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어떤 아이로 키울 것인가

어떤 아이로 키울 것인가

글_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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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살 되더니 엄마 말을 안 들어요. 미운 일곱 살이라더니 이제 미운 세 살인가 봐요?”

 


  “다섯 살인데 한글 교육해도 될까요? 다른 애들은 동화책을 제법 읽던데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니까 정말 걱정이 많이 돼요. 공부 욕심은 없지만 혹시 뒤쳐지면 애 자존감 다칠까 봐요.”

 


  “요즘은 초등학교 3학년만 돼도 사춘기가 오는 것 같아요. 말도 안하고…. 애 눈치 보느라 저희 부부가 오히려 눈치꾸러기가 되었다니까요.”

 

  “중학생을 호모중딩쿠스라고 부르며 신인류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만큼 이해하기 힘들다면서요? 우리 애가 딱 이해불가예요. 부모말이라면 반대할 생각부터 하는 것 같아요.”

 

  “한국 고등학생 부모는 완전죄인이에요. 생각해보니 결혼 후 20년을 아이 중심으로 살았네요.”
아이 발달별로 고민이 제각각인 듯하지만 결론은, 아이 키우기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 행복하게 키우고 싶다’이다. 시대적으로 인재상은 달라졌어도 부모의 맘은 한결 같다. 우리 아이를 ‘행복한 인재’로 키우고 싶다. 금지옥엽 내 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재로 자라게 할까?

 

 

생각 하나, 나는 어떤 부모인가를 돌아보는 일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우고 행복하게 키울까를 외부에서 찾지 말고 부모 자신에게 찾는 것부터가 우선이다. 지나치게 똑똑한 이론형 부모 말고, 가슴으로 안아주는 부모인지 돌아보자. 혹시 머리로만 사랑하는 부모라면 아이는 거부한다. 감정 코칭이 일찍부터 대세였고 “그랬구나!”라고 공감해주라고 하지만 그보다 더 앞서야 할 부모의 모습은 ‘웃는 부모’이다.

 


  아이는 부모의 얼굴을 보며 자신을 본다. 부모가 밝고 환한 모습이면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몸이 피곤해서, 시간이 없어서, 여러 가지 형편상 아이와 지내는 시간이 부족할수록 아이를 향해 부드럽고 환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의 행복을 약속하는 키워드다. 부모에게 필요한 건 HQ(Humor, Humanity Quotient 유머지수, 인간성지수)다. “네가 내 아이라서 고마워”라는 표정과 미소를 짓는 부모. 이런 부모의 따뜻한 눈길 속에서 아이가 잘 자란다. 부모야말로 가장 훌륭한 환경이다. 우리 아이를 행복한 인재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부모의 표정이 답이다.

 

 

생각 둘, ‘부모 정체성’만큼 중요한 ‘부부 정체성’
  부모교육에 자주 거론되는 말이 ‘롤모델’이다. 아이는 부모의 옆모습,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도 한다. 이 말은 부모의 말과 태도를 얘기할 때 특히 강조하는 데 이 말이 왜곡되어 부부가 부모가 된 순간부터 부부를 잊고 오로지 좋은 엄마아빠가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라는 것이 된 것 같다. ‘아이에게 올인하기’는 아이도 힘들고 부모도 힘들다.

‘부부에게 올인’하자.

 

  아이를 잘 키우려면 ‘부부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아이에게 보이는 정성을 배우자에게도 잊지 말자. 아이의 간식을 만들었을 때 그 간식을 듬뿍 담아 남편에게 먼저 권하고, 당신을 만난 건 믿을 수 없을 만큼 행운이라고, 사랑한다고 아내에게 자주 말하자. 사랑 받는 아내는 아이를 대할 때도 사랑스럽게 대한다. 존경 받는 남편은 아이에게도 존중 받는 아빠가 될 수 있다. 아이 잘 키우는 데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부부 행복’이야말로 자녀를 잘 키우는 현답이며 정답이다. ‘부부 정체성’을 가진 부부는 부모 역할도 근사하게 한다. 든든한 후원자로서 두 사람이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면서 아이를 키우니 아이 또한 균형감 있는 아이로 자란다. 그런 부모를 보면서 아이는 건강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인성을 갖추며 행복하게 자란다.

 

우리 아이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부 먼저 행복하자.

 

 

생각 셋, 가정의 경제, 부모의 한계도 보여주는 부모
  아이와 함께 나누자. 기쁨과 행복, 역할도 나눌 필요가 있다. 아이는 성장하며 발달하는데 늘 아기 취급하는 건 아닐까.
‘어려서 집안일을 도운 아이가 커서도 성공한다’라는 기사가 떠오른다. “넌 그저 아무 생각 말고 공부나 해”라는 건 아이를 공부 외에는 무능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무능감은 ‘불행감’으로 이어진다. 아이를 존중하며 유능하게 키우려면 집안의 일원으로 인정하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적절히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경험이 아이의 독립과 자립에 큰 몫을 하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아이가 궁극적으로 행복하다. 스펙시대에서 ‘스토리’시대로 가는 즈음, 아이의 자립과 유능감은 행복을 좌우할 것이다.

 


  부모가 늘 든든한 언덕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놓여나 우리 아이를 믿어보자. 자녀 스스로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계획할 것이다. ‘스프링클러의 저주’와 ‘결핍교육’을 떠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때맞추어 물을 주면 뿌리는 물을 찾아 뻗어나갈 이유를 못 찾는다. 부모의 현재 상황(시간, 경제, 부모 건강 등)을 아이와 함께 나누어야 아이도 성장한다.
부모와 아이는 늘 주는 존재와 받는 존재가 아니라 성장과 발달에 알맞게 함께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걸음마를 할 때 넘어질까 봐 잡아주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었듯 지나치게 사랑해서 아이를 힘들게 하지 말고 자녀를 믿고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부모와 자녀가 함께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