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권일한 삼척 미로초등학교 교사

책과 도서관이 있으니,우린 행복한 부자!


글_ 김혜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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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벌레 선생님, 권일한 교사 ]


  ‘난 아주 행복한 부자야. 내겐 책과 도서관이 있거든.’ 산골학교 책벌레 선생님의 소소한 행복은 이처럼 책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강원도 삼척 미로초등학교 권일한 교사. 수업시간 중에도 도서관놀이 등 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책놀이 수업’이라는 새로운 수업모형을 디자인해 가는 중이다.


  산골에서 나고 자라 산과 개울, 자연을 사랑하는 선생님, 유독 글쓰기와 책을 좋아해 별명 또한 예외 없이 ‘책벌레 선생님’이다. 현재 가르치고 있는 3학년 전 교과의 수업에서도 교과서 외에 책은 빠지지 않는 학습도구다. 이름 하여 ‘책놀이 수업’이다. 올해로 교직생활 25년째를 맞는 강원도 삼척시 미로초등학교 권일한 교사. 지난해 8월에는 25년 교직생활의 소회를 풀어놓은 교단일기도 책으로 냈다. <선생님의 숨바꼭질>이다.

  권 교사는 초임시절 겪었던 시행착오들도 마치 고해성사하듯, 이 책 안에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꼭꼭 찾아라, 아이 마음 닫힌다’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서 권 교사는 “아이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초기에는 그들과 어설픈 숨바꼭질만 해 온 것 같다.”라고 술회한다. 그러했기에 그는 요즘도 산골마을 아이들의 꼭꼭 숨겨진 마음을 ‘술래처럼’ 찾아 나서곤 한다.

  “교직생활 부임 이후 절반 가까이의 시기를 산골학교에서 가르치게 됐죠. 그렇다 보니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만날 때가 많았어요. 지금 반 아이 중에서도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마음이 아픈 아이가 있고요. 그런 아이들은 특히 가정방문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아이들은 힘들거나 상처를 받으면 마음을 꽁꽁 숨기기 마련인데, 자주 찾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 마음은 금세 또 달라지곤 합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권 교사는 “시골학교 아이들의 일기, 혹은 짧은 글쓰기는 그 자체로 시”라고 말한다. 선생님을 믿고 자신의 눈물 어린 내밀한 이야기, 저릿한 아픔들을 글로써 고스란히 꺼내어 보여주던 아이들. 혹은 선생님을 절로 미소 짓게 할 만큼 순수하고 예쁜 글을 써내는 아이들도 많다. 교사로서 이 아이들의 기록을 오래도록 남겨주고 싶어 만든 문집 <그루터기>는 1994년 처음 세상에 첫 선을 보였었다. 월간, 보름간, 때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엮이면서 아이들의 문집은 어느새 170여 호까지 채워졌다. 그리고 사랑스런 이 기록들은 학년말, 단행본으로 다시 엮이면서 그의 교직 햇수와 같은 25권까지 만들어졌다. 해마다 꾸준히 나오는 문집을 보면서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반색하며 기뻐했던 건 물론이다. 권 교사로서도 교직생활 동안 무엇보다 잘한 일 중 하나로 휴간 없이 지속돼 온 <그루터기>를 꼽고 있다.

  “<그루터기>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처럼 우리 아이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뜻으로 정해지게 됐죠. 잘려진 나무에서도 다시 싹을 틔우는 그루터기가 되자는 뜻도 있고, 아이들에게 ‘나눠줌’과 ‘소망’에 대해 일깨워주자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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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째 만들어 온 학급문집 <그루터기> ]



책놀이 맞춤교실, 아이누리 책둥지


  권 교사가 지도해 온 책읽기, 글쓰기 수업은 최근 교외 문예제전에서도 단연 도드라진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2019 농어촌 청소년 문예제전’에서 변다인 학생(산문)은 최고상인 대상을, 김가은(산문)·허예은 학생(시)은 각각 우수상을 수상했다. 대상작인 ‘우리 집, 진짜 없는 게 없다’는 산골마을에서 일어날 법한 뱀 출현 소동을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활달한 문체에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늘처럼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는/바다처럼 넓을 수도 좁을 수도 있는/수학문제처럼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는/알송달송한(알쏭달쏭한) 사람의 마음. 하략.’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제목의 제법 어른스런 통찰과 철학적인 시를 써낸 예은 학생의 작품 또한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단다. 현재 5학년인 다인·가은인 지난해 권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이다.

  취재 당일, 기자가 이들 세 학생들을 우연히 만난 곳은 도서관 ‘아이누리 책둥지’다. 입구에는 친구들이 오가며 읽을 수 있도록 백일장 수상작들은 물론 여러 학생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곳 도서관에서는 권 교사의 책놀이 수업과 7교시 방과후학교 글쓰기 수업도 진행이 된다. 이 공간은 또한 지역사회 주민들에게도 정기적으로 개방, 마을도서관 기능도 겸한다. 권 교사가 매년 기획하고 주관하는 여름방학 도농교류 독서캠프도 이곳에서 열린다. 캠프에서 처음 만나는 초면의 아이들은 함께 놀이하는 과정을 통해 친해지게 마련. 권 교사는 “참가 학생들은 자기소개 책놀이, 모둠 책놀이 등 책과 연관된 활동들을 수행하면서 서먹했던 거리감은 곧 눈 녹듯 사라지곤 한다.”면서 독서캠프 기간의 책놀이 활동들도 소개했다.

  “이 ‘아이누리 책둥지’는 리모델링을 하면서 바닥 난방시설까지 새로 들였어요. 해서 독서캠프를 할 때는 아이들의 숙소로 활용하기에도 안성맞춤이고요. 또 평소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아이들이 언제든지 들러 편안하게 눕고, 뒹굴면서 책과 함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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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도서관 ‘아이누리 책둥지’에서의 책놀이 수업 ]



“책놀이 수업, 무척 재밌어요!”


  지난 10월 18일, 3학년 학생들의 5교시 책놀이 수업. 권 교사는 먼저 ‘모둠 만들기’ 활동으로 수업의 시작을 알렸다. 모둠 형성에 사용될 활동지는 <행복한 교육> 9·10월호 표지. 두 권의 표지를 인쇄, 절반으로 자른 뒤 학생들이 각자 한 장씩 뽑게 했다. 뽑은 그림이 맞는 친구끼리 2인 1조, 모두 4개의 모둠이 만들어졌다(전교 학생이 60명인 미로초교의 3학년은 현재 8명으로 구성돼 있다). 모둠명도 뽑았던 활동지 안에서 글씨를 직접 골라 정하도록 했다. 이로써 ‘제주’, ‘강화’, ‘예술교육한마당’, ‘교’, 네 가지의 재미있는 모둠명이 정해졌다.

  첫 번째 책놀이 수업은 국어과 4단원 ‘감동을 나타내요’(130∼133쪽). 권 교사는 학생들에게 시각, 미각, 촉각, 후각 등 감각적 표현이 잘 드러나는 책 제목을 찾아오도록 했다. 주어진 시간은 3분. 종료시간이 임박하자 “책 제목에서 찾지 못하면, 책 안에서 찾아도 된다.”라는 권 교사의 추가 주문이 제시됐다. 예린 학생은 “피부가 보들보들해요”처럼, 촉각의 표현이 들어 있는 문장의 책을 찾았고, 박정후 학생은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입니다.”라는 문장을 찾아 친구들 앞에서 또박또박 낭독했다. 서가를 분주히 오가며 책을 찾던 정후 학생에게 기자가 살며시 다가가자 “저, 3분 안에 책 찾았어요, 하하. 책놀이 수업은 할 때마다 재밌어요.”라면서 웃어보였다.

기사 이미지[ 권일한 교사를 닮아 책놀이를 즐기는 3학년 아이들 ]



책은 곧 행복한 대화의 매개체


  “책놀이 수업은 국어교과는 물론 수학, 사회, 과학, 체육 등 전 교과를 아우릅니다. 이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은 자신이 읽고 싶은, 읽어야 할 책이 서가의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바로 알게 돼요. 오늘 수업처럼 아이들이 찾기 쉬운 과제는 2분 혹은 3분, 낱말을 활용할 때는 5분의 시간을 부여하는 등 놀이방식에서도 세부적인 변화를 주게 됩니다.”

  권 교사가 들려주는 이 책놀이 수업의 일차적인 목표는 아이들이 책과 함께하는 놀이형식을 통해 즐겁게 배우게 하는 것이다. 특히 수학교과 책놀이의 경우 책 속의 그림과 사진을 직접 찾으면서 그 속에 담긴 원리와 개념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이 두려워하던 논설문 형식의 글쓰기도 “주인공이 왜 그렇게 했는지 이유를 2가지씩 써 볼까?” 하는 식으로 책놀이와 함께 풀다 보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따라하게 된단다. 이곳 미로초교 ‘아이누리 책둥지’ 정면 벽면에는 권 교사가 올해 초 직접 새겨 넣었다는 글귀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난 아주 행복한 부자야. 내겐 책과 도서관이 있거든.’ 권 교사는 “책은 곧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행복한 대화의 좋은 매개체”라면서 책벌레 선생님으로서 누리는 소소한 행복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이제까지 책과 관련 <글쓰기가 좋아졌어요>(2009),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 이야기>(2011), <행복한 글쓰기>(2015),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2017),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독서토론>(2016)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이어온 권일한 교사. 이제까지 지도해 온 책놀이 수업 자료를 엮은 <책놀이, 도서관놀이>로 또 한 권의 노작(勞作)을 곧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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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명! 감각적 표현이 잘 드러나는 책을 찾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