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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바라본 기초학력

글_ 김중훈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수학교육개발실(파견교사)



심각한 양극화 문제는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교실의 풍경도 많이 바꾸어 놓았다.

도시의 극빈 가정, 농산어촌의 조손가정, 다문화 가정뿐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조용히 달라진 교실 풍경

  사람들은 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학교는 예전과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 학교 밖에서 학교를 바라볼 때, 학교의 모습은 추억 속 장면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교실의 모습은 매우 달라졌다. 위기 속에 있는 아이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며 연구자들은 ‘조용한 위기’가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에게 찾아온 위기이기 때문에 아직 사회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라고 표현한 것은 그냥 두면 얼마 가지 않아 그 사회의 문제가 될 것이며, 그때는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찾자면 사회·경제적 양극화이다. 심각한 양극화 문제는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교실의 풍경도 많이 바꾸어 놓았다. 도시의 극빈 가정, 농산어촌의 조손가정, 다문화 가정뿐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아마 해당 가정의 아이들이 많은 학교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교사라면 교실의 풍경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절감할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런 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학교를 떠날 때, 여러 동료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마음에 걸리고 눈에 아른거려 눈물을 흘렸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어려움에 비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작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난 가난한 아이들의 모습

  이 아이들의 삶은 더 무겁고, 더 어렵다. 어른들 중에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옛날처럼 굶은 사람은 없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면, 잘 사는 가정의 아이들은 놀이동산도 가고 해외여행도 간다고 자랑하지만, 당장 자신은 교통비가 없어 버스도 타지 못하고 먼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패밀리 레스토랑도 가보고 싶고 햄버거 세트도 먹고 싶지만, 집에는 당장 먹을 밥도 없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지켜보면 긴 방학 이후 개학을 하면 아이들은 부쩍 성장해 있다. 그리고 방학 동안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개학 이후 오히려 바싹 말라서 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방학 동안 학교 급식조차 못 먹은 것이다. 월요일이면 작은 학교 보건실은 아픈 아이들로 가득하다. 가난한 아이들은 주말 동안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월요일 아침에 학교 보건실을 이용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를 보면, 절대 빈곤에 있는 아이들은 100만 명이 넘는다. 절대 빈곤 아동은 8.9%, 상대적 빈곤은 14.9%나 된다. 18세 미만으로 보면 10명 중 1명이 빈곤 가정이다. 가끔 우리는 뉴스에서 부모의 경제적 파산으로 가족이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한 소식을 접한다. 그 뉴스에 우리들의 어린아이들이 있다. 이런 뉴스를 보면, 나는 문득 그 학교의 아이들이 생각난다. ‘제발, 아니겠지...’ 눈물이 고인다. 이 아이들은 사실 당장 가정도 어렵지만 또 모두 공부가 어려운 아이들이었다.


사실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였다

  예전에는 가난해도 이웃이 있고, 한 동네가 있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고 하더라도 단칸방에서 형, 누나, 아버지, 어머니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생활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경제적 위기는 가정의 붕괴로 이어진다. 특히, 구조적으로 소득이 낮은 도시 취약계층과 농산어촌 지역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 속에 아이들이 있다. 예전과 다르게 그 아이들은 혼자 있다. 영유아 시절부터 그 속에서 방임된 아이들이 많다. 영유아기 방임은 언어발달에 매우 심각한 타격을 준다. 유명한 Hart와 Risley의 연구에 의하면, 취약계층의 아동은 부유한 계층과 비교하면 단어 수준의 구두 어휘 노출 격차는 만4세가 되면, 3천만 개나 되었다. 이 언어 발달은 이후 본격적인 읽기, 쓰기 학습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본질적으로 읽기, 쓰기는 말소리와 문자의 연결이며, 어휘력과 배경지식은 읽기 이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따라서 언어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동의 80% 이상은 읽기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어떤 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친구들과 자주 싸웠다. 선생님에게도 수시로 화를 냈다. 사실 그 아이는 심각한 위기 가정에서 자란 아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충격적으로 다투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 공포 속에서 자주 울었던 아이이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고학년이 되자 이 아이도 공부에 어려움을 보였다. 또 어떤 아이가 있었다. 아빠가 자주 집에 들어오지 않자, 엄마는 가출하고야 말았다. 그러자 아이 혼자 집에 남았다. 그 아이는 같은 반 친구 집에서, 동네 교회에서 1주일씩, 2주일씩 돌아가면서 생활했다. 어느 날 아이가 사라졌다.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자기 집 옷장에 숨어있었다. 왜, 옷장에 숨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옷장에 있으면, 그리운 엄마 냄새가 나요.” 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이 아이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경제적인 도움과 안전이 우선적이고 일차적인 도움이라면 그 이후에는 아이가 미래를 위해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2014년 경기도교육연구원에 의하면, 가난한 아이들이 국어, 영어, 수학 성적에서 하위 10% 또는 20% 이하에 해당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1.3∼1.8배가량 높았다.


아빠는 독일에 갔어요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이 있었다. 명단과 다르게 학생 한 명이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어머니가 매우 서투른 한국말로 아이의 이름을 말했다. 이제야 나타나지 않았던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 같은 반 또래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자 담임 선생님은 그날부터 방과 후에 매일 한국말과 한글을 가르쳤다. 그리고 옆 반 선생님은 책을 읽어주는 유아용 프로그램을 집에서 가지고 왔다. 아이의 사정을 살펴보니, 방과 후에도 혼자 집에서 캄캄한 밤까지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안내장을 읽지 못해 돌봄교실을 신청하지 못했다. 그래서 학교의 도움으로 돌봄교실에서 안전하게 어머니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말도 많이 늘었다. 그 아이의 한국 아버지는 독일에 일하러 갔다는데, 우리는 일 년 동안 아버지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조용히 급격하게 늘어난 다문화 가정

  우리 교실에 다문화 가정 학생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2012년 33,740명에서 2016년 73,972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2013년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외국인 거주자는 144만 명이며, 새로 결혼하는 10쌍 중 1쌍은 다문화 가정이라고 한다. 학교 급별 중에 초등학교 비율이 73%로 가장 높다. 다문화 가정 자녀 중에는 미취학 아동이 45.8%로 초등학교 31%보다 더 높다. 따라서 향후 다문화 가정 학생 비율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다문화 가정 학생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5년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보면, 다문화 중학생의 국어과 미달 비율은 6배 정도 되었다. 일반적으로 국어 교과의 부진은 전 교과목의 부진으로 나타난다. 안타깝게도 다문화 가정은 경제적 빈곤 비율이 높다. 이것은 가정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 2014년 통계를 보면, 다문화 부부 6,252쌍이 혼인하고, 3,005쌍이 갈라선 것으로 집계되었다. 전체적으로 절반가량 이혼한 것이다. 그 속에 상처받은 우리들의 아이들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아이들을 도와야 할까?


특수교육이 꼭 필요한 아이들이 일반교육의 기초학력 미달에 있다.

단계적으로 특수교육의 서비스를 점점 더 많이 확대해야 한다.


이유 있는 학교의 원망

  5학년 학생이다. 그 아이는 수업 시간에 계속 잠만 잤다. 책도 잘 읽지 못했다. 물론 기초연산도 힘들어 했다. 나는 그 학생을 종합적으로 진단해 보았는데 지적장애로 나왔다. 예상보다 지적장애 정도가 더 심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잠을 잔 이유가 있었다. 내용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업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지루했을까? 어느 날은 6학년 여학생과 부모님이 찾아왔다. 여학생의 읽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래서 진단을 해 보았는데, 이번 경우는 놀랍게도 지능은 128로 우수했지만 읽기 장애로 나왔다. 읽기 수준이 거의 1~2학년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답답했을 그 아이의 아픔을 생각해 보았다. 6학년까지 읽기가 어려웠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내가 활동하는 교사연구회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진단했다.

  오늘날 기초학력의 문제는 일반교육과 특수교육의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특수교육 비율은 너무 낮다. 미국과 캐나다 특수교육 대상자는 전체 학생의 9~10% 정도이다. 덴마크와 핀란드는 더 높다. 반면 우리나라는 1.4%이다. 따라서 8~9%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 비율은 기초학력 미달과 매우 비슷하다. 특수교육이 꼭 필요한 아이들이 일반교육의 기초학력 미달에 있다. 단계적으로 특수교육의 서비스를 점점 더 많이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이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 기초학력 이야기가 나오면 많은 선생님과 학교는 원망을 쏟아낸다. 그 원망의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 학교의 기초학력 미달에는 특수교육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일대일 개별화, 결손과 격차가 심화되기 전에 조기 개입, 교사의 전문성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학적 증거기반의 접근이다. 특히 기초학력에 증거 기반(scientific evidence based practice) 접근이 부족한 프로그램이 많았다. 미국의 낙오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에는 과학적 증거 기반이라는 용어가 100번 이상 등장하고, 캐나다 역시, 어려운 아이를 돕는 정책에는 증거 기반이 부족하면 그 어떠한 예산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꼭 말하고 싶다

  아직도 학교 현장에는 이름 없이 그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있다. 이것을 꼭 말하고 싶다. 3년 동안 읽기를 못 했던 아이를 3개월 동안 거의 매일 지도해서 성공적으로 읽게 한 경남의 선생님. 계산도 못 하고 읽을 수 없는 아이를 병원 치료까지 받게 하면서, 성공적으로 읽고, 쓰고, 셈하기를 가르친 경기도의 선생님. 농촌에 읽기와 쓰기가 어려운 아이들이 많아 매년 힘들어도 이 일을 멈출 수 없다는 전북의 선생님. 어려운 아이를 잘 가르치기 위해 2학년까지 데리고 올라간 대전의 선생님. 한글교육 책임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10% 이상의 한글 미해득을 1% 이하로 줄인 강원도교육청과 수많은 강원도 곳곳의 선생님들. 제주 아이들은 제주 선생님이 책임진다고 말했던 제주의 선생님들. 교사연구회에 가장 많이 참여하는 인천과 경기 선생님들. 우리 학교에는 어려운 아이도 많지만 그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헌신적인 선생님들도 많다. 어느 날, 그동안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환경적 요인도 강하고, 발달적 요인도 강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더 강한 것은 바로 교사의 전문성과 헌신이었다.

  이 사실을 꼭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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