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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동백꽃의 물결이 학교마다 가득한 제주의 봄

황유리 명예기자

4·3 평화·인권 교육주간

동백은 겨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그런데 제주에서 동백은 벚꽃, 유채꽃과 함께 진정한 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꽃이다. 가슴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평화와 화합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하여 제주지역의 학생들은 올해도 고운 손끝마다 붉은 동백을 피워내었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2024 4·3 평화·인권 교육주간’을 3월 18일(월)부터 4월 7일(일)까지 운영하였다. 4·3 평화·인권 교육은 △인권 △평화 △역사토대 △현재성 △보편성이라는 다섯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학교 교육계획에 2시간 이상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는 4·3 평화·인권 교육주간에 대하여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서는 교과 2시간 및 창의적 체험활동 2시간 운영을 권장한다. 제주 4·3 76주년을 맞은 올해도 ‘4‧3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평화와 인권의 감수성을 높이고 세계민주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라는 목표하에 도내 곳곳에서 다양한 4·3 평화·인권교육이 펼쳐졌다.

(제공교육과정 내 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을 활용한 4·3 평화·인권 교육 주요 활동(안) (제공: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평화를 사랑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마음을 키워가는 벨롱벨롱 배움 이야기

‘2024 4·3 평화·인권 교육주간’을 맞이하여 제주 도내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와 지역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벨롱벨롱(‘반짝반짝’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 다채로운 교육활동이 운영되었다.

학생들이 직접 구상한 제주어 4·3 문구로 만든 현수막 (사진: 창천초등학교)학생들이 직접 구상한 제주어 4·3 문구로 만든 현수막 (사진: 창천초등학교)


창천초등학교 학생들은 제주 4.3을 기리는 현수막 문구를 구상하였다. 학생 다모임 시간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을큰허게(안타깝게) 간 소중한 생명, 아름답고 또똣헌(따뜻한) 평화로 피어나리’라는 제주어 4.3 문구는 교육주간 동안 정문에 현수막으로 게시되어 학생들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도록 하였다.

4·3 명예교사 어르신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사진: 보목초등학교)

4·3 명예교사 어르신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사진: 보목초등학교)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생생한 4·3 이야기를 담은 인형극 '함께 기억해요' (사진:창천초등학교)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생생한 4·3 이야기를 담은 인형극 '함께 기억해요' (사진: 창천초등학교)

동백이 4·3의 상징이 된 이유를 생각하며 지역 어르신과 동백 주머니를 만들고 있는 학생들 (사진: 서귀포초등학교)

동백이 4·3의 상징이 된 이유를 생각하며 지역 어르신과 동백 주머니를 만들고 있는 학생들 (사진: 서귀포초등학교)

동백꽃 송편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는 학생들 (사진: 하도초등학교)

제주 4·3을 상징하는 동백의 의미를 알아보는 동백꽃 떡 만들기 체험 (사진: 하도초등학교)


제주 전역의 ‘마을삼춘’들은 해마다 학교를 찾아 생생한 역사의 기억과 평화·인권의 의미를 후손들에게 전한다. 2024학년도에도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 회원들은 명예교사로서 보목초등학교를 비롯한 도내 초등학교 5·6학년 학생과 중‧고등학생을 만나 화해와 상생의 미래 가치를 전달하였다. 유족회 회원들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꾸민 4·3 인형극 ‘함께 기억해요’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한편, 서귀포초등학교를 찾은 지역 어르신들은 학생들과 함께 동백 주머니를 만들며 동백꽃이 제주 4·3을 상징하는 꽃이 된 이유에 대해 들려주었다. 하도초등학교 학생들은 동백꽃 모양의 송편을 만드는 활동을 하며 4·3의 아픔을 공감하는 계기를 가지기도 하였다.

(사진: 금악초등학교)

직접 그린 동백꽃으로 꾸민 추모벽에서 묵념을 하고 있는 학생들 (사진: 금악초등학교)

(사진: 서귀포초등학교) 평화·인권 관련 도서를 읽고 생각의 발자국을 남기는 북 큐레이션 코너 (사진: 서귀포초등학교)


학교 곳곳에는 교육주간의 의미를 기억하는 공간이 꾸며졌다. 금악초등학교는 학교 도서관 근처 벽에 추모관을 조성하고 4.3 평화·인권 교육활동의 산출물인 동백꽃을 붙여 학생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서귀포초등학교 도서관에는 4·3 평화·인권 북 큐레이션 코너가 마련되었다. 교육주간 동안 학생들은 평화·인권 관련 도서를 읽고 생각의 발자국을 남겨보았다.

(사진: 흥산초등학교)교내 4·3 추모식에서 평화의 바람을 담은 곡을 리코더로 연주하고 있는 학생들 (사진: 흥산초등학교)

(사진: 사계초등학교)4·3 평화·인권 교육주간 온모임 체험활동 시간에 평화 현수막을 만들고 있는 학생들 (사진: 사계초등학교)

학교 차원의 추모 행사 또한 의미 있는 교육주간의 일환이었다. 흥산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은 교내 4․3 추모식에서 졸업생 선배들이 작곡한 ‘동백이 되어 다시 만나리’를 리코더로 연주하였다. 식은 이어서 전교생 4․3 노래 합창하기, 영상으로 4․3 알아보기, 4․3 작품 시상 순으로 진행되었다. 전교생이 함께하는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은 사계초등학교에서도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온모임 부스 활동에서 평화 현수막 만들기, 백비 팝업 카드 만들기, 온라인 추모글 남기기, 학생 책임 규약 투표하기를 통한 학교 평화 지키기 등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였다.


(사진: 구좌중앙초등학교)학생들이 직접 학교 화단에 심은 평화의 상징 올리브 나무 (사진: 구좌중앙초등학교)


4·3 평화·인권 교육주간은 제주의 역사를 넘어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의미 역시 지닌다. 구좌중앙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교육주간 마지막 날이자 식목일인 4월 5일 학교 화단에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를 심으며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다졌다.


‘육지에서 온’ 교사가 전하는 4·3 평화·인권 교육의 현장

필자는 제주지역에서 흔하지 않은 타지 출신의 교사다. 아름답고 슬픈 제주의 봄이 오면, 아이들과 함께 배운다는 마음으로 학급에서 ‘4·3 평화·인권 교육주간’을 꾸린다.

10시 정각에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묵념을 하고 있는 학생들

10시 정각에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묵념을 하고 있는 학생들


제76주년 4·3 희생자 추모식 생방송을 시청하며 진행된 4·3 기억 책갈피 만들기

제76주년 4·3 희생자 추모식 생방송을 시청하며 진행된 4·3 기억 책갈피 만들기

매년 4월 3일 10시 정각 제주 전역에서는 사이렌이 울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무거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정초등학교 5학년 3반 학생들과 선생님도 자리에서 일어나 4·3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를 틀어주며 신나게 진행하던 평소의 미술 시간과는 달랐다. 제주4·3평화공원에서 진행되는 제주 4·3 추념식 생방송이 틀어진 교실에서 학생들은 평화의 소망을 담은 책갈피를 정성껏 만들었다. 올해 추념식에는 국무총리뿐 아니라 처음으로 전국의 교육감들도 참석했다는 소식도 아이들에게 전해주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읽는 고등학생이 화면에 나오자 “엄마한테 들었는데, 우리 친척 중에서도 4·3때 돌아가신 분들이 계신대요!”라는 외침이 교실 어디선가 들려왔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삶 속에 깃든 역사의 흔적을 나누어보았다.

다양한 평화·인권 교육자료가 탑재된 도교육청 누리집 (제공: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다양한 평화·인권 교육자료가 탑재된 도교육청 누리집 (제공: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역사의 아픔을 딛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바람직한 자세를 제시하는 다양한 영상자료역사의 아픔을 딛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바람직한 자세를 제시하는 다양한 영상자료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누리집에는 4·3 평화·인권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교육자료가 탑재되어 있다. 학교급, 학년군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교재, 동영상, 공모전 수상작 등은 교육현장에서의 내실 있는 교육주간 운영을 지원한다. 예컨대 초등 저학년 학생들은 ‘별이 된 아이들아’ 샌드아트 영상, 중학년 이상의 학생들은 ‘들엄시민’ 제주어 애니메이션 등을 시청하며 역사의 자취를 따라가 본다.

상생하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담은 학생 작품상생하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담은 학생 작품


교실 복도에 게시되어 있는 평화·인권 교육주간 산출물교실 복도에 게시되어 있는 평화·인권 교육주간 산출물


학생들은 다양한 영상자료를 시청한 후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남겼다. 이어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붉은 색연필과 붉은 색종이로 동백꽃을 칠하고 접어보았다. 최민서 학생은 “4.3 사건을 잘 몰랐지만, 오늘 수업과 영상을 보고 더 잘 알게 되었다. 4.3 사건은 많은 분이 돌아가시고 지금 생각해도 억울한 사건이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았다.”라는 생각을 적었다. 김지원 학생과 김아은 학생은 각각 “지금의 제주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 역사를 잘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4.3은 제주의 아픈 역사. 우리는 후손이자 제주도민으로서 매년 4.3을 기억해야 한다.”라는 소감을 통해 역사를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를 다짐하였다. 학생들의 작품은 교육주간 동안 복도에 게시되어 평화를 존중하고 지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유적지에 얽힌 역사적 사건의 경위를 살피고 있는 학생들유적지에 얽힌 역사적 사건의 경위를 살피고 있는 학생들


학교 근처 유적지로의 현장체험학습을 통해 생생하게 익히는 역사학교 근처 유적지로의 현장체험학습을 통해 생생하게 익히는 역사


섯알오름 학살터를 살피고 있는 학생들섯알오름 학살터를 살피고 있는 학생들


뜻깊은 배움의 기회는 학교 밖에도 가득하다. 제주도 전역에는 아픈 역사를 지닌 유적지가 산재해있다. 이를테면 대정초등학교가 있는 대정읍 상모리에는 4.3 유적지인 섯알오름 학살터가 있다. 대정초등학교를 비롯한 관내 다수의 학교는 해마다 이즈음이면 현장체험학습지로서 이곳을 찾는다. 작년에 필자도 6학년 학생들을 인솔하여 그 현장에 다녀왔다. 학생들은 ‘마을삼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추모비에서 묵념하고, 유적지에 깃든 가슴 아픈 역사를 알아보았다.

다양한 시청각 자료와 유물을 만날 수 있는 제주4·3평화기념관다양한 시청각 자료와 유물을 만날 수 있는 제주4·3평화기념관


평화공원 내 묘역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평화공원 내 묘역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


평화·인권 교육주간이 끝나도 아이들의 배움은 이어진다. 학생들은 4월 현장체험학습의 여운을 안고 6월의 배움여행 중 4·3평화공원에 방문하였다. 제주4·3평화기념관을 관람하며 역사의 흐름을 짚어가 본 후, 여전히 편하기 쉬고 있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묘비를 닦으며 역사의 상처에 공감하는 계기를 가졌다.


평화와 인권,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인류 보편의 가치

교육주간 동안 도내에서는 4·3 평화·인권 교육을 주제로 하는 사례공유회와 전문가과정 연수도 이루어졌다. 4·3 평화·인권교육의 전국화 및 세계화를 위한 활동 또한 전개되었다. △‘평화! 지금 여기에서’ 전국 청소년 평화 포럼 △전국 청소년 4·3 영어 스피치 대회 △4·3 평화·인권 교육 원격연수 △4·3 평화·인권 교육 전국교사 직무연수 △국외 평화·인권교육 교류 국외연수 등이 그 예시다. 이러한 활동들은 제주에서 불어오는 평화의 바람이 바다를 건너고 국경을 넘어 뻗어 나가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


지나온 역사의 아픔을 딛고 다가올 미래를 밝게 꾸려가는 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세대의 손에 달렸다. 틀린 맞춤법이 보이는 소감문과 운지 실수가 있는 악기 연주면 어떠하랴. 아이들은 따스한 봄 햇살 같은 평화의 소중함을 몸소 익혀가고 있다. 아직 서툰 솜씨지만 고사리 같은 손길들로 정성껏 피워낸 동백꽃이 가득한 제주의 붉은 봄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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