낌 이 완전히 달라진다. 공간을 꾸밀 때도 아이들을 대접한다는 느 낌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시를 읽는 책상. 햇빛 가득한 창가에 초록빛 식물과 명화가  더해져 감성을 일깨운다.시를 읽는 책상. 햇빛 가득한 창가에 초록빛 식물과 명화가 더해져 감성을 일깨운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든 따뜻한 집

  작은학교의 강점은 전교생이 다 함께하는 외부활동도 비교적 큰 품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학교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강진아트홀은 학생들에게 제2의 교실 같은 곳이다. 한 달에 한 번, 전교생은 아트홀에서 열리는 공연과 전시를 즐긴다. 오페라, 합창, 연극, 무용, 미술품 전시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이 직접 차를 운전해 아이들을 태우고 함께 나가서 ‘문화마실’이라고 부른다. 면 소재지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특별한 경험과 공부가 된다.


  강진작천중에는 편부모, 다문화가정 등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아 학교 의존도가 높다. 또래에 비해 순수하고, 학업에 대한 열의가 큰 학생들을 위해 학교는 교육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김우수 교장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따뜻한 집이 되어준 것이 바로 열정적인 선생님들 덕분이라고 얘기한다. 김 교장은 “강소기업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 학교도 강소학교다. 작지만 그 어느 학교보다 열정적이면서 학생들을 위하는 선생님들이 있고, 아이들도 선생님들의 노력을 알아줘서인지 무척 착하고 순수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직접 실천하고 행동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진심으로 존경스럽다.”라고 말했다.


  학교는 매일 일과시간 이후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저녁 8시 반까지 독서실에서 책 읽기, 토론 등의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한다. 현재 12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이 아이들에겐 집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은 셈이다. 

강정희 교사는 “사람들은 예쁜 걸 보면 ‘집에 가져다 두고 싶다.’라고 한다. 그 ‘집’을 ‘학교’로 바꿨을 뿐이다. 자녀 방을 꾸밀 때 소품 하나하나 공들여 얼마나 예쁘게 꾸미나. 그런데 학교에 와서 삭막한 교실에서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하실까? 당사자인 아이들도 마찬가지고. 으리으리하지 않아도, 집과 같은 편안함을 학교에서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내년도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학교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신입생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물어보자 3학년 학생들이 입을 모았다. “운 좋은 줄 알아~ 다른 학교보다 훨씬 예쁘고, 편안하고, 선생님들도 좋으신 분들이 너무 많으니까!” 



 복도 한 편에 마련된 쉬어가는 나무 벤치와 칸막이 장식장.  창문에 천을 단 것만으로 포근함이 더해진다. 복도 한 편에 마련된 쉬어가는 나무 벤치와 칸막이 장식장. 창문에 천을 단 것만으로 포근함이 더해진다.


 하루 세 번, 삼시세끼 독서 시간을 가지는 학생들 하루 세 번, 삼시세끼 독서 시간을 가지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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