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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길이 들려준 이야기

글_ 강지영 명예기자   사진_ 김경수 사진작가

 

  청록이 내달리는 칠월에 다시 하동을 찾는다. 설산을 선사했던 겨울과도, 꽃잎의 천국을 선물했던 봄의 초입과도 다른 푸른 여름나무 밑을 지나온다. 창을 열어 더위와 청량감이 적당히 버무려진 바람을 맞는다. 차창 밖 고즈넉한 낙동강으로 눈요기를 하며 제일 먼저 들어선 곳은 화개장터다. 영남과 호남이 어우러지고 산과 강이 만나는 지점에 화개장터가 자리 잡고 있다. 몇 해 전 큰 화재로 소실될 뻔했던 장터는 어느새 새 단장을 마쳤다. 산과 강이 주는 먹거리와 흥겨운 노랫가락과 오가는 사람들 목소리로 장은 생기 있게 북적거린다. 오래 전 김동리 작가가 「역마」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 뛰는 물고기의 회, 주막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가지 사이사이로 사철 흘러나오는 한 많고 멋들어진 진양조 단가와 육자배기’로부터 이어져 온 화개장터의 흥이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버섯 한 바구니를 사면 한줌 덤이 더 따라오는 인심 넉넉한 장터를 구경한 후 쌍계사로 간다.

 

 

수많은 문장가들이 다녀간 쌍계사
  서산대사, 최치원, 조식 등 수많은 문장가들이 다녀간 쌍계사는 이야기의 보고다. 곳곳에 얽힌 사연이 시간의 켜가 되어 남겨진 쌍계사 길목에서 최치원 선생을 만난다. 장승처럼 서 있는 바위에 최치원 선생이 썼다는 쌍계(雙溪), 석문(石門) 네 자가 새겨져있다. 석문을 지나 십여 분 쯤 걸어가니 쌍계사가 보인다. 눈 속 칡꽃이 핀 곳에 육조혜능 정상을 모시라는 꿈을 꾸고 만들었다는 쌍계사는 설립 당시 옥천사로 불렸다. 그 후 두 개의 계곡이 만나는 곳에 위치했다 하여 쌍계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탑, 진감선사 탑비, 마애불, 금당 등 절은 곳곳이 볼거리다. 유려한 최치원의 필치가 남아 있는 진감선사 탑비에 둔 시선을 금당으로 돌린다. 상념과 고민을 지우듯 108계단을 오른다. 음력 4월 14일을 지나 금당은 문을 닫고 있다. 문 앞에 서서 맞은편 산을 쳐다본다. 녹음이 절정에 이른 푸른 산이 목전(目前)에 이른 듯 가까워 보인다.
  불상이 아닌 탑을 모셔둔 금당, 지난 해 봤던 탑을 떠올리며 불일폭포로 향한다. 폭포는 걸어서 왕복 두 시간 쯤 걸리는 산중에 있다. 무릉도원을 찾아 헤매던 최치원이 학을 타고 노닐었다던 환학대와 오두막 한 채가 남아있는 불일평전을 지나 불일암에 이른다. 고즈넉한 암자에서 스님이 건넨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차가 목을 적시듯 눈앞의 절경이 가슴에 스며든다. 시야를 채운 녹음이 말없이 등을 다독여준다. 이내 먼 폭포소리가 발을 재촉한다. 길동무들과 함께 줄지어 좁은 길을 걷는다. 누군가의 듬직한 뒷모습을 본 게 얼마만인가 하는 생각에 잠겼을 즈음 폭포소리가 가까워지는 걸 느낀다. 오솔길 끝에 폭포가 있다. 발걸음이 바빠진다. 나뭇잎 우거진 길의 막바지에 이르자 상하 2단에 높이 60미터라는 불일폭포가 나타난다. 한복의 치맛자락 같은 산에 둘러싸인 폭포의 웅장함과 장엄함이 할 말을 잃게 한다. 백학봉과 청학봉 사이에 자리한 바위가 물길을 내두고 있다. 봉우리에서 쏟아지는 물이 바닥을 치며 소릿길을 낸다. 귀를 지나는 우렁찬 물소리에 갑갑했던 속이 뻥 뚫리는 것만 같다.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한 칠불사
  쌍계사에서 나와 칠불사로 향한다. 화개장터의 생기와는 또 다른 활기가 길마다 깃들어있다. 나뭇잎이 만들어낸 푸른 그늘과 강이 빚어내는 풍경 속을 천천히 지나온다. 잔잔한 바람 소리와 엷은 물소리를 듣자니 한 폭의 동양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차로 유명한 하동답게 한 집 건너 한 집 아기자기한 찻집이 자리 잡고 있는 도로를 달린다. 찻집으로 즐비한 길이 끝나자 고즈넉한 산길이 이어진다. 산울림에 귀를 연 채 칠불사 초입에 이른다.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수행에 들어가 성불했다는 전설이 깃든 칠불사. 여러 번의 화마를 딛고 일어선 절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깊은 골이 만들어낸 적요함 속, 수로왕 부부가 출가한 아들들을 보기 위해 만들었다는 전설의 못 영지(影池)를 만난다. 둥근 못에 산봉우리가 환영인사라도 건네듯 7월의 신록에 깊이를 더해준다. 싱그러운 바람으로 목을 적신 후 칠불사 문 앞에 당도한다. 토끼봉에 자리 잡은 칠불사의 첫 느낌은 어느 소설가의 작품 제목처럼 ‘흰’이다. 사그락거리는 초록과 오후의 해가 겹쳐진 칠불사에 빛의 포말이 일고 있다. 아득한 산소리를 따라 대웅전에 들어선다. 고요한 대웅전이 석가모니 상 뒤의 목각탱화와 부처가 되었다는 수로왕의 일곱 아들의 부조를 눈앞에 내준다.
  대웅전 옆에는 한 번 불을 떼면 백 일간 온기가 지속된다는 것으로 유명한 아자방이 자리 잡고 있다. 새 단장 중인 아자방의 아쉬움을 뒤로하며 절을 돌아 나오는 길,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고 있는 산돼지를 만난다. 울타리 속에서 낯선 방문객을 구경하는 검은 돼지들. 절을 찾아 내려온 산 손님과의 공생을 실천하고 있는 산사의 풍경이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다. 공생과 나눔, 인내의 가르침을 가슴에 담으며 다시 차에 오른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
  왔던 길을 돌아 나온다.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으로 방향을 잡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트이는 너른 들판 옆으로 뻗어있는 길을 타고 최참판댁에 이른다. 입구에 내려서니 곱다시한 하늘빛이 정수리를 비춰준다. 상쾌한 공기가 코를 간질이고 들어온다. 이름 모를 꽃과 풀을 보며 칠불사와 쌍계사의 여운을 달래본다. 「토지」는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진 대하소설이다. 25년에 거쳐 완성했다는 소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을 옮긴다. 숨을 고르며 소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은 「토지」의 땅을 밟아간다. 영팔이와 팔순네 집으로 시작되는 초가집촌의 나지막한 담을 지나 으리으리한 규모를 자랑하는 최참판댁에 이른다. 기왓장 지붕이 길게 이어져 있는 집 대문을 들어선다. 안채, 사랑채, 별당 등 열 개의 동마다 서린 사연이 발을 이끈다. 소설 속 ‘최치수’가 주로 머물렀던 사랑채를 지날 때는 기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별당에 이르렀을 때는 ‘서희’의 당돌한 목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그 생생함 속에서 찬찬히 ‘최치수’의 집을 돌아본다. 지주 가문 후손 ‘최서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풀어낸 「토지」. 장독과 처마 밑 옥수수, 연못과 구들장. 곳곳에 「토지」의 사연이 담겨있다. 아련한 소설 「토지」를 상기하며 정수리 같은 꼭대기 지점에 이르러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바람 앞에 고개 숙인 퍼런 들판이 하늘을 마주보고 있다. 너른 벌판 같은 토지 위에 25년에 거쳐 쓴 장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만 같다. 돌아보고서야 깨우친다. 소설 제목이 왜 ‘땅’도 ‘대지’도 아닌 ‘토지’가 되었는지를. 비옥한 논 가운데 서있는 200년 넘은 부부송(夫婦松). 그 위로 ‘길상’을 그리고 ‘서희’를 불러낸다.
  하동을 무대로 쓴 소설 「토지」. 한국문학사의 중심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토지」는 평사리에서 그곳을 찾은 사람들을 통해 오늘도 못 다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토지」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소설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하고 「토지」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가져다줄 최참판댁 풍경을 눈과 가슴에 담으며 느릿느릿 최참판댁을 벗어난다.
너른 토지 위에 길이 나 있다. 곧게 뻗은 찻길을 달리며 하동이 준 길 위의 만남을 되새긴다. 오늘의 이 길이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남으리라. 하동을 다녀간 이들의 사연이 2017년 초여름의 추억이 되어 곳곳에 새겨지리라.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

 

    쌍계사 마애불

 

    칠불사 원음각 범종

 

    최참판댁 가재도구

 

    박경리문학관 내부

 

    「토지」를 저술한 박경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