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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

글_ 정용주 교육부 대변인실 교육연구사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다. 출산의 문제는 개인적 차원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가 출산율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해도 저출산의 문제가 고용, 교육, 주거, 돌봄 등 사회 전 분야와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차원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켜,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청년 일자리 문제부터 육아와 보육, 교육의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는 것까지 사회 전 분야에서 걸쳐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출산위가 국가 주도로 출산을 장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 가족의 삶을 존중하는 사람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하려하는 것은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한다.그런데 육아와 보육 그리고 교육의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출산위가 제안한 초등학교 저학년의 하교시간을 늦추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일제 학교이다. 저출산위는 사교육 방지, 학력신장 등 공교육의 책임을 다하고, 저출산의 원인이 되는 육아부담 완화를 위해 해외 주요국에서 오후 3시 이후 모든 학년이 동시에 하교하는 전일제 학교 운영을 미래 교육비전으로 제시하였다.

 

 

저출산 문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당장 교육계는 저출산위가 제시안 방안이 실효성이 없고,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악화시킬것이라며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제도로 뒷받침해서 남녀가 함께 일하고,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 실행하고 있고 학교도 이러한 흐름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데 또 다시 학교에 교육기능이 아닌 돌봄 역할을 강제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학교를 돌봄과 양육을 포함하는 전일제 생활학교로 변모시켜 나가는 것이 세계 여러 나라의 학교개혁에서도 확인되는 것이고, 학교의 기능의 확대에 대한 범사회적 요구를 교육의 본연의 과제와 연결시킬 수 있는 이론적 실천적 매개 고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저출산위가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저출산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 교육계의 입장이다.
  실제로 저출산 문제를 극복한 해외의 사례를 보면, 돌봄을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것과 함께 성평등, 가족 형태 다양성, 다문화성, 일 가정 양립, 보육 인프라, 안정적 일자리와 주거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출산과 육아가 망설임 없는 축복이고 기쁨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 부처와 민간이 함께 무릎을 맞대며 온종일돌봄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지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는 손쉬운 방법에 치중하고 있고, 이 정책이 교사의 부담, 학생 부담, 학교가 해야 할 본래 기능으로서 교육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종합적 검토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교육계는 어떤 대안을 내세우는가? 방향은 간단명료하다. 저출산 문제에는 소득수준과 생활환경, 자녀관과 결혼관, 삶의 질에 관한 문제 등 경제, 노동, 교육, 육아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므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이견이 없지만, 학교는 고유 기능인 교육 기능을 강화하고 돌봄, 방과후 학교, 보육의 기능은 지자체가 책임지면서 마을의 자원과 환경을 돌봄과 보육에 친숙한 환경으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돌봄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자
  필자는 학교는 교육기관으로서 기능이 강화되어야 하고, 부모의 교육권, 교사의 부담 증가, 학생의 학습권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우선 돌봄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교육계의 진단과 우려에 동의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돌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봄은 사회의 여러 기능 중 하나라기 보다 사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자체가 돌봄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돌봄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당연히 저출산을 비롯해 양극화, 고령사회, 과열된 사교육 등 사회의 제 문제는 궁극적으로 사회가 어떻게 인간을 존엄하고 인간답게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다음으로 돌봄이 더 이상 ‘개인적’이며, ‘집안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동의해야 있다. 이러한 접근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 같지만, 각자생존에 익숙한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부모들의 선택권이나 자녀의 선택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에 익숙하고,  돌봄도 다른 재화나 서비스와 같이 최상의 분배를 시장에 맡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선택을 자유, 평등, 정의로 접근한다. 이렇게 돌봄이 개인화, 가족화 되면 상대적으로 사회적 권력이 있는 집단이 자신의 기여를 좀 더 가치 있게 보이거나 좀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다 심각한 문제가 야기된다. 결론적으로 돌봄의 개인화, 가족화는 분배의 불평등과 배제를 낳고, 민주주의의 불평등, 사회적 배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기 때문에 돌봄의 사회성에 대한 강한 신뢰와 동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돌봄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사회의 존재이유가 ‘연대’하면서 ‘함께 돌봄’ 때문이고, 돌봄의 개인화, 가족화를 넘어서야 하지만, 그렇다고 국가가 전체를 대상으로 일률적인 안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앞의 두 가지와 비교해 이율배반적이다. 국가는 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하지만, 우선적으로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어떻게 ‘함께 돌봄’의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지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하며,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 개입하는 것이 좋다. 초등 저학년 하교 시간 연장이 일부 맞벌이 가정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전국의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3시에 하교하게 한다는 것은 돌봄, 저출산 문제, 공교육의 강화 문제 어느 것 하나에도 타당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정부가 저출산의 문제를 노동정책, 주거정책, 부실한 보육정책, 긴 노동시간과 불안정한 고용환경 등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육아를 끔직한 일로 만드는 사회의 문제로 인식한 것은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돌봄정책을 사회정책과 교육정책 가족정책이 종합적으로 결합된 정책으로 접근하면서 돌봄의 맥락성, 복합성, 연계성을 고려하여 정치적 의제로 대통령직속위원회라는 테이블 위에 올렸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 저출산 문제에 대한 국가차원의 대책 마련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총론적으로는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평등한 돌봄을 만들고, 각론적으로는 국가와 사회가 중재하면서 서로 다른 역량을 지닌 사람이 서로를 돌보는 책임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완성된다. 따라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시민이 서로를 돌봄으로서 민주주의가 채워지고, 민주주의가 돌봄을 중심으로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유능함을 보일 수 있도록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특히 교육이 혁신학교를 확장하여 상실된 마을공동체를 교육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마을교육공동체’ 담론을 앞장서 제기했듯이 돌봄을 통해 민주주의가 완성되는데 있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돌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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