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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심용 대구보명학교 교사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발명입니다”

글_ 편집실

 

1. 아이들이 좀 더 편하게 신체활동을할 수 있도록 변화시킨 대구보건고 신체활동지원실에서 환하게 웃고있는 육심용 교사

 

장애로 인한 아이들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발명을 시작한 교사가 있다.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믿으며 상상을 실제로 만들어 주는 교사가 있다. 31년간 장애학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육심용(58) 대구보명학교 교사의 이야기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은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에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북돋기 위한 날이다. 그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장애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고 있다.

 

 

2. 줄넘기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고안된 원 줄넘기 체육활동 수업

 

 

“하아나, 두울, 세엣!”
줄넘기 연습을 하는 체육활동 시간. 구호에 맞춰 천천히 줄을 넘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뭇 남다르다. 선생님이 줄을 원 방향으로 바닥에서 돌리면, 아이들은 폴짝폴짝 손쉽게 높이 뛰어 오른다. 올해 초 정신지체학생들을 위해 고안한 원 줄넘기로 육심용(58) 대구보명학교 교사의 야심작(?)이다. 


“이곳 학생들은 두 가지 이상 동작을 한 번에 해야 할 때 어려움을 느낍니다. 줄넘기 또한 줄을 넘기는 동작과 뛰는 동작을 따로 가르쳐야 하지요. 줄을 손쉽게 돌릴 수 있고, 아이들이 따라 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신장에 맞춤형으로 조절할 수 있는 셀카봉을 보고 ‘아하!’ 싶었어요. 손잡이용으로 셀카봉에 줄을 넣어 줄의 길이를 자유롭게 조절하게 하고 끝에 방울소리 나는 공을 달아 돌려보니, 회전하는 소리를 듣고 시각장애학생들도 쉽게 줄넘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4. 대구보건학교 신체활동지원실.중증장애학생들의 장운동과 균형감각을 돕기 위해 개선한
전동흔들의자 등 아이들을 생각하는 육 교사의 마음이 곳곳에 스며있다.

 

 

장애를 극복하게 만든 ‘맥가이버’ 선생님


육 교사는 학교에서 ‘맥가이버’로 통한다. 아이들이 불편할 때마다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31년간 특수학교에 근무하다보니 아이들 눈빛만 봐도 불편한 점을 콕 찍어낸다. 원 줄넘기 또한 대구보명학교로 부임한 지 1~2주 만에 고안한 신체활동 운동도구다.

 

5. 러닝머신에 가슴안전벨트를 달아 신체활동을 도운 육 교사

 


“발명가라고 하니 쑥스럽네요. 발명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우거나 특허를 낸 발명가는 아닙니다. 제 발명의 주제는 언제나 ‘아이들’이에요.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아이들의 생각과 고민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지요.”

 

6. 대구보명학교 현관의 문구는 육 교사의 바람이기도 하다.


실기교사로 목공예를 가르치던 그가 발명에 눈을 뜬 건 대구보건학교에서였다. 지체장애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그는 수업 내내 불편해하는 학생들을 보게 됐다. 전동휠체어의 컨트롤 박스와 손잡이가 책상에 계속 부딪히자 자세가 불안정해졌기 때문. “전교생의 50~60% 학생이 전통휠체어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던 그는 책상상판에 긴 홈을 냈다. 홈으로 전통휠체어의 컨트롤 박스와 손잡이가 잘 들어갈 수 있게 되자 책상과 몸의 거리는 최대한 가깝게 됐고, 편해진 자세에서 아이들의 수업에 대한 집중력도 향상됐다. “아이들에 대한 관찰과 관심”은 그에겐 곧 발명이었다.  

 

7. 육 교사는 아이들의 평생 행복을 위해 취업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교내 사무용지 학교기업 현장


다기능 필기보조기구도 경직형 지체장애 학생과의 만남이 시작이었다. 항상 손과 발이 묶여 수업을 듣는 아이를 본 그는 “재능 있고 똑똑한 아이인데 불편을 조금이라도 줄일 순 없을까?”란 고민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고 만들어보며, 학생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턱을 이용해 필기도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 등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됐을 때 뿌듯해하던 그 아이의 표정은 그에겐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도전한 발명품은 대구광역시 학생과발명품경진대회에서 나란히 동상을 수상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이에 대한 관심이 발명의 출발 


“사소한 이야기라도 아이들의 말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황당해 보여도 그 아이에게는 아주 중요한 말일 테니까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날 찾아오는 아이, 최대한 정확한 발음을 내기위해 온 힘을 다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 말들을 어떻게 흘려들을 수 있겠어요? 아이들의 생각이 장애에 부딪혀 상상으로 그치지 않도록 함께 이뤄나가는 일이 발명이지요.”
뇌병변 장애를 앓던 한 아이는 의사소통조차 어려웠다. 말로는 어려워 그림으로 여러 번 그려보며 아이의 생각을 들여다봐야 했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그림을 보고 “맞니?”라며 묻고 또 묻기를 수십 번, 그렇게 개발한 ‘크기 조절기능이 있는 좌변기 시트’를 만들었을 때 아이의 자부심은 크게 높아졌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제작한 발명품은 20여 가지. 시각 및 중증장애인을 위한 윷놀이기구 세트, 중증장애인 학생들의 장운동과 균형감각을 돕는 전동흔들의자, 가슴안전벨트 조절기능이 있는 휠체어, 러닝머신 보행보조기구, 중중장애인을 위한 붓 보조기구, 보치아 공거리 측정기구 등이 있다. 특히, 보장구 개발 동아리를 만들어 전동 싸이클 보조기구, 수도꼭지 손잡이 길이조절장치, 버스 승하차 시 학생 이동 보조의자를 선보인 결과 2012년부터 매년 발명대회에서 입상을 하는 성과를 거뒀다. 
“발명지도 노하우는 따로 없습니다. 아이들 말을 한 번이 안 되면,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들어줄 수 있는 인내심이지요.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하고, 기다려줄 줄 아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취업률 100% 달성 기록을 세우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만이라도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와 아이들이 만든 발명품은 불편을 줄이고 자신의 재능을 십분 살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가 7년간 머무른 대구보건학교 곳곳에는 그의 그러한 마음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전동휠체어에 앉아서도 손이 닿도록 수도꼭지 길이를 길게 하는 등 작고 사소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편한 건 모두에게 편하다.”는 그의 생각은 장애인, 노인, 아동 등 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하고 시설을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다면 모두에게 편리한 세상이 되는 무장애 도시와도 닮아 있다.


그런 그에게 아이들의 지속적인 행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차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돕는 건 그가 발명 이전부터 가장 관심을 쏟은 일이다.


전문대학에서 공예과를 졸업한 후, 청각장애교육기관인 대구영화학교에 근무하면서 야간대학 산업공예학과 학업도 마친 그는 24년 간 아이들의 취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취업률 100%를 달성하는 기록도 세웠다. 그는 발명도 “아이들이 보조공학기기 개발자가 돼 연구원으로 취업하는 것”을 앞으로 추구할 목표로 뒀다.  


“당시만 해도 장애학생에 대한 편견과 오해도 심하고, 이직률도 높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아이 부모와도 끊임없이 대화하고,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산업체에 방문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불이익이 없도록 설명을 했지요.”


그는 10여 년간 취업한 졸업생 200여 명의 명단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아이들이 안정적인 평생 직장인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추수지도를 했다.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스승’이라 불리기 어려운 특수학교지만 더 없이 큰 기쁨이 됐다.


“부족해도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특수교육 전공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부족해 하던 그는 “한결같이 아이들에게 웃어주는 모습”을 보여주자 했다고. 원 줄넘기 수업에서 그는 같은 말을 수십 번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이들이 용기와 자신감을 갖도록 응원도 멈추지 않았다. “잘한다!” “높이, 더 높이” 어느덧 그는 환한 웃음으로 장애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스승’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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