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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늘 마지막 달동네, 북정마을

글_ 한주희 본지 기자 · 사진_ 김경수 사진작가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대로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휘 돈다

「성북동 비둘기」 中 - 김광섭 作

 

 

01 서울 성곽에서 바라 본 북정마을

 

 

  서울 성곽 바로 아래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집들을 종종 보게 된다. 흔히 달동네라고 부르는데, 북성마을은 서울 사대문 안에 남은 마지막 달동네로 꼽히는 곳이다. 숙정문과 혜화문 사이 한양도성 백악 구간 초입에 위치한 이곳은 1969년 김광석 시인이 발표한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1960년대 산업화로 인한 도시 개발로 본래 살던 터전을 잃은 달동네 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 작가가 비둘기로 비유한 이들의 삶터는 아직도 1960~70년대 골목길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비의 대상이 됐었지만, 지금은 한양도성과 더불어 오랜 세월 누적된 주민들의 삶이 살아 있는 생활문화유산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1960~70년대 골목길 풍경 그대로원래 성북동 일대는 조선 후기 왕을 호위하는 어영청(御營廳)의 북둔(北屯)이 자리하던 곳으로 당시 나라에서 거주할 사람들을 모집해 정착시킨 마을이다.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도시 노동자들이 모여 현재의 마을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금은 과거 물길이 지나는 원형 도로를 따라 500가구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리어카가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로 다니기 힘든 거리였지만, 1985년 2차에 걸쳐 마을 중심을 둘러싼 소방도로를 준공했다. 당시 골목골목 있던 집들이 철거되며 반쯤 잘리거나 한쪽 지붕이 없는 집들의 잔재를 도로변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02 도보여행을 위한 표지판

 


  서울 지하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성북03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북정마을 주민들이 모이는 ‘북정카페’를 만난다. 지금은 사라진 길 건너 북정미술관에 있던 사진이 카페로 옮겨오면서 마을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대를 이어 살거나 40년 넘게 살아온 토박이들이 대부분으로, 주민들은 종종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기 일쑤다. 카페 뒤로는 북정마을과 오랜 세월을 보낸 1인 이발소가 옛 정취를 물씬 풍긴다.

 


  비둘기를 소재로 한 벽화와 조형물도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2012년 마을 공터에 조성한 비둘기공원에는 김광섭 시인의 시도 걸려 있다. 개발로 인한 아픔이 깃든 곳이지만, 지금도 그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2004년 주택재개발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된 이래 한옥마을 조성을 위한 재개발이 추진돼 왔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주민 간 갈등으로 대자보가 붙다 떼어진 자국들이 도로변 축대에 가득하다. 지금은 마을공동체로 거듭나며 2013년에는 ‘서울시 우수마을 공동체’에 선정될 정도로 분위기가 사뭇 바뀌었다. 한양도성과 지형이 일체화된 독특한 경관으로 서울시가 지정한 22개 성곽마을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사람의 살가운 온기가 가득한 이곳에 매력을 느낀 젊은 예술가와 청년들의 작업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설치·드로잉 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이순주 작가의 작업실 ‘공간 살구’는 갤러리, 레지던시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마을 초입 그림으로 그린 마을지도를 시작으로 원형 도로를 따라 30~40분간 산책 겸 걸으면 이곳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03 김광석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소재로 한 벽화와 조형물을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04 마을 초입 노인정 앞 북정마을 그림안내판

 

 

도심 속 참선의 공간, 길상사
  북정미술관에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집 사이에서 독립운동가 한용운의 자택 ‘심우장’이 있다.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 주위의 도움으로 마련된 이곳에는 그가 심은 향나무를 통해 독립운동으로 일관했던 그의 삶을 되새길 수 있다.

 


  성북동 뒷골목을 사이에 두고 숨어 있는 역사·문화지로 길상사도 빼놓을 수 없다. 성북동 중턱에 위치한 길상사는 예전 6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3대 요정집이었던 대원각이 절로 탈바꿈한 곳이다. 시인 백석과 애틋한 정을 나누던 기생이자 대원각 주인인 길상화(김영한) 여사가 7,000여 평의 대지와 건물 40여 동 등 1천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면서 1997년 사찰로 거듭났다. 경내에는 길상화 공덕비와 무소유를 이야기한 법정스님의 유품도 볼 수 있다.

 

 

05 06 마을 주민의 수다 공간 ‘북정 카페’. 길 건너 북정미술관이 사라지면서 마을 주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카페로 옮겨 왔다.

 


  절이 간직한 남다른 사연 때문에 길상사는 대중들에게 더욱 친근하고 사랑받는 공간이다. 평일 오전에도 생각을 비우고 명상을 즐기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다. 누구나 참선할 수 있는 ‘길상선원’과 ‘침묵의 집’은 물론, 상설시민선방도 마련돼 있다. 매월 넷째 주 토~일요일에는 템플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다.

 

 

07 2012년 마을축제 때 주민들이 조성한 비둘기 공원

 

 

08 1960~70년대 골목길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북정마을

 

 

09 11 길상사는 생각을 비우고 명상을 위한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10 종교간 화해의 염원이 담겨 있는 길상사 관음보살상. 법정 스님의 부탁으로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조각가가 만든 석상이다.

 

 

타일로 멋을 낸 마을 공중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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