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한 시대

글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


기사 이미지

  이른바 ‘n번방’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공분을 일으켰다. 특히 가해자 중에 미성년자가 많고 20대의 젊은 청년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충격을 주었다. 청소년들이 범죄에 가담하거나 피해자가 되는 이유는 뭘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미디어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경험하는 성문화

  미국과 캐나다에서 1945년부터 1975년까지의 TV 보급률과 강력범죄 발생률을 비교한 적이 있다. 두 나라에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는데 TV 보급률이 증가하면서 15년 정도 차이를 두고 정비례하여 강력범죄가 증가하였다. 반면 같은 시기에 TV가 보급되지 않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강력범죄 발생률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TV와 강력범죄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이용이 증가하면서 범죄, 특히 청소년 범죄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

  탁틴내일에서 지원한 사례를 보면 성폭력 피해 내용 중 카메라 등 이용촬영과 통신매체이용음란 피해 건수가 2016년 149건에서 2018년 247건으로 증가하였다.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에서 카메라 촬영이 수반되는 경우가 늘고 있고 촬영 피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청소년도 있다. 인터넷의 폭력적인 문화는 청소년의 범죄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 가정법원, 학교 등에서 성폭력 가해 행동으로 탁틴내일에 의뢰한 사례 중에도 통신매체 이용 음란이 2014년 39건에서 2018년 86건으로 증가하였고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는 같은 기간 35건에서 188건으로 증가하여 영상 제작 배포와 관련된 범죄가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공기처럼 존재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유용한 내용도 많지만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성폭력이 재현되는 영상,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 심지어는 ‘패드립’이라 하여 엄마에 대한 성적 표현과 욕설, 성별 갈등을 부추기는 표현들이다. 우리나라가 역차별 사회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글이나 영상도 쉽게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편협하게 해석하는 가짜 뉴스도 많다.

  남자 청소년들이 역차별 주장에 대해 쉽게 공감하는 이유는 생활 속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남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약하니까 무거운 것도 남성이 들어야 하고 여성에게 져주는 것이 남자답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봐도 여성이 남성보다 약한 존재라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경험은 여성이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할 가능성이 크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의 통제를,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통제를 접하는데 대부분 아이들을 통제하는 사람들의 성별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남자만 군대를 가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개인의 경험이 사회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 청소년에게 우리 사회는 역차별 사회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남자 청소년들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우리나라는 성별 격차가 큰 사회로 평가되고 있다. 해마다 세계경체포럼에서 발표하는 성격차 지수는 조사대상 140여 개국 증에서 늘 110위대에 머물고 있고 유리천장지수도 OECD 국가 중에서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월적인 지위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조신해야 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함부로 표현해선 안 된다. 남자아이들이 장난치고 괴롭히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니 이해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불편함이나 폭력을 참고 견디도록 길러진다. 드라마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보거나 듣는 건 여성은 사랑받는 존재여야 하고 예쁜 외모와 착한 심성으로 멋진 남성에게 선택되는 것이 중요한 존재다. 다행인 것은 최근에는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스스로 운명의 주인으로 삶을 개척해가는 주체적인 여성이 많아지고 고전적인 방법으로 여성을 표현하는 드라마는 인기를 얻기 어려워져 사회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음에도 여전히 인터넷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여성은 성적인 대상이 된다. 여성을 상품화하여 전시하고 거래한다. 여성을 착취적으로 이용하는 산업이 존재하며 이 산업이 유지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건 이러한 착취물을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문화에서 남학생들은 여성을 성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남자의 성은 통제하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과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심지어는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것을 성인들의 놀 권리, 표현의 자유 등으로 이름 붙이고 법으로 금지하는 불법 성매매, 불법 음란물을 즐기고 있음을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여성들은 불편함을 호소하였지만 무시당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남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성적인 친밀함뿐만 아니라 연애를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움을 느낀다.


성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
평등한 관계 맺기 교육해야

  성을 소비하고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아직 성장과정에 있는 아이들이 중심을 잡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학교가 성인지적 인권 교육, 포괄적 성교육으로 아이들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는 아이들이 경험하는 현실을 따라가기도 버거운 것 같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을지, 연애 혹은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는 무엇인지, 성과 관련하여 원하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 의사소통 기술, 몸에 대해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외모 때문에 자존감을 잃지 않는 것 등이다. 대중매체에서는 성을 어떻게 다루는지, 사회 문화적인 성은 어떤지, 법은 성을 어떻게 담고 있는지 등에 대해 폭넓게 사고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특히 ‘동의’라는 것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동의’ 여부를 묻거나 대답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문화, 사회적인 압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여성은 왜 ‘성’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지, 박력 있게 접촉을 시도하는 것을 남자답다고 여기는지, 대등한 관계에서 자유롭게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렇게 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토론하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다.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권력의 차이로 인해 강요된 선택이 아니라면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한다.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사람은 살면서 성과 관련하여 선택하고 결정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성교육은 이렇게 자신의 가치관을 바로 세우고 의사표현과 결정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과 권리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기사 이미지


포괄적 성교육을 위한 제도 개선 노력 필요

  다행히도 지난 4월 23일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안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올바른 성 가치관과 태도를 함양하는 포괄적 학교 성교육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제는 대책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교육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회가 복잡해지다 보니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교육이 많아졌다. 인권 교육, 안전 교육, 성평등 교육, 성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폭력예방 교육, 인성 교육, 인터넷 예절 교육 등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학교교육이 중요하다고 언급된다. 이렇게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교과 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에 교육을 하다 보니 상시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하기 어렵다.

  성교육도 1년에 한 시간으로는 부족하다. 성과 관련한 지식, 성착취로부터 안전한 인터넷, 연애, 데이트, 몸, 임신, 피임, 성 권리 등 다루어야 할 주제가 많고 주제마다 연령 및 발달단계에 맞게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성교육에서 성인지적 관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이 가능한 시수를 확보하는 것과 함께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성교육 교사의 자격을 갖추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전처럼 권고 수준으로는 아이들의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하여 교과과정 개편 및 관련 교사 자격 취득에 대해서 중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차근차근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특히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비판받고 있는 성교육 표준안부터 폐기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일 것이다. 그리고 유네스코 국제성교육가이드라인을 참고하여 우리나라에 맞는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빠른 시일 내에 만들고 실현 가능하게 교과과정을 개편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