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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군항마을 사월, 봄에 쉼을 더하다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이대원 사진작가

 

 

사월은 진해다.
겨울 추위가 드문드문 남아있던 삼월의 끝자락, 진해가 봄을 알려온다. 봄이 왔다고, 만개한 벚꽃이 완연한 봄을 불러내고 있다고, 연분홍으로 물든 가지를 흔들며 손짓을 해온다. 봄이다. 하늘과 바다, 꽃과 어우러져 지상의 천국을 만들어내고 있는 곳, 피워 올린 꽃망울마다 사연을 담고 있는 곳, 그리하여 방문객들에게 기꺼이 쉼터를 내어주는 곳 경남 진해로 가야 할 때다.

 

 


봄, 사랑, 벚꽃이 어우러지다


2018년에는 윤중로도 아니고 하동 십 리 벚꽃 길도 아니고 북한강 벚꽃 길도 아닌, 진해로 간다. 온 도시가 벚꽃으로 봄을 피워내고 있는 도시, 진해 중에서도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여좌천이다. 여좌천으로 들어서자 도시 초입에서부터 벚꽃을 선사했던 진해가 여백도 찾을 수 없는 빼곡한 벚꽃을 길을 내준다. 천(川)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6,000그루의 만개한 벚나무들. 바람이 가지를 쓸고 간다. 나무가 허옇고 발그스레한 꽃잎을 내놓는 것으로 화답을 보내온다. 연분홍 꽃잎의 춤사위를 받아낸 것은 여좌천이다. 물 위에 바람의 시가 적히고 여좌천은 어느새 바람을 위한 원고지가 된다. 다리를 배경 삼아, 나무를 배경 삼아, 강을 배경 삼아 셔터를 누르는 여행객들이 그림이 되어 사진에 담긴다.


여좌천 3교 로망스 다리,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 다리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상춘객들로 만원이다. 천천히 아치형 다리를 지나오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하늘로 길게 뻗은 벚꽃과 바닥으로 고개 숙인 유채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자연이 빚어낸 알록달록한 세상 가운데 사람이 만든 길이 놓여있다. 길 위의 아픈 역사에 건네는 따뜻한 손길인 듯 여좌천 곳곳에 사람들이 만든 우산과 루미나리에, LED 조명, 조각 등이 장식되어 있다. 시린 역사를 거쳐 여기까지 왔노라는 선언이라도 하듯 명실공히 꽃놀이 명소로 자리 잡아 매년 관광객들의 발을 이끄는 여좌천. 발그스레하고 노란 꽃과 함께 걸으며 웃고 떠들고 소리치는 이들을 사진으로 남겨본다.

 

 


군항마을 축제 기간 문 여는 해군기지 


다음은 해군사관학교다. 군항제에만 개방하는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보초를 선 해군들과 백 년도 더 넘는 역사를 가진 벚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꽃을 찾은 이들의 마음은 모두 하나일 터. 여행객들을 구경하며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사관학교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해군사관학교라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까. 여좌천 벚꽃 길이 여러 곡의 실내악을 모아둔 것 같다면 해군사관학교의 벚꽃 길은 웅장한 오케스트라 같다. 바닥을 수놓은 꽃잎을 밟으며 길을 따라 들어간다. 벚꽃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기라도 한 듯 발을 움직일 때마다 울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귀를 두드린다. 한참을 걸어 거북선에 닿는다. 거북선 창으로 왔던 길을 돌아본다. 찰싹거리는 물소리와 거북선 창에 담아내고 있는 벚꽃 길과 구석구석 봄 냄새를 전하는 진해 거리. 거북선 안의 봄도 완연했다.


다음으로 발을 옮긴 곳은 해군박물관이다. 212점의 전시물이 있는 이충무공실, 319점의 자료가 있는 해군해양실, 315점의 자료를 갖춰놓은 해사실. 약 1,000점의 자료를 보유한 해군박물관이 봄에 들뜬 관광객들 사이에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의 역사를 여실히 담아내고 있다. 호국, 통일, 번영의 3가지 정신을 달성한다는 뜻이 담긴 삼정도, 정조가 충무공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손수 지었다는 비글을 탁본한 어제신도비, 정창섭 화백이 그린 대한해협진도. 1912년부터 해군기지로 개발되었다는 진해의 아픔을 전해 받는다.

 

 


근대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테마거리


해사반도를 거쳐 백두산함 마스트를 지나 들어선 곳은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한 근대역사테마거리다. 이 거리는 시간을 뛰어넘게 해준다. 근대로 시간을 되돌려 놓은 것 같은 문화 공간 ‘흑백’, 350여 점의 근대역사 자료를 만날 수 있는 진해군항마을역사관, 군복에 마크와 이름표를 달아주던 마크사가 있는 마크사 거리, ‘장군의 아들’의 촬영지였던 원해루, 그 맞은편의 중국풍 수양회관 건물, 러시아 스타일의 목조 건물 진해 우체국, 한국 최초의 충무공 상이라는 북원로터리의 이순신 장군 동상, 김구 선생 친필 시비. 그 외에도 어느 특정 시점에서 시계가 멈춰버린 것 같은 건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시간과 건물의 박물관 같은 근대역사테마거리, 느리게 걸어야만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이 진귀한 거리를 천천히 관통하며 진해의 풍경을 눈과 가슴에 새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봤던 비극의 역사를 그 시간을 고스란히 품은 채 꽃을 피워낸 땅, 이곳은 진해다.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찾은 곳은 경화역이다. CNN에서 선정한 벚꽃 여행지로도 유명한 경화역에 이르니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경적을 울릴 수도 달릴 수도 없는 기차다. 7181호 기차는 멈춰 있는데도 달릴 때만큼이나 많은 승객을 맞는 국내 유일의 기차다. 기찻길을 따라 벚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고 동력을 잃은 기차 위로 가지를 내린 벚나무가 꽃 터널을 만들어 주고 있다. 툭 건드리면 언제라도 이야기를 뱉어낼 것 같은 오래된 기차는 꽃 터널을 지붕 삼아 경화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붉고 푸른 기차가 창마다 벚꽃을 담아내며 봄이 왔노라고,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왔노라고 속삭인다. 그래, 봄이다. 봄을 맞았으니, 온 세상이 봄을 피워내고 있으니 봄볕에서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 진해가 나를 부른 건 봄을 전하기 위해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멈춰선 기차를 올려다보며 숨 고르기를 한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아 까마득히 잊어버린, 숨을 골라야 하는 이유를, 연륜 있는 노장 같은 기차가 넌지시 알려준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진해의 봄이 트임이 되어 가슴에 담긴다.   

 

 

 

진해탑에서 바라 본 천혜의 풍경  


마지막은 제황산공원이다. 모노레일을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본다. 365개의 계단과 모노레일을 두고 멈칫하고 섰다가 방공호를 보고는 계단으로 발을 옮긴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꽃만큼이나 가슴 아린 역사를 품고 있는 진해이기에 천천히 호흡을 조절해가며 진해탑을 찾아가 봐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 것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제황산공원. 동물 모양의 조각들을 눈에 담으며 진해탑으로 들어간다. 전망대에 서니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한 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식민지의 뼈저린 역사를 품고 있는 도로와, 연분홍색 꽃을 피워둔 진해 거리와 나지막한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보고 있자니 문득 가슴이 뭉클해진다. 발그스레한 꽃잎 위로, 퍼런 바다 위로 붉은 노을이 든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들고 달이 뜨는 것은 만고불변의 자연의 이치일 터. 시간의 겹침이, 시야의 트임이, 애잔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진해라는 지역이 뭉클하게 가슴을 두드리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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