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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도화(桃花)가 꽃 몽우리를 터뜨리고 있는 땅, 발왕산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김경수 포토그래퍼



시뻘건 해를 앞두고 새해 다짐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어느새 한 달을 훌쩍 지나있다. 지난해의 여운을 채 벗어나지 못한 일월을 지나온 세월은 이월을 향해 달리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세워본다. 추위가 다 가시기 전에 겨울의 서늘함에 기대 의지를 다시금 다져야겠다. 더 유연해지고 더 굳건해지기 위해 겨울을 맨눈으로 마주해야겠다. 이 계절이 온전히 겨울이 되어 있는 곳, 투명한 겨울을 통해 나를 비춰낼 수 있는 곳, 그리하여 묵은 때를 벗고 나를 나로서 서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간다. 눈을 맞으러 동계올림픽의 열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평창을 다시 찾는다. 하얀 눈에 잠겨 있다 보면 열기인지 열병인지 모를 가슴의 화기를 식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가 금세 제풀에 고개를 숙이는 이 발작 같은 열정을 길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발이 푹푹 잠기는 눈길이 그립다. 허옇디허연 눈이 눈(目)에 사무친다. 산자락을 따라 무작정 달려온 길 끝에 발왕산이 있다.


  평창 진부면과 도암면 사이에 있는 발왕산은 해발 1,458m의 높이를 자랑한다. 이곳은 산에 여덟 왕(八王)의 묏자리가 있다고 한 도승의 말에 따라 팔왕산으로 불리다가 이후 왕이 나오는 산이라 하여 발왕산(發王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용평리조트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산은 겨울이면 스키를 타러 온 여행객과 일출 맞이에 나선 이들로, 봄가을이면 트래킹과 등산을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2020년 겨울, 스키 인파는 올해도 용평리조트를 찾아든다. 보드와 스키를 든 이들이 설원을 미끄러지듯 내려오며 겨울의 도래를 알려온다. 막힘없는 질주가 드디어 눈을 가르며 달릴 수 있는 계절이 왔노라며, 손꼽아 기다리던 눈의 계절이 이르렀노라며 눈의 열기를 전한다. 색색의 옷으로 설원을 물들인 스키 인파를 눈에 담으며 케이블카에 오른다. 탑승장에서 출발하여 발왕산까지 왕복 7.4km에 이르는 이동 거리는 통영에 이에 두 번째로 길다.

  케이블카 아래로 설경이 펼쳐진다. 눈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과 드문드문 놓인 오두막과 눈길과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 사람과 자연이 빚어낸 풍경이 묘한 평온을 선사한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나무와 눈꽃을 피워낸 눈과 하얗게 물든 설산의 장관이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창을 열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눈동자에 맺히는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데 자연의 풍광을 온전히 담아내기는 아무래도 힘든 일인가 보다.


하얗다.
사방이.
눈(雪)이라는
보석이
반짝
빛을 발한다.



[ 눈꽃 핀 발왕산 ]

  케이블카에서 내려선다. 하얗다. 사방이. 주변이 온통 하얘서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눈을 밟는다. 뽀드득거리는 푹신한 냉기가 발을 타고 올라온다. 눈으로만 보던 눈(雪)을 발로, 손으로 매만진다. 하얀 입자 위로 햇빛이 흩날린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그 무엇이 눈을 찔러온다. 눈동자에 박힌 눈(雪)이라는 보석이 반짝 빛을 발한다. 고개를 들어 산을 둘러본다. 대관령 산자락을 수놓은 풍차와 눈에 잠긴 산과 퍼렇디퍼런 하늘. 겨울 도화(桃花)가 꽃 몽우리를 터트리고 있는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니라면 어디를 무릉도원이라 할 수 있을까.

  이대로 풍경 안에 멎어 있을 수만은 없다. 산을 올라야겠다. 눈을 만나러. 하얗디하얀 눈의 결정을 담으러 산을 타야겠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목 나무 군락지에도 하얀 솜이 내려앉았다. 실물 같이 그린 노송(老松)이 새들을 불러들였다는 솔거의 손이 지나가기라도 한 걸까. 시선이 지나간 곳곳이 탄식을 자아내는 풍광으로 채워진다. 색을 지워내는 것이 백(白)의 속성인 것을. 하얀색의 비움이 묘한 평화를 불러온다. 그 평정 속에서 나도 모르게 속이 부대끼고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 더 채우지 못하면 어쩌나 했던 조바심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왕수리부엉이 쉼터에서 숨을 고른다. 바람길을 지나며 모두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한다. 길은 어느새 정상에 가까워져 있다. 눈옷을 입은 나무 아래 서서 돌아온 길을 되돌아본다. 바람이 밀어주고 눈이 끌어주고 벗들이 손을 잡아주었기에 정상에 이를 수 있었으리라.


[ 정상에 오르는 길에 마련된 왕수리부엉이 쉼터 ]

  구름 위를 걷듯 눈 속을 헤쳐나간다. 하늘을 지붕 삼아 시간을 반추해 본다.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버티고 있는지 그 끝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기를 기대하는지 자문한다. 웃음소리가 들리고 환희의 발자국이 새겨지고 미소 띤 얼굴이 눈을 지나간다. 사람이다. 나를 이 순간 이곳에 서 있게 한 것은 사람의 온기일 것이고 인연의 섭리일 것이다.

  흩날리는 눈이 쌓여 눈송이가 되고 눈송이가 눈꽃을 피우고 눈꽃이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다. 그 새하얌이 감동을 전해온다. 인향만리(人香萬里)라고 했던가. 사람 또한 눈과 다르지 않으리라. 인고의 세월과 매 순간의 정진과 더불어 감의 온기가 전하는 투명함이 세상을 인향(人香)으로 물들이리라.

  ‘넉넉한 품’이라는 올해의 목표를 하나 더 더하며 산 정상에서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읊조린다.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하얀 바람이 메아리가 되어 가슴에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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