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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관 서울 양재고등학교 교장 “매 순간이 교육자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

글_ 황자경 본지 편집장

 

 

 

  “어디에 있든 교사가 서있는 자리가 ‘학교’입니다.”


 서울 변두리 지역에서 교사로 첫발을 디딘 후 서울시교육청 장학사·장학관, 동북아역사대책팀장(교육인적자원부)·교과서선진화팀장(교육과학기술부) 등을 거치며 서울교육과 국가교육을 두루 살펴온 민병관 서울 양재고 교장이 건네는 말이다. 어느 자리에서나 교육자가 있는 곳에서는 배움과 가르침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념을 넘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학교’


  민병관 교장은 78학번으로 역사교육과에 진학했다. 당시 젊은 혈기로 감당하기 벅찬 여러 역사적 파란과 마주하면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때였다. 이후 교단에서 80년대 교육사의 파고를 넘으며 ‘교사는 학생 곁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등대처럼 밝히며 걸었다. 그가 보수·진보 이념을 떠나 ‘학교주의자’로 통하는 이유다.


  “어려운 지역이나 공업고에 있을 때는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를 포기하려는 학생들을 종종 만났습니다. 하나하나 가정방문을 하면서 흔들리는 아이들을 붙잡았지요. 방학 때가 되면 학생들에게 일일이 손편지를 써서 안부를 묻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많이 따라주었습니다.”


  2000년 교육전문직으로 교육청 업무를 맡게 되면서 그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원칙을 지켜나갔다. 생활지도 담당 장학사로서 금연운동을 맡았을 때는 지금도 자신의 금연날짜를 연, 월, 일까지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사사로운 입장에 앞서 맡은 바 업무를 우선했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절대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조치가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고, 흡연율·금연율 등 각종 지표에서 속속 그 성과가 나타났다.


  고입 담당 장학사로서 외국어고등학교 현안을 다룬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영어로 된 수학문제 출제 등 사교육을 유발하는 외고 입시와 외고 졸업생의 의대 진학 풍토 등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 소재 외고 입시를 공동출제방식으로 전환하고 특목고가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학교 안에 있을 때나, 학교 밖에서 교육행정을 할 때나, 학교를 반듯하고 훌륭한 교육기관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교사로서의 양심’을 간직한 선생님들에게 그 열정을 끌어올려 뜨겁게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민병관 교장은 서울에서 어려운 곳으로 손꼽히던 청량고에 지원해 초빙교장으로서 현장에 돌아왔다. 그는 자율형 공립고인 청량고에서 학교교육계획서 혁신과 팀 단위 연구수업 활성화로 변화의 물꼬를 터나갔다.


  당시 학교마다 만들어내는 연간 학교교육계획서는 화석화된 틀에 따라 학교 연혁부터 현황, 월별 계획이 천편일률적으로 나열된 구조했다. 민 교장은 300쪽 내외의 계획서를 1/3 수준인 100쪽 내외로 간소화하고 당해 연도에 주력 추진할 액션플랜 중심으로 탈바꿈시켰다. 일 년간 학교가 실천해 나갈 활동이 한눈에 명확해진 것이다.


  “대개 학교장들이 학교교육계획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교교육계획서는 교육활동의 설계도이자 청사진입니다. 이를 통해 구성원마다 자신의 역할이 전체 속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인지할 수 있지요. 학교교육계획서를 핵심과제 중심으로 개편함으로써 형식의 변화를 통해 내용의 질을 개선하는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팀 단위 연구수업 활성화도 학교문화를 크게 변화시켰다. 수업 공개조차 기피하던 교사들이 팀을 이뤄 수업 개선을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공부하는 학교풍토’가 만들어진 것이다.


  청량고는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선정된 데 이어 ‘좋은 학교 박람회’에 연속 2회 참가하면서 교육과학기술부 표창을 받기도 했다. 혁신은 사소하였으나 강력하였다.

 

 

 

  민병관 교장은 수시로 학생들을 교장실로 불러 종이배를 접으며 이야기를나눈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꽁꽁 숨겼던 속내도 보이고 어느덧 성큼가까워진다.  

  정성들여 접은 종이배에 소원을 쓰고 양재고 교정에 자리한 생태연못에 띄우면, 이것만으로도 학생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이자 힐링이 된다. 

  “한꺼번에 이루려 하지 말고 하나하나 바꾸다보면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진다.”고말하는 민병관 교장의 스타일이 엿보인다.

 

민병관 교장은 ‘분노를 퍼뜨리지 말고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라’는 말을되새기며 살아왔다.

혹시 분노가 일 때면, 고운 꽃에 물을 주거나 유쾌한 이와 이야기를 나누라고 귀띔한다.

 

 

 

미래인재 역량 키우는 PBL 운영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과장을 거쳐 지난 2014년 양재고에 부임한 민병관 교장은 입시를 앞둔 일반고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중등교육과장 시절 미국 시애틀 등을 돌며 미래학교의 비전을 살펴본 그는 서울형 미래학교의 초석을 놓은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인재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래인재는 낯설게 보고 새롭게 사고할 수 있는 창의력, 지식을 스스로 통섭·융합할 수 있는 자기 주도적 지식재구성능력, 소통력에 기반한 협동력이 필요합니다. 즉 혼자 책상에 앉아 시험공부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이와 같은 역량을 키워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민병관 교장이 찾은 해답은 PBL(Project Based Learning)이다. 양재고 학생들은 2학년 때 4~5명씩 팀을 이뤄 한 학기에 한 가지씩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학생들이 팀별로 자유롭게 주제를 선정하고, 연구·설문·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과제를 수행한 후, 보고서를 만들어 발표한다. 학생들이 선정한 주제를 보면 「매점 매출량과 급식 만족도의 상관관계 분석」, 「한강과 양재천의 플랑크톤 종류와 개체 수에 의한 생태환경 차이」, 「뉴미디어가 청소년 정치 참여에 미치는 영향」 등 범교과 융합적인 내용들이다. 올해부터 PBL을 교육과정 중 창체시간에 편성해 더욱 연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또 학생들이 언제든 모여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학교 내 ‘학습카페’도 설치 중이다.

 

민병관 교장은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도록 끊임없이 주문한다. 교사의 아이디어를 적극 뒷받침하는 것은 학교장의 몫이다. 양재고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PBL에 자부심을 느끼는 학생들은 학교가 좋아서 방학이 싫다고 입을 모은다.

 

교장실 한편에 놓인 칠판에는 ‘인능홍도 비도홍인(人能弘道 非道弘人)’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누구라도 쉼 없이 성장해 나갈 것을 당부하기 위한 말이다.

 

 


  “학교에 프로젝트 학습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교육계의 철학적 흐름과 닿아있습니다. 즉 티칭(teaching)에서 러닝(learning)으로, 나아가 싱킹(thinking)으로 교육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교사가 가르치는 시대에서 학생이 스스로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시대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 대학입시 전형이 ‘학교생활기록부 중심’으로 변화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학생부 전형을 통해 일반고 교사들이 비로소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찾게 된 것이지요.”


  민병관 교장은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일컬어 ‘대목수’ ‘대기자’라 칭하듯, 교사도 ‘대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용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교사가 다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장실 한편에 ‘인능홍도 비도홍인(人能弘道 非道弘人)’이라고 쓴 글귀는 그가 만나는 선생님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글자 그대로 보면, 사람이 도를 넓힐 수 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즉 자리를 성취했다고 해서 그것이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고 학문적으로 깊어질 때라야 교사의 가르침이 귀하게 받아들여지고 진정한 교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학교가 좋아서 방학이 싫다는 양재고 학생들을 보며 민병관 교장은 ‘맑음과 밝음, 따뜻함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학교(양재고의 꿈 中)’를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혁신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교장의 길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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