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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동철 강원 상평초등학교 교사 “아이들의 삶이 교육이 됩니다”

글_ 편집실

 

누구든지 본 대로 들은 대로 쓰는 <교실일기>. 한 아이가 이렇게 적어 놓았다. ‘벚꽃나무에 (예쁜) 봉아리가 나왔어요. 골목길에’ 교사는 칭찬을 한 이, 칭찬을 받은 이 모두에게 선행의 한 표를 주자고 했다. 아이 1표, 벚나무 1표. 그렇게 <교실일기>를 살펴보며 선행을 이야기한 날, 창문에 놓여 있는 배추꽃, 우리에 키우던 닭 등등 아이들의 주변은 칭찬으로 넘쳐났다. 교육은 이렇듯 아이들의 삶과 가까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교실 안에서, 학교 안에서 이야깃거리로 ‘공부’해 나가는 탁동철 상평초등학교 선생님의 교실을 엿보려 한계령을 넘었다.

환하게 웃는 상평초 4학년 담임반 아이들과 탁동철 교사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는 탁 교사

 


  “오늘 보거나 듣거나 마음에 담은 일이 있나요. 한 줄로 적어 볼까요?”
  한 교실에 옹기종기 모인 8명의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과 최대한 가까이 책걸상을 두고 앉은 어른 1명.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이들 책상 위로는 ‘노래공책’이 펼쳐져 있다. 매일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혹은 시간이 될 때마다 부른 탓인지 공책은 이미 두 권을 붙여 두툼해져 있었다.
  “다 괜찮아요?”
  “뭐든 괜찮아.”
  ‘모두’ 허용되는 공간 안에서 아이들은 하나둘 입을 열었다. “추석 때 벌집을 봤어요.” “무슨 벌집?” “집에 붙어 있었어요. 이~만해요!” 저요, 저요를 여러 번 외치던 지우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진다. “재진이 책상 위 종이딱지”(유민이) “전봇대 위에 까마귀가 까악까악”(예성이) “비만 고양이가 내 눈앞에서 어슬렁어슬렁”(민성이)…….
아이들이 본 세상, 아이들의 일상이 그대로 묻어나는 한 줄의 글. 곧이어 한 줄 글에 마음대로 음을 붙이더니, 제법 신나게 흥얼거리는 아이들. 노래를 부르는 사이 시간은 정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로 부르는 노래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9월의 어느 날, 강원도 한 시골 마을 교사의 수업을 엿봤다. 4학년이 8명
인 아이들, 그 속에 함께 앉아 노래를 부르는 이가 탁동철(50) 양양 상평초등학교 교사다. 10월 12일 열리는 상평초 풀벌레 예술제에 부를 노래를 연습하는 날, 아이들은 이 곡에도 자신들이 쓴 시에 음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다.
엄청나다 북평리 논밭 / 모가 삐죽 자라는 논♬ 
도롱뇽 새끼가 있고 … (중략) … 자연의 세계 / ♩♬
이제 막 자라는 모가 / 너도 여기 오라고 흔들흔들♩♪

  유민이가 쓴 「북평리 논밭」에는 등하굣길에 바라본 논밭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롱뇽 새끼, 하얀 백로, 올챙이와 소금쟁이가 있는 자연의 세계가 유민이가 바라본 고향의 논밭이다. 
  “학교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나가는 곳입니다. ‘무엇을 해라’고 하는 건 자기들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다 이야기하게 하는 것. 교실은 아이마다 실의 한끝을 쥐고 자기 이야기 그물을 짜나가는 곳이지요.”
  탁 교사의 수업은 언제나 정해져 있지 않다. 아이들이 만들어 가는 그날그날의 이야기가 수업이 되고 공부가 된다. 점심을 먹고 난 이후 아이들은 종이 한 뭉치를 들고 교문 밖을 나섰다. 전교생이 정성스럽게 그린 ‘풀벌레 예술제’ 홍보지를 지역주민들에게 나눠주며 소개하기가 이날 5교시 수업. 서면파출소 경찰관 아저씨도, 수성우체국 우체부 아저씨도, 서면슈퍼 아주머니에게도 “노래 들으러 꼭 오세요!”라고 외치는 아이들 얼굴에는 뿌듯함이 배어난다.

 

 

산개 포획 작전이 수업 속으로

  교직생활 동안 꾸준히 만들어 온 학급신문
  올여름에는 아이들에게 ‘대사건’이 일어났다. 동네 ‘누렁이’보다 더 큰 산개가 학교 뒷산에서 내려와 어슬렁거리는 걸 목격한 것. 학교는 혹여 아이들이 다칠까 우려했고, 아이들 눈은 온통 산으로 향했다. 탁 교사는 아이들의 화두를 교실 안으로 들여왔다. 그렇게 한 달간 아이들과 산개 구조를 위한 포획 작전을 짰고, “함정을 파자”는 의견에 따라 땀을 흘려가며 인근에 구덩이를 팠다. 탁 교사는 이러한 모든 활동을 교과서 활동과 연계했다. 구덩이를 파며 1분 동안 아이들이 삽질한 숫자를 기록하고, 그렇게 판 흙을 자루에 담아 저울로 재서 그래프를 그렸다. 함정을 팔 때는 지난 국어 시간에 시로 만든 노래를 부르며 땅을 팠다. 아이들이 쓴 「산개」란 시다.
산개가 타닥타닥 / 학교를 내려다본다. / 우우웅 활활
나도 산을 보며 개처럼 짖는다 / 우우웅 활활
개 / 무서운 개 / 치타 같이 뛰는 개
잡아야 된다 / 함정을 파자 / 영차 영차

  “난데없이 나가서 꽃을 보고, 물놀이하고… 그런 활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박물관에 자주 간다고 아이들이 배우나요? 산개 포획 작전도 아이들이 하고자 한 일이라 의욕이 강했어요. 아이들이 TV ‘동물농장’에 사건을 제보한다며 편지글을 쓰는데, 3~4일에 걸쳐 한참을 공들여 설득하는 글을 쓰더군요. 국어 단원 ‘편지쓰기’ 수업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교과서에 갇히지 않고, 일상 속에서 참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해요. 지식을 외우는 건 열심히 할 순 있지만 마음까지 움직이진 않거든요. 생활 속에서 하는 공부는 있는 힘을 다하게 되지요.” 

아이들의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수업

 

아이들의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수업

 

 

삶을 가꾸는 글쓰기로 다가서다
  탁 교사도 이곳 출신이다. 상평초등학교 분교 공수부전은 그의 근무지였고, 모교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선생님으로 보던 그는 다시 모교로 돌아와 이번엔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후 20여 년 동안 그는 전교생이 100여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학교에서 주로 교직생활을 하고 있다. 복식학급을 지도한 경험이 전 교직생활을 통틀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굳이 작은 학교를 희망해 근무한 이유는 뭘까.
  “여기서는 누가에게 어떤 일이 있든 모두의 일이 됩니다. 쉬는 시간 딱지로 다툼이 생기면, 다음 주에 바로 전체 회의가 열리고 아이들이 한참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끈으로 연결돼 있고, 그러다 보니 이야기들이 끝이 없지요. 다 관심을 갖고 얘기하고 풀어나가야 하니 공부 거리가 가득 차 있습니다.”
  학교에 오는 일이 힘들어 본 적이 없다는 그도 후회의 순간은 있다. 초임교사 시절, 3여 년간은 정답을 찾고 점수에 목메는 경직된 학교 분위기에 순응해야 했다. 교실에서 공기놀이를 해도 지적받던 시절이었다. 그런 그에게 인근 학교 선배 교사가 글쓰기 모임을 권했고, 그는 그때부터 새롭게 아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쓴 글을 교사들과 함께 나눠 읽고 되새기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것.
  그 후로, 매일 매일 아이들과 함께 교실 안에서 일어난 일을 적는 <교실일기>를 쓰고, 학급신문과 문집을 지금껏 꾸준히 만들어 오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쓴 시를 모아 시집 「까만 손」을 엮었고, 아이들과 시 공부를 하며 놀았던 이야기를 모아 『예들아, 모여라 동시가 왔다』도 펴냈다.
  “공수전분교에서 만난 성준이(가명)는 조부모와 지냈어요. 늘 울었지요. 어릴 때 받은 상처가 커서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했어요. 하루 종일 책상 밑에 숨어 들어가 안 나오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시 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지금은 정신과 병원에서 환자들 상담하고 치료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시와 노래로 치료를 하겠다고 하지요.”
  지난해부터는 <학교종이 땡땡땡> 팟캐스트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국 선생님들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교육 현장의 어려운 일들도 함께 풀어가기 위해 시작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탁샘, 그는 아이들을 찾아주고 인정해 줄 때 아이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듯, 교육은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을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산개 포획 작전으로 함정을 판 4학년 아이들

 

학교 축제 안내문을 마을주민에게 나눠주는 아이들

 

아이들이 만든 학교 축제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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