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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화 속 아이들처럼 장애아이라고 다르진 않아요”

공진하 한국우진학교 특수교사


글_ 한주희 기자


장애학생들이 동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장난을 좋아하고, 천진난만하며 꿈으로 가득한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20여 년간 장애학생들과 동고동락해 온 특수교사가 그려낸 현실판 동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두터운 ‘장애’의 벽을 넘어 순수한 아이 그대로의 모습과 만나게 된다.

 

1 공진하 교사는 동화책으로 장애의 벽을 허문다. 직접 쓴 동화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공 교사

2 공 교사가 담임반인 1학년 1반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내 별명은 도토리.
걸어 다니는 대신 데굴데굴 굴러다녀서 붙은 별명이야.
모두 내 특별한 뇌 덕분이지! … (중략) …
아, 이럴 게 아니라 <도토리 사용 설명서>를 읽어 보는 게 어때?
친구들이나 선생님처럼 이 조종 장치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 거야!

   장애를 지닌 소년의 이야기 『도토리 사용 설명서』. 뇌병변으로 특수학교에 다니는 ‘유진’이의 유쾌한 시선이 동화책 가득 묻어난다. 아주 ‘특별한’ 뇌 때문에 손과 발은 물론, 혀를 움직이는 것조차 낯설지만 그래도 ‘내 거니까’ 좋다는 아이. 예쁜 선생님이 담임이 되길 바라고,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보는 초등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장애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특별한 아이들’이 아닙니다. 교실에서 즐거워하고, 친구와 놀기 좋아하고……. 그 나이 또래 아이들처럼 말이죠.”

   저자인 공진하(48) 작가는 20여 년 동안 장애학생들을 가르쳐 온 특수교사이자 동화작가다. 서울 국립특수학교인 한국우진학교가 개교한 2000년부터 그는 이곳 지체장애 학생들과 함께 부대끼며 생활하고 있다. “장애를 극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장애와 더불어 놀고, 배우며, 자라도록 하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교실에선 아이들이 많이 놀고, 노래하고, 그림책을 함께 보느라 즐거움이 가득하다.


20여 년간 장애학생과 동화책을 읽다 


  “오늘은 얼음 땡 놀이를 해볼 거예요.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손뼉 치며, 책상을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우쿨렐레 연주에 맞춰 몸짓하는 아이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움직임을 보이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감정은 쉽게 전이된다. 

  앞서서 『얼음 땡』 동화책을 읽어 주며 아이들에게 그림과 재미난 이야기를 꺼내 든 공 교사. 아이들과 놀이를 즐기기 위해 특별한 규칙도 세웠다. 아이들 목소리로 ‘얼음’과 ‘땡’을 녹음하고, 그때그때 버저처럼 누르도록 한 것. 몸이 불편한 친구도, 학습을 어려워하는 친구도 할 수 있는 ‘얼음 땡’ 놀이로 서툴지만 조금씩 반응하는 아이들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그림책 놀이를 즐긴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걷고 말하는 일이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비장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림책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장애가 다른 것들을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잖아요? 제게는 그중 하나가 동화책인 거죠.”

  그래서 그에겐 아이들과 동화책을 함께 읽는 일은 중요한 일과다. 


장애학생이 동화 속 주인공으로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책이 소용이 있나요?” 혹은 “아이들이 이해하나요?”라고. 공 교사는 그럴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곤 한단다. 계속 계속해서 읽어주다 보면, 조금씩 흥미를 보이거나 눈동자만으로 즐거움을 표시하는 아이들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학생들 읽기 자료로 쓰려고 동화를 구해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지만 장애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어요. 그럼 직접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동화를 공부하면서 책을 통해 얻은 많은 경험을 학생들도 느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지요.”

  때마침 읽던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는 그에게 큰 공감을 줬다. 발달장애가 있는 손녀 쿠슐라에게 그림책을 읽어 준 외할머니가 쓴 책으로 ‘장애가 있는 어린이와 책을 연결하는 고리들이 늘어나길 바란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고 했다.

  그렇게 2004년 처음으로 집필한 동화책이 『왔다갔다 우산아저씨』다. 9편의 단편을 엮은 이 책은 휠체어 때문에 우산을 쓸 수 없는 아저씨와 친구가 된 아이들의 이야기, 키가 작아 유모차를 타야 하는 수진이와 반 아이들의 이야기 등을 통해 천진난만한 어린 화자의 시선으로 장애를 바라본다.

  ‘내가 쓴 동화를 읽으면서라도 장애 어린이들을 만났으면 좋겠어. 슬픈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대로, 그렇게 장애 어린이를 만났으면 좋겠어.’라고 서문에 밝힌 그는 “학교나 동네에서 그 친구들을 만났을 때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들려준다.   

 

3 우쿨렐레로 즐겁게 시작하는 1교시 수업

 

4 그동안 집필한 동화책들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쓴 현실판 동화

   그렇게 시작해 바쁜 틈틈이 6권의 책을 출판했다.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벽이』는 다섯 살 때 열병을 앓아 장애를 얻은 재현이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쌍둥이 동생 다현이와 자신을 ‘유리그릇’처럼 대하는 엄마 사이에서 점점 고립되며, 방 안에서 벽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익숙해진 재현이. ‘벽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다가 차츰 한 걸음씩 밖을 향해 나오는 이야기는 특수학교에서 아이들과 동고동락해 온 공 교사가 각각의 인물들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공감을 자아낸다.

 

5 등교한 아이를 세심하게 챙기는 공 교사

  특히, 장애 아이들만큼이나 눈에 들어오는 건 그의 가족들이다. 『청아, 청아, 눈을 떠라』도 시각장애를 지닌 어머니가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돌보는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학급 알림 소식도 꼬박꼬박 녹음해 듣고자 하는 어머니의 모습, 근육병으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안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를 등에 업고 한라산을 등반한 사연들.
그래서 『청아, 청아, 눈을 떠라』에서는 잘 알려진 심청전을 심청이가 아닌 시각 장애를 지닌 아버지 심학규를 주인공으로 쓴 동화다. 불쌍하고 무능하게 그려진 기존 심봉사와 달리 여기서는 재능이 다양하고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로 등장한다. 결국엔 아버지가 아닌 심청이가 ‘마음의 눈’을 뜨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벗어버리게 된다는 결말로 맺어진다. ‘청이는 학규가 할 수 있는 일까지 죄다 자기가 맡아서 하려고 들잖아.’라는 문장에서 보듯 이 책은 심청이를 통해 진정한 ‘장애’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렇듯 동화 속 주인공들은 그가 가르치거나 만난 사람들을 모델로 하는 경우가 많다. 2014년에 쓴 『도토리 사용 설명서』는 수술을 앞둔 아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썼다. 책을 찾는 독자가 많지 않아도 ‘도토리’ 한 사람만 재미있게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특히, 놀이캠프에서 줄넘기하는 장면은 장애 비장애학생들이 함께 하는 놀이캠프에서 아이를 안고 줄넘기했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남의 얘기처럼 보일까 하는 걱정이 가장 큽니다. 누군가의 삶을 나와 상관없는 삶으로 여기거나 불쌍하게 보는 시선이 아니길 바라지요. 또래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려 사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갈등과 화해,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아이들과 꿈꾸는 ‘서투르지만 즐겁게’

   88 서울장애인올림픽을 보면서 선수들이 너무 멋있어 특수교사를 꿈꾸게 됐다는 공 교사. 그는 아이들이 지닌 장애가 그렇게 멋있고, 훌륭할 수 있다고 믿는다. “거창한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무사히 살던 동네에서 어른이 되어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에게 가장 큰 보람이다.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과 함께 살면서 「어른이 되면」 영화를 찍은 장혜영 감독의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란 노래는 그래서 그의 기억에 참 오래 남아 있는 곡이다. 

  “교사는 삶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가 학교에 다닌 동안 선생님들에게 배운 것은 교과서 속의 지식이 아니라 그분들의 삶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는데,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투르지만 즐겁게 하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몇 년 전부터는 여성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면서 여성의 경험으로 장애와 어린이에 대한 이해도 훨씬 깊어지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도 유쾌하고 즐거운 동화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가장 최근에 낸 『우리 동네 택견 사부』처럼,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존재인 어린이들에게 동화책으로 말 걸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장애를 갖지 않은 어린이가 다 같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동화’는 작가이자 교사인 그의 오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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