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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 선생님이 되어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선생님이 되어 가는 길

박혜정 김해대곡중학교 교사

 

  명찰, 학교 배지, 리본, 귀 밑 3센티미터의 머리길이, 발목을 두 번 접은 하얀 양말, 굽 높이가3센티미터를 넘지 않는 검은색 구두, 이미지가 크게 새겨지지 않은 까만색 가방 등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았던 예전 나의 학교에서는 규정에 어긋남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학생 주임 선생님과 길게 늘어선 선도부 언니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으며 교문을 지나면 괜히 주눅이 들었고 긴장이 되었다. 당시 나의 아침은 늘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고 교문을 들어서는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운 건 긴장감과 고단함, 단조로움이었다.

 

  지금은 정해진 시간 안에 교복만 어느 정도 잘 갖춰 입고 교문을 지나면 학생부 선생님들의 지도와 잔소리는 무사통과다. 예전에는 아침마다 반복되던 그 팽팽한 긴장감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이다. 더불어 교문 안에서의 생활도 공부에만 절어 있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물론, 지금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겠지만!)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은 그때의 나보다 훨씬 더 좋은 마음을품고 학교로 향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은 고단한 몸을 이끌고 학교로 향하던 예전 나의 모습과 크게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학교를 향해 가고는 있지만 눈은 학교가 아닌 땅바닥을 향해 있고 발걸음은무거웠으며 어깨에 맨 가방이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학교가 아무리 바꾸려 노력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없는 한 학교에 대한 아이들의 무조건적인 불만을 잠재우지는 못할 것이라며 학교에 대해 아이들이 가지는 부정적인 태도를 안타까워하기만 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그 곁에서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는 아이들의 곁을 엔진의 굉음을 뿌리며 유유히 올라가면서 슬쩍 본 것이 다였지 아이들과 함께 그 길을걸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제까지 본 등굣길 아이들의 모습은 진짜 그들의 모습이아니라 학교로 향하는 나의 태도가 그대로 투영되어 보였던 것은 아닐까?

  아직도 학생인 것만 같은데 교사라는 이름을 달고 수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업을 ‘하기 위해서’ 처음 학교로 향할 때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생전 처음 보지만 곧 나의 학생들이 될 아이들사이에서 느낀 설렘, 기대감, 그리고 떨림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래져갔고 지금은 직장인으로서의 고단함과 피곤함만 가득 안고 끊임없이 무의미한 생각과 망상들에 사로잡혀 기계적으로 차를 몰아 학교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교실에 들어서서 오늘이 되어 처음 만나는 우리반 아이들을 대할 때도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인사도 없이 가만히 교실을 응시하기만 한다. 그것이 빠른 시간 안에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출근길의 연장선이다. 여전히 나는 피곤하고고단할 뿐이며 그런 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이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도록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나의 태도와 마음을 투영시켜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이 정말로 어떤 마음으로 학교로 향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처음 학교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의 마음을 되찾아야 할 것 같다. 버스 안에서 이제 곧 나의 학생이될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고 재잘거림을 들으면서 설레었던 것처럼 이제 자동차에서 내려 우리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을 함께 걷다보면 바랬던 마음들이 조금씩 제 색을 찾아주지 않을까? 그래서 직장인이 아니라 다시 그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학교로 향하는 길이 무척 가파르고 길어서 눈은 학교가 아닌 바닥을 향하고 발걸음은 힘겹고 등에맨 가방은 분명 더욱 무겁지만 그 길에는 즐거운 재잘거림이 있고 오늘 다시 만나는 친구들을 대하는 반가움이 있다. 학교 밖에서 만나는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한 톤 높여서 불러주는 목소리에 수줍음과 반가움이 묻어나며 교실에서보다 한참 더 가까운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과 교실에서는 나누지 못하는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제와 별다를 것 없는 하루지만 아이들의 발걸음에는 학교에서의 하루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조금씩 묻어나고 내 마음에서도 설렘과 떨림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다.

 

 

 

  박혜정 교사는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선생님’일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동안 좋은 선생님으로 한번쯤은 기억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담금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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