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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물결 머금은 노란 유채꽃의 땅, 삼척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김경수 포토그래퍼

 

1 삼척 맹방 유채꽃 축제

 

퍼런 물결과 나란히 달려보자. 바다의 넘실거림을 눈에 담아보자. 파도 소리를 빗자루 삼아 귀에 낀 먼지를 닦아내 보자. 바다의 너른 품이 필요한 시간, 수평선을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푸르디푸른 바다와 누런 꽃들판과 은빛 해변이 눈에 아른거린다. 옴짝달싹할 수 없이 나를 동여매고 있던 끈을 풀고 움츠리고 있던 어깨를 펴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고 삼척을 찾는다.


봄 기운 충만한 맹방 유채꽃 축제
  강릉에서 동해를 거쳐 삼척까지 이어지는 바다열차에 몸을 싣는다. 해변을 마주 보도록 배치해둔 의자에 앉는다. 돌고래 그림으로 장식된 기차의 엔진소리와 함께 52킬로미터에 달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퍼런 물과 백사장, 터널과 방파제가 차례차례 눈을 채워온다. 가려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바다를 따라 해변을 걷듯 기찻길을 달린다. 어느새 물결은 길이 되어 있다. 나는 ‘갈매기의 꿈’ 속 조나단이 되어 바다 위를 떠돈다. 쉼 없이 가는 시간처럼 물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삶 또한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는 깨우침이 가슴을 채워온다.


  유채꽃이 만발해 있는 맹방으로 간다. 올해로 18회를 맞은 맹방 유채꽃 축제는 ‘봄 가득 희망 가득’이라는 주제로 3월 29일부터 4월 25일까지 손님들을 맞이한다. 샛노란 들을 그리며 맹방 유채꽃 축제장에 들어선다. 바다와 벚꽃을 액자 삼아 땅을 수놓고 있는 자연의 걸작이 여행객을 반겨준다. 모네가 살아 돌아온다고 이 광경을 캔버스에 담아낼 수 있을까? 꽃물결로 지평선을 물들인 유채밭을 보며 생각한다. 3월과 4월의 충만함에 생기를 더해주는 이 꽃의 캔버스는 들판이어야 한다고. 꽃길을 걷는다. 무릎을 간질이는 꽃의 몸부림과 끝이 보이지 않는 노란 벌판과 고명처럼 흩날리는 벚꽃. 노랗고 하얀 꽃이 만발해 있는 이곳은 꿈의 터전이다. 사방이 노오란 색으로 물든 이 드넓은 땅이 꿈을 위한, 내일을 향한 바탕색이 되어 가슴을 채워온다. 유채꽃과 벚꽃이 남긴 먹먹함을 머금고 맹방 해변으로 향한다. 옥빛을 준비해둔 바다가 기다렸다는 듯 길손의 떨리는 가슴을 어루만진다.

 

2 죽서루

 

바다와 더불어 달리는 해양 레일바이크
  길은 곰솔과 기암괴석, 바다와 더불어 달릴 수 있는 해양 레일바이크 정거장으로 이어진다. 궁촌 정거장에서 황영조 공원을 거쳐 용화 정거장에 이르는 삼척 해양 레일바이크는 동해 해안선을 따라 5.4킬로미터 복선으로 운행되고 있다. 자전거에 몸을 싣는다. 바닷바람이 볼을 쓸고 가기 무섭게 레일 양쪽에 늘어서 있는 소나무들이 봄을 전해온다. 무채색 겨울에 외로이 녹음을 품고 있던 솔잎이 봄이 왔노라며 어깨를 두드린다. 하늘은 높고 레일바이크는 천천히 달리고 봄을 맞은 자연은 수다쟁이가 되어 쉼 없이 귀를 간질인다. 빛으로 장식된 굴을 지난다. 물감이 되어 어둠을 채색하는 조명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암흑을 밝히는 미미한 빛이 아닌, 어둠을 물들이는 빛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3 촛대바위가 보이는 해안 산책길

 

강변 위 자리한 명승지, 죽서루
  도로를 달리며 삼척이 부쳐온 찬란한 봄을 되뇐다. 겨울 찬바람이 봄 곁을 서성이기에 봄의 따사로움이 더 값지게 느껴지는 것일 터. 허허했던 가슴을 봄볕으로 물들이며 죽서루로 간다.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등과 함께 관동팔경 중 하나로 불리는 삼척의 죽서루는 고려 충렬왕 때의 이승휴가 창건, 태종 3년 삼척 부사 김효손이 새롭게 다시 만든 누각이다. 이 누각은 9개 기둥을 자연석 위에, 8개 기둥을 석초(石礎) 위에 세워 만든 곳이라 하여 건축사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상당한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죽서루에 오른다. 지붕 아래 놓인 편액 속 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지런히 쓰인 글을 벗 삼아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과 첨재 강세황의 죽서루를 떠올린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한 팔작지붕 누각. 대가라 하여 이 풍광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으랴만, 송강 정철의 말대로 ‘풍경은 볼수록 싫증 나지 않으니’ 획을 더하는 게 사족임을 알면서도 손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 또한 자연이리라.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킬 것이라고 했던 문무왕이 지나온 바위 구멍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용문바위 앞에 선다. 복을 기원하기도 한다는 용문 바위를 지나며 누군가의 어둠을 물들이는 찬란한 빛이 될 수 있는 한해이기를 기도한다.

 

 4 이사부 장군과 나무 사자 조형물

 

신라 장군 이름 딴 이사부 사자공원
  삼척이 전해준 봄 내음이 쓸려가지 않게 삼척에서의 시간을 반추해 두어야겠다. 여정의 끝은 이사부 사자공원이다. 사색과 산책을 통해 삼척을 머금어 둘 수 있는 곳으로는 더없이 좋은 장소이리라. 이곳은 우산국을 정벌한 신라 이사부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지증왕 505년, 이사부는 우산국 복속 명을 받고 정벌 계획을 세운다. 드센 우산국 사람들의 무릎을 꿇리기 위해 이사부는 나무 사자를 전투용 배에 싣고 섬으로 간다. 이사부는 모형을 진짜 사자처럼 보이게 만들어 항복하지 않으면 사자를 풀겠다는 으름장을 놓는다. 적군을 꿰뚫어 본 이사부의 전략은 우산국인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든다. 이사부의 공적을 기념해 삼척시는 이사부 거리와 이사부 사자공원을 조성, 곳곳에 사자 조형물을 설치해두었다.


  물고기 조형물로 장식된 천국의 계단을 앞두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르는 아찔한 계단 끝에 전망대가 있다. 오른 계단이 더해진 만큼 호흡은 거칠어진다. 탁한 날숨을 타고 물고기는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형상이 되어 눈에 맺힌다. 조형물 물고기와의 동행 끝, 계단 끝에 이른다. 거친 숨을 뱉으며 뒤를 돌아본다. 눈을 채워오는 푸른 봄 물결을 보며 생각한다. 허리를 굽히게 만드는 가파른 길이었지만 계단을 올랐기에 내려다볼 때의 충만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극기의 인내 끝에 맛보는 트임이 남기는 카타르시스. 이것이 높디높은 이 계단이 서툰 여행객에게 남기는 선물일지 모른다. 전망대에 들어가 이사부 장군의 초상화를 만난다. 고개 숙여 고인의 명복을, 나라의 평안을 기원한다. 사자상들을 감상한 후 멀리 있는 독도를 눈에 담는다. 아프고 시린 역사가 서려 있기에 더 굳건해야만 하는 섬의 여운을 곱씹으며 전망대를 나온다.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쓸고 간다. 푸른 바람을 맞고 앉아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멍하니 내려다본다. 나조차 알아채지 못한 나를 비춰내는 거울이 바다가 아닐까.


  이 여정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해안 산책길을 지나온다. 석양 진 해변에 앉아 해안을 눈에 담는다. 건너편 촛대바위를 보며 유채꽃과 벚꽃, 죽서루의 풍광을 바다에 띄워본다. 찬란하기에 가슴 시리고, 겨울이 있기에 봄이 더 따뜻해질 수 있음을 알려준 삼척의 훈기가 노을이 되어 번져온다.

 

  3월경 강원도의 봄소식을 전하고자 삼척을 다녀왔습니다. 4월초 강원도 산불 피해 소식을 접하고 망설임도 있었으나, 어려운 지역경제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면에 담았습니다. 강원도 산불 피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 전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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