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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해외 교육봉사

글_ 김성효 전라북도교육청 장학사

한글학교에서 느낀 봉사의 의미  
‘책씨앗 프로젝트’로 첫 발 
교사 6명과 뜻 모아 교육봉사

 

  2015년 가을입니다. 동남아시아 한글학교 연합 교사 연수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멀리 쿠알라룸푸르 한글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에서 학급경영과 진로교육을 강의하게 됐습니다. 한글학교는 교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야학 비슷한 주말학교입니다. 아이들은 잠시 이주하다가 떠나기도 하지만 학교는 그대로 남아 또 다른 아이들에게 한글과 한국사를 가르쳐야 해서 붙박이로 일할 수 있는 선교사나 현지에 이민한 교포들이 한글학교에서 주로 봉사합니다. 

 

사랑과 감사는 가장 강력한 무기
  이튿날 강의가 끝나고 저녁 늦은 시간 보르네오섬에서 오셨다는 어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40대 후반쯤 되어 보였습니다. 길 가다 만나면 금방 잊힐 것 같은 평범한 얼굴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한글학교에서 몇 년째 봉사하고 계시는 건가요?”
  “13년째 하고 있어요.”
  “와, 긴 시간이네요. 힘들진 않으셨어요?”

  그는 잠시 말을 잇지 않고 저를 물끄러미 보았습니다.
  “힘든 날 참 많았지요. 선교사 파송 받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본국 지원이 끊겼어요. 친척들이며 친구며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오만 원, 십만 원씩 보내주는 돈으로 근근이 살았어요. 남편이 그러다 쓰러졌는데 돈이 없어서 제때 병원에 못 갔어요. 나중엔 한쪽 몸도 못쓰게 됐지요. 하루는 쌀이 떨어져서 아침에 ‘하나님, 이거 다 먹으면 저희는 더는 먹을 게 없어요. 어떻게 하지요.’기도를 하면서 나갔는데 돌아와 보니 쌀독에 쌀이 있는 거예요.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쌀이 항아리에 가득 들어있더라고요. 한없이 눈물이 나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어딘가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왜 계속 봉사를 하셨어요?”
  “그래서 했어요. 너무 힘들고 지칠 때, 한글학교에 아이들 가르치러 가면 그게 그냥 좋더라고요. 봉사하러 가는 게 아니라 감사하러 갔어요. 한글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지 않았으면 저는 여기까지 못 왔어요. 주말마다 아이들 얼굴 보면서 가르치는 일이 감사하고 좋아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 이후에도 그 말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당장 점심에 먹을 쌀을 걱정하면서 아침에 집을 나서야 하는 이의 마음에 감사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어쩌면 사랑과 감사라는 가장 강력한 마음의 무기를 남겨두신 게 아닐까 하는.

 

한글학교에서 시작된 해외 교육봉사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책씨앗 보따리> 프로젝트입니다. 해외 한글학교에 한글동화책을 보내주고 방학 때에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죠. 2016년 1월에 코타키나발루 한국학교에 여섯 분의 선생님(김다솜, 김민수, 김소현, 장은정, 최서영, 김기수)이 봉사활동을 하고 오셨습니다. 교대생에서 신규교사, 경력 10년 차의 현직 교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력의 선생님들이 직접 동화책을 가져가서 나눠주고 아이들과 수업을 했습니다.
  저도 2016년 10월에 코타키나발루 한국학교에 가서 학생들과 한국어 수업을 했습니다. 직접 본 학교는 훨씬 열악했습니다. 아이들이 그 속에서도 한글을 배우고 익힌다는 게 참 신기하고 대견했습니다.
  필리핀 불법체류자들이 모여서 사는 수상가옥 마을에 있는 눔박소망학교에도 가보았습니다. 불법체류자 자녀들은 정규 학교에 다닐 수 없습니다. 눔박소망학교가 아니면 말레이시아어를 배울 수도 없고, 간단한 셈하기조차 배울 수 없지요. 눔박소망학교에는 현재 250여 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학교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뻔했던 것도 여러 번이지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지금까지 잘 버텨 왔다고 합니다.
  비가 새는 지붕 아래서 어떤 교구나 재료 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정 하나로 아이들이 공부한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곳도 훌륭한 배움의 터전이 되는 것이라는 걸 몸으로 배우고 왔습니다. 교육 행정가들이 그런 곳에서 글자를 배우고 셈하기를 배우면서 자라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은 서로 기대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가난한 마음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지요.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해외 교육봉사에 뜻이 있다면 세계 모든 나라에 세워져 있는 한글학교에도 관심을 가져주세요. 배움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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