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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전쟁과 그 이유를 사유하게 만드는 소설

글_ 홍정선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전 『문학과지성사』 대표)

 

  최근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도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대한 이야기가 빈번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은 휴전협정이란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공식적으로는 끝난 전쟁이 아니라 잠시 쉬고 있는 전쟁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남과 북 사이에 지속되는 적대행위와 대치상태를 전제로 하고 있는 휴전협정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공존을 모색하는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우리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역사적 전환은 가능한 것일까? 거기에 대한 답을 모색해보기 위해, 아니 그 답이 얼마나 절실하면서도 쉽지 않은 것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1959년에 선우 휘가 발표한 「단독강화」라는 소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두 이데올로기의 공존, 「단독강화」
선우 휘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던 1950년대 말에 선구적으로 남과 북의 병사가 만나서 잠시나마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이런 점에서 선우 휘를 반공작가의 대표적 인물로 손쉽게 규정한 기왕의 수많은 글은 일정하게 수정될 필요가 있다. 선우 휘는 「단독강화」에서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가볍게나마 두 이데올로기의 공존 문제를 거론한다. 그리고 우연히 최전선에서 만난 남과 북의 병사가 국가와는 상관없이 개인의 차원에서 모색하는 ‘단독강화’를 통해 그러한 공존의 기능성을 구체화시킨다. 반공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던 선우 휘는 이렇게 당시로써는 대단히 불온하고 위험한 생각을 누구보다 먼저 소설화시켰다.
선우 휘가 「단독강화」에서 다른 어떤 감정보다 숨김없이 강하게 드러내는 감정은 6.25 전쟁을 일으킨 사람에 대한 증오와 분노이다. 전쟁을 일으킨 인간에 대한 선우 휘의 감정은 소설 속의 다음과 같은 장면에 잘 투영되어 있다.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음성은 신음에 가까웠다.
“정말 그들을 죽이고 싶네.”
“예?”
“전쟁을 일으킨 놈들을 말야.”

 

  그런데 여기에서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전쟁을 일으킨 놈들’이라고 지칭하는 복수의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이승만과 김일성을 필두로 하는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일까? 아마도 그 범주에는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부추겨서 전쟁으로 몰고 간 고위 지도자들이 우선적으로 포함될 것이다. 그렇지만 ‘전쟁을 일으킨 놈들’이란 말이 반드시 전쟁의 발발에 직접 관련된 사람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선우 휘가 토지개혁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세상엔 똑똑하다는 놈이 너무 많다는 거야. 그런 놈들이 비단결 같은 말만 늘어놓고 남의 일에 뛰어들어 말썽을 일으키지.”라는 말로 남과 북에서 활동하는 영향력이 있는 지식인들까지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우 휘에 의하면 북한이 시행한 토지개혁의 이상은 훌륭하지만 실제로 그 이상이 제대로 달성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똑똑한 남북의 지식인들이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선우 휘는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선우 휘가 말하는 ‘전쟁을 일으킨 놈들’에는 당시 남북의 정치지도자들뿐만 아니라 계급적·이념적 갈등을 부추기며 남과 북의 대립과 긴장을 부추긴 ‘똑똑한 놈들’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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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동굴 속 화해… 비극적 현실과 소망 담아
  선우 휘의 「단독강화」에서 남과 북의 두 사병은 어떤 동료 병사도 장교도 대동하지 않고 고립된 두 개인으로 만났기 때문에 화해가 가능했다. 다시 말해 국가권력이나 이데올로기로부터 격리되어 거의 진공상태와 같은 고립된 동굴 속에서 두 개인이 만나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화해가 가능했다. 이들 옆에 다른 개인이 한 사람이라도 더 있었다면 두 사람은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는 방식의 대화, 자신이 속한 체제나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을 내세우지 않는 대화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은 상대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화들짝 놀 라며 적대감을 드러내는 일을 간헐적으로 반복하는 사실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두 사람만 있으면서도 옆에 다른 누군가가 있는 듯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우 휘는 「단독강화」에서 남과 북의 두 개인이 서로를 따뜻하게 위해 주는 화해와 공존의 모습을 그려 보임으로써 미래의 남과 북이 반드시 이룩해야 할 상태에 대한 갈망을 소설로나마 선취해 보여주었다. 동시에 선우 휘는 그러한 개인끼리의 화해가 영속성을 보장받지 못한 지극히 취약한 화해라는 사실 또한 작품 속에 담아 놓았다. 선우 휘는 소설의 마지막을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자신의 길을 가던 두 사병이 중공군의 일제 사격에 쓰러지는 것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 장면이야말로 우리의 비극적 현실을 의미심장하게 상징하고 있는 까닭이다. 중공군으로 상징되는 외세, 우리에게 압도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동의 없이 우리끼리 합의한 화해가 어떤 비극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이 소설은 생생하게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